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포르투갈 통합산불관리체계
초대형 산불 이후 국내에서 제기된 산불 예방과 진화 관련 쟁점을 정리합니다. 아울러 한국에 앞서 초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본 유럽과 북미지역의 선진 통합 산불 대응 거버넌스의 작동 과정과 현장을 8차례에 걸쳐 정리합니다.
2017년 산불이 일깨운 통합관리체계
포르투갈은 고온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와 강풍, 낮은 습도 등으로 세계에서 산불이 네 번째로 많이 일어나는 국가(세계자연기금·2021)다. 기후변화로 고온이 지속하고 내륙이 사막화하는 현상도 겪고 있다. 올해 7월 취재 차 수도 리스본 방문 직전만해도 한낮 기온이 40~50도를 넘는 폭염이 지속했다. 이런 포르투갈은 2017년 큰 비극을 겪었다. 그해 6월 17일 레이리아현 페드로강그란드(Pedrógão Grande)에서 일어난 산불로 120여 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쳤다. 도심과 산림 인접지 도로를 덮친 불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사람들이 차량 안에 갇힌 채 화염에 휩싸인 장면이 뉴스에 보도돼 국민적 충격이 컸다.
정부는 이 사태 이후 산불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고 예방 중심 통합적 접근 방식을 도입하고자 2018년 총리 산하에 통합농촌산불관리청(AGIF·Agency for the Integrated Management of Rural Fires)을 설립했다. 2021년에는 통합산불관리시스템(SGIFR·Sistema de Gestão Integrada de Fogos Rurais)을 만들었다. 기후 요인 외에도 농촌지역 인구 감소와 농지 사용 전환, 가연성이 높은 유칼립투스 등 임업 생산 비율 증가와 식생 관리 포기, 산림과 주거지역이 혼재한 지역 구조 등 산불 발생과 피해 확산에 좋은 요건을 두루 갖춘 현실을 정부도 인식했다.
산불 넘어 농촌 화재로 인식 틀 전환
통합산불관리시스템은 산불 영향을 줄이고 예방과 진압, 피해 복구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관리를 목표로 한다. 산불 관리 체계와 규범과 제도적 조정 프로세스를 구성한다. 이 체계를 실현하는 게 조정 기관인 통합농촌산불관리청이다. 통합농촌산불관리청은 단순히 화재 진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예방 중심’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했다. 기존 산불 개념을 ‘농촌 화재’(incêndios rurais)로 확산하고, 이를 용어 변화에 그치지 않고 통합산불관리시스템 국가 전략 전반에 반영했다. 실제 발생하는 화재 대다수가 산림 내부가 아닌 농촌지역 또는 산림·도시 인접지(WUI)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 근처에서 일어난 화재가 인명 피해로 직결된 사례가 대다수였다. 이에 ‘농촌 화재’를 행정 용어로 정해 정책적, 전략적으로 사용했다. 이는 산림뿐만 아니라 목초지, 방치된 농지, 도시 외곽까지 포함해 다차원적인 예방과 대응 설계를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산림청, 농림부, 환경부, 지방정부, 민간토지 소유자 등 더 다양한 주체들에 책임과 역할을 부여했다.
농촌 화재는 통합산불관리시스템 개념에도 정책적으로 내재화했다. 전국 단위로 국가 차원 기후, 식생, 토지이용 등 데이터를 기반에 두고 위험 지도화 작업을 해 거주 인원과 위험도 등을 중심으로 위험구역을 설정했다. 이 설정에 따라 중앙정부 예산과 인력·장비 등을 우선 배분하는 ‘차등 지원’ 체제도 만들었다. 내무부와 협업으로 경찰 등 공공안전 조직도 예방 활동에 참여하도록 했고, 교육·언론과 협력해 화재 인식 전환 캠페인도 병행했다.
통합농촌산불관리청은 이 체계의 ‘설계자-조정자’로서 역할을 한다. 각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 구체적 관리 계획을 직접 수립하되 통합농촌산불관리청이 이를 조정·검토해 국가 전략과 일관성을 확보했다. 예컨대 인구 고령화로 농지 방치율이 높은 지방정부 계획에 통합농촌산불관리청이 보완 요청과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매년 지방정부가 제출하는 연간 산불 방지계획을 수집해 전략적 우선순위를 분석한다. 필요 시 재설계를 권고하고, 예산 배정을 조정한다. 실행력과 계획 정밀도가 부족하면 직접 개입하기도 한다.
화재 발생 건수, 피해 면적, 예방사업 실적 등 주요 데이터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계획 효과성도 판단한다. 현장 성과가 낮거나 문제가 있는 지역에는 직접 점검하거나 기술지원팀, 행정감독 등을 파견해 보완 조치를 한다. 이 같은 결과는 연례 평가 보고서에 수록돼 이듬해 정책과 예산에 반영된다. 공무원·소방·경찰 등 현장 대응 기관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어 전략 문서와 타 국가 사례 등을 공유해 지식을 전파하고 역량을 강화한다.
