발걸음 보듬는 ‘소박한 마루’

불모산은 창원과 진해·김해에 걸쳐서 서로를 이어주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창원 봉림산(정병산)에서 시작해 대암산·비음산을 거쳐 용지봉과 불모산 정상을 둘러 장복산까지 종주도 하며 물론 진해쪽인 굴암산이나 화산에서 시작해 거꾸로 더듬어 나가기도 된다.
불모산 정상은 802m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송신탑이 높이 솟아 있고 정상 부분은 출입이 통제돼 있다.
이 때문인지 불모산의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용제봉(龍蹄峰·728m)이 정상 노릇을 하고 있다. 등산길 곳곳에서 만나는 표지판에도 용제봉을 ‘정상’으로 표시해 놓고 있다.
아마 옛날 같으면 ‘뭐 이 따위 안내가 다 있어’ 하고 짜증을 내었을 법한데, 이런 일이 한두 차례가 아니다 보니 이제 한편으로는 심드렁해져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봉우리에 있는 비석에는 틀림없이 용제봉으로 적혀 있는데 등산 책자나 홈페이지 등에는 모조리 용지봉으로 나오고 있다. 지나는 산꾼들은 아마 발음이 둘 다로 되나 보다 하고 무심히 넘어간다.
불모산의 미덕은 펑퍼짐한 모양새에 있다. 마루금을 따라 걸어가 보면 양쪽으로 흘러내리는 비탈들이 푸근한 느낌을 준다. 달리 말하자면 색다르게 생긴 바위라든지 골짜기의 아름다움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용제봉의 미덕은 전망이 탁 트여 있다는 데 있다. 둘레보다 높으니까 산봉우리가 된 것은 여느 봉우리와 다를 바 없겠지만, 여기에 서면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맥은 물론 창원과 김해의 올망졸망한 사람살이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청 뒤 창원 용추못은 바로 발 아래에 있고, 겨울을 맞아 조금은 쓸쓸해진 나무들이 김해 쪽 비탈을 따라 구르듯 쏟아져 내리다가 논밭과 집들로 이어져 나간다.
뿐만 아니라 용추못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면 무슨 구름 같은 것이 밝게 빛나는데, 이게 무어냐 싶은 마음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진해 앞바다임을 알 수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 따라 바닷물이 들어차 있고 멀리 군데군데 섬이 떠 있다 보니 한 눈에 바다임을 알아볼 수는 없다. 게다가 오후쯤에 산에 오르면 먼지 따위로 희뿌연 가운데 구름 속에 숨은 해가 비추는 햇살로 바다 한가운데 빛나기 때문에 무언가가 공중에 붕 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십상인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겨울 불모산을 말할 수는 없다. 불모산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씩씩한 바위가 들어선 산악도 아니다 보니 사실은 평범한 풍경밖에 별다른 것이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저런 산책이나 여행길이 즐거우려면 빼어난 풍경을 마주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평범한 구석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겠다.
겨울철 오후 3시쯤 불모산 용제봉에 올라 진해쪽 능선을 바라보면 양쪽 비탈 수풀이 모조리 키작은 떨기나무들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들은 여름에 잎을 무성하게 달았을 텐데, 지금은 하나 같이 잎을 떨어뜨리고 벌거벗은 채 줄기와 가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나무 색깔은 조금 옅은 고동색이다. 어쩌면 누런색으로 볼 수도 있을 만큼 옅은데 햇빛이 비치는 부분은 하얗게 빛이 나고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빈틈없이 깔려 있는 떨기나무 수풀을 쳐다본다. 수풀 그 위로 햇빛이 쏟아지고 덕분에 나뭇가지의 절반이 하얗게 빛에 들떠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불종거리다. 불모산은 동쪽으로 팔만 이천 걸음 떨어진 곳에 있고 백 걸음마다 전신주가 발광하는 칠만 육천 비탈 걸음 떨어진 곳에 창해가 있다. 운이 좋은 날엔 거기, 썰물에는 이천 길 밀물에는 이천 오백 길 떨어진 섬이 보인다. 바람이 불면 섬은 돛을 달고 사라진다./ 불모산으로 가는 길에는 여섯 개의 로타리와 달의 협곡에 걸린 구름다리가 있고 천 걸음마다 서있는 일주문에는 줄무늬 흰 전갈과 눈 셋 달린 수리 까마귀가 산다. 까마귀 눈이 푸른 날엔 길이 허락되지만 까마귀 눈이 붉은 날엔 길은 꼬리를 자르고 달아난다./ 이제는 불모산이다. 동쪽으로 칠천 걸음 떨어진 곳에 장유암은 있고 화상은 없다.’
마산에 살고 있는 송창우 시인이 쓴 ‘불모산’이라는 시다. 불종거리 반대편 용제봉 꼭대기에 서서 가만 입안에 넣고 웅얼거리다 보면 손에 딱 잡히지는 않지만 아릿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등산길이 붐비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호젓하지도 않다. 휴일이다 보니 집안 식구들끼리 산책 삼아 온 이들도 있고 나란히 오르는 부부도 눈에 띈다. 둘이 손 맞잡고 다정하게 발길을 옮기는 청춘남녀들도 있는데, 그냥 단출하게 배낭 하나 울러매고 열심히 씩씩하게 걷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용제봉에 올라앉아 오가는 이들을 보니 가장 많기로는 40·50대를 따를 수 없을 것 같다. 크게 이름 나지 않은 산이라 관광 삼아 오는 이는 드물지만 돈과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니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 것 같다.
김해 장유 쪽에는 장유암이 있다. 절간도 갈수록 대형화되는 추세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이름을 장유사로 바꿔놓았다. 장유암의 ‘장유’는 김수로왕의 처남인 장유화상에서 따 왔는데 그이가 처음으로 불교를 전하고 입적한 뒤 금관가야 질지왕 시절에 암자를 짓고 모셨다는 것이다.
절간 뒤편에는 장유화상 사리를 모신 부도탑이 있는데 가야시대가 아니라 여말선초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부도탑 옆에는 두 아름은 될 듯한 전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위쪽으로는 마찬가지로 둥치가 굵다란 전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자빠져 있다.
아마 태풍 ‘매미’ 때문에 쓰러졌으리라 짐작해 보는데 이를 보고 얘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마음씀이 조금은 얄밉다. “와 저래 큰 나무가 쓰러졌네, 참 아깝다.” “그래 말이야 저거 참 비싼 나문데.”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처럼 돈으로 환산하지 않고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모양이다.

▶ 여행정보

창원에서 부산·김해로 빠져나가는 창원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가 닿을 수 있다. 그러니까 김해·양산이나 부산쪽에서 오는 이라면 창원터널 바로 못 미쳐서 안내판 따라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창원에서 들어서는 길목에는 오른쪽으로 불모산이 있고 왼쪽으로 장유계곡이 있다는 안내판이 있다. 이것은 틀림이 없지만 오른쪽 불모산 들머리에서는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장유계곡으로 해서 장유암을 거쳐 산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장유계곡은 여름철 놀이터로 이름나 있다. 92년 여름에 찾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도 사람이 바글바글거렸으니 그 뒤로 여름철이면 얼마나 많이 몰렸을까 생각하니 사람들로 시달렸을 골짜기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장유계곡에서 장유암까지는 아스팔트로 잘 포장돼 있다. 차를 몰고 가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걸어가면 30분을 잡아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넉넉하게 1시간은 잡아야 절간에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장유암에서 등산길 따라 마루금(능선)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고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용제봉까지 가 닿는 데는 쉬엄쉬엄 가도 20분을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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