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세 살의 오스카’는 누구의 손에 쥐어질까.

현지시간으로 25일 오후 5시 LA발 또 한번의 베팅이 시작된다. 역대 수상내역으로 볼 때 그 선정잣대가 다름아닌 ‘가장 미국적인 것’이라는 점에 다소 고까움을 느끼지만, 영화라는 문화의 힘을 고려할 때, 이후 미칠 극장가의 파장을 고려할 때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73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 유력 작품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작품상 =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묘한 어투의 예언을 했다. 바로 “최우수 작품상은 <와호장룡>이 타는 것이 마땅하지만 정작 상은 <글래디에이터>에게 돌아갈 것이다”라는 것. 지금까지 17년간 16편의 최우수작품상 수상작들이 모두 최다 후보작이었으므로 <글래디에이터>(12개 부문)가 <와호장룡>(10개부문)보다 유리하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고 할리우드의 전통에 가까운 영화로 아카데미상에 ‘친숙한’ 스타일이라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다.

이미 영국판 아카데미상인 ‘오렌지 브리티시 아카데미상’에서도 작품상을 비롯한 5개 부문을 휩쓴 <글래디에이터>는 최근 네티즌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와호장룡>보다 우세한 점수를 받았다.

▷감독상 = ‘서구인들을 겨냥해 동양적인 외피를 갖췄을 뿐 하나의 문화적 카멜레온’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와호장룡>이 얼마나 선전할지 주목된다. 리안 감독은 아카데미상의 방향타 노릇을 해온 미국영화감독조합상(DAG)과 골든 글로브상을 받은 바 있어 수상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1949년 이래 아카데미상 감독상 수상자와 DGA상 수상자가 다른 경우는 4번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유념해 두길.

한편으론 동양권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그간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쌓아온 리안감독에 대한 아카데미의 배려일 뿐 실제로는 외국어영화상 정도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또한 판이한 장르의 두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의 스티븐 소더버그도 무시못할 수상 0순위.

▷남우주연상 =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가 3번째 남우주연상을 놓고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로와 한판 승부를 펼친다. 또 <트래픽>의 라틴계 배우 베니치오 델 토로와 <퀼스>의 제프리 러시 등에 수상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여우주연상 = 별 이변이 없는 한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리아 로버츠가 수상할 듯. 그녀는 이미 골든글로브상에 이어 DGA와 함께 아카데미의 방향타 구실을 한 미국영화배우조합상(SAG)에서 여우주연상(<에린 브로코비치>)을 차지했다.

그 외 유독 아카데미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20세기 영화음악의 대부 ‘엔리코 모리코네’의 다섯 번째 도전(영화 <말레나>)도 눈여겨 볼만하다.

영화만큼 개인취향이 적용되는 것도 드물다. 누구든 나름대로의 평가기준이 있겠지만, 이번 시상식을 보면서 각자의 취향이 ‘친’할리우드 쪽인지 ‘반’할리우드 쪽인지 가늠해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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