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준 ‘남강전사’ 대표 인터뷰
8월부터 대표직 넘겨받아 운영
머플러·현수막 등 사비 들여 제작
“한 번 응원한 팀은 끝까지 응원”
류현준(15·진주) 씨가 사랑하는 축구의 세계에서는 나이나 사회 지위 따위가 매번 설 자리를 잃는다. 이 세계에서 중요한 가치는 누가 더 팀을 진심으로 사랑하느냐 뿐이다. 그렇기에 그가 진주시민축구단 서포터스 ‘남강전사’ 대표를 맡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일지 모른다. 그는 언제부터 축구와 사랑에 빠졌을까?
진주와 사랑에 빠지다
19일 오후 진주종합경기장 근처 식당에서 류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그가 직접 정했다. 동그란 안경에 마스크를 낀 그는 익숙한 듯 2층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선수들이 훈련 마치면 종종 오는 곳”이라며 인터뷰 장소를 이곳을 정한 이유를 알려줬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오늘은 훈련이 일찍 끝나서 그런지 선수들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명함 대신 투명 비닐에 포장된 머플러를 건넸다. 옅은 회색 바탕 위에는 ‘최강 진주’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류 대표는 멋쩍어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제작한 진주시민축구단 머플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15개밖에 제작하지 않은 ‘한정판’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판매도 고려해서 제작했던 건데 판매는커녕 머플러를 줄 사람도 많지 않아 만나는 분들에게 기념품처럼 드리고 있어요. 혹시나 머플러를 받고 경기장을 찾아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가 경기장에서 축구를 처음 본 것은 2019년 무렵이다. 당시 1부 리그에서 뛰던 경남FC가 리그 일정 일부를 진주종합경기장에서 소화하던 때다. 골이 들어가고 막히는 순간마다 터져 나오는 환호성은 그의 머릿속에 깊게 새겨졌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축구와 잠시 멀어졌다. 그러던 중 3년 만에 경남FC가 진주를 찾았다. 2022년 경남FC가 안방인 창원축구센터 잔디 교체 공사를 하는 동안 진주종합경기장을 임시 안방으로 정하면서다. 류 대표도 오랜만에 진주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를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찾은 경기장에서 익숙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경남FC 경기 바로 다음 날 진주팀 경기가 열린다는 거예요. 2019년에 창단했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는데 경기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경기장 분위기를 한 번 더 느끼고 싶어서 별생각 없이 진주 경기도 보러 간 거죠.”
그렇게 처음 본 진주시민축구단 경기는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관중석은 텅텅 비어 있었고 선수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주는 프로가 아닌 세미프로로 K4 리그에 속해 있다. 당장 K리그2만 보더라도 관중이 많지 않은 팀이 꽤 있는데 K4 리그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경기장을 찾지 않을 이유보다 경기장으로 향할 이유가 더 많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팀이라는 점부터 경기장을 한 번, 두 번 갈 때마다 반겨주는 사람들까지 그렇게 진주 팬이 됐다.
“모든 축구 선수가 마찬가지겠지만, 선수들이 정말 간절하게 뛰는 게 보였어요. 저 한 명이라도 응원해주면 어떨까 싶었죠. 사람이 없어서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수들과 가까이서 이야기할 수도 있고 꼭 나쁜 점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정말로 제가 진주라는 팀의 일원이 된 것 같았어요.”
팀 응원 이끌 서포터스 대표로
꾸준히 경기를 보러 간 그는 2024년 결성된 ‘남강전사’에도 자연스레 합류했다. 남강전사는 지역 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서포터스로 매번 진주 경기를 보러 오던 이들이 결성했다. 프로팀 서포터스와 달리 절대적으로 관중 수가 적다 보니 운영이 쉽지 않았다. 사비를 털어야 하는 상황이 잦았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 처지로서는 매번 부담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올해 8월 대표가 개인적인 이유로 물러났고 서포터스를 이끌 새 얼굴이 필요했다. 몇몇 후보 가운데 가장 열정적이었던 류 대표가 물망에 올랐다. 그는 대표가 되자마자 팀 머플러, 응원 문구를 적은 현수막을 제작하고 응원가도 다듬었다. 각종 SNS(사회관계망서비스)도 직접 운영한다.
“지금은 회원이 많이 줄어서 사실상 저랑 다른 회원 한 명이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원정은 주로 저 혼자 갔는데, 연천이나 평창 같은 곳은 왕복 14시간씩 걸려요. 혼자 응원용 북에다가 현수막까지 싸들고 다니는 거죠. 힘들어도 어쩌겠어요. 제가 한 번 응원하기로 한 팀인데 끝까지 책임져야죠.”
그는 축구 이야기를 하는 내내 반짝이던 눈을 처음으로 찡그렸다. 대표로서 겪는 현실적인 고충도 털어놨다.
“솔직히 대표직을 맡은 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한 달 용돈이 10만 원인데요. 8~11월까지 원정 다니는 비용, 펼침막, 응원용품 구매하는 비용에만 30만 원 넘게 썼어요. 머플러도 제 사비로 제작했거든요. 서포터스 카카오 채널도 운영 중인데 단체 메시지 발송은 유료더라고요. 어떻게든 운영을 해보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이처럼 학생 처지에서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만큼 그는 경기가 없는 비시즌에는 용돈을 모으는 게 습관이 됐다. 머플러 제작처럼 한 번에 많은 돈이 들어갈 때는 일용직으로 일을 해서 메우기도 했다. 상황이 녹록지 않다 보니 주변에서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굳이 K4 리그 팀을 왜 응원하느냐는 식이다.
“대부분은 제가 응원하는 팀을 존중해줍니다. 간혹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있기는 한데,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요. 각자 응원하는 축구팀이 다를 뿐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은 거잖아요.”
그의 하루는 온통 진주시민축구단이다. 성인이 돼서 일을 구할 때 축구 보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애정이 큰 만큼 팀에 기대하는 바가 클 수 있지만 그는 소박한 꿈을 품고 있었다.
“많이도 안 바라고 우리 팀이 K3에 뛰는 거를 보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선수들이 여기서 잘해서 더 좋은 팀에서 좋은 대우 받으면서 뛰었으면 좋겠어요. 선수들이 얼마나 간절한지 아니까 남았으면 하는 마음보다는 그냥 축구 선수로서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K4 리그에 속한 진주시민축구단은 이번 시즌 14승 7무 9패를 거두며 11개 팀 가운데 4위에 올랐다. 올해 안방 경기 성적은 8승 4무 3패, 원정은 6승 3무 6패를 기록하며 안방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였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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