예방 실효성 높인 특전-압력 병행
통합농촌산불관리청은 농촌 화재를 예방할 교육 활동과 공동체 활성화 투자에도 공을 들였다. 산불은 주로 인간 활동에서 비의도적, 반복적, 구조적으로 인재라는 인식을 전 세대가 공유하도록 했다. 티아고 올리베이라 통합농촌산불관리청 이사회 의장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파괴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점을 진지하게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와 청년 세대 대상 교육은 장기적으로 체계적 전략 아래 이뤄진다. 단순히 정보 전달이나 캠페인 차원이 아니라 기후변화, 산불, 토지 관리, 자원 연계 관련 실천적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대중과 정치권도 교육 대상으로 봐 정책 메시지를 언론 매체를 이용해 강력하게 확산시킨다. 언론은 ‘교육적 동맹’으로 정치권에 압박을 가하는 역할도 수행하게끔 만들었다.
예방 교육에 더해 지역공동체의 구체적인 행동 변화를 이끄는 건 자금 지원 즉, 예산 배분이다. 마을 단위 화재 예방 활동인 ‘안전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Vilas Seguras)은 주민과 지역이 스스로 화재 예방과 관리에 나선다. 캠페인성 교육에 그치는 게 아니라 주민 주도 벌목, 토지 정비, 도로 인접 구간(약 10m) 내 잡초 제거 같은 위험지대 정비에 지방정부 차원 보조금이 지원된다. 주민 자원봉사 실적에 따라 수당이나 마일리지도 제공한다. 주민들이 실제 정비 관리 작업에 나설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반대로 마을 또는 가구 단위 일정 반경(통상 50~100m) 내 연료 제거 의무를 법제화하고, 이를 위반할 시 실제 수백 유로 수준 벌금을 부과한다. 사유지는 소유주가 직접 청소를 하지 않을 경우, 정부나 읍면동 단위에서 대체 집행 후 비용을 청구하기도 한다. 특전과 압박을 병행해 예방에 필요한 주민 행동 변화를 이끌어냈다.
전문성+정책+예산 = 성과
어느 정부든 정책의 실행력을 담보하는 건 예산이다. 포르투갈 정부는 농촌 화재 예산을 예방으로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예산은 예방 쪽으로 옮기는 게 아니라 전체 예산을 확대하고 구성을 근본적으로 재편성했다. 과거 산불 진화 예산이 전체 80% 이상을 차지했다면 현재는 예방·연료관리·모니터링 등 사전 개입과 위험 감소 중심 예산 비중을 60%이상까지 확대했다.
통합농촌산불관리청은 예산의 직접 집행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총리실 산하 ‘통합 조정 조직’ 지위를 바탕으로 각 부처 예산과 실행계획, 정책목표를 조정하고 정렬한다. 성과 기준 배분 구조를 도입해 연료 제거 면적, 캠페인 효과, 교육 실적 등 지표를 중심으로 예산 배분체계를 구성했다. 통제보다는 정렬 권한으로 다부처 조정의 실행력을 보장받는 구조다. 이를 두고 각 부처 간 예산 소관, 부담 등에 충돌이 따르기도 한다. 특히 소방 분야에는 진화 예산이 줄어드는 데 우려가 크다. 농업 부문에서는 연료 관리·내화 수종과 작물 재배 농민에게 주는 특전이 커지는 데 따른 불만이 있다.
이는 국가 산불 대응 전략 설계를 독점하고 예산 조정권을 갖춘 데 따른 영향력으로 갈등을 조정한다. 실적 평가와 피드백 권한, 기술적 독립성과 높은 신뢰성, 명확하게 역할을 분담시키는 구조와 전문성 등은 이 같은 영향력을 뒷받침한다. 하향식 정책 전달에 대한 반감은 지역 행정, 소방, 산림 기관 등과 협약을 맺어 동기화하거나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 설득, 성공 사례와 모범 사례 공유, 민감 지역 우선 협의·방문 등으로 잠재운다. 매년 중앙과 지방 정부 농촌 화재 관리 관계자들 50여 명을 인터뷰해 정책 실효성과 보완점을 평가하는 연례 보고서 작성과 이를 토대로한 피드백은 통합농촌산불관리청의 중립성을 담보한다.
통합농촌산불관리청 측은 “극단적인 산불을 진화할 방법이 없다는 쪽으로 정부 내부적·사회적 인식 전환이 이루어졌다”면서 “중립적 조정·판단자의 역할로 기술적 정당성와 데이터·국제 기준을 토대로 농촌 화재 대응에 필요한 각 부처 예산 배분을 중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는 국민과 언론을 대상으로 예방이 진화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큰 점을 널리 알리고, 불을 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공공예산 재정의하는 등 정치적 설득과 소통도 수반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강력한 정책과 예산 조정 권한은 2018~2023년 산불 사망자 ‘0명’, 2023년 산불 건수 전년 대비 58% 감소, 산불 피해 면적 과거 평균 3분의 1 수준이라는 성과로 돌아왔다.
/김두천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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