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미국 국가산불센터(NIFC) 다기관 조정 시사점
진압보다 관리에 초점을 둔 체계 변화
산불에는 기관 간 경계가 없다는 인식
예측·인력·자원 총체적 협력 이끌어 내

초대형 산불 이후 국내에서 제기된 산불 예방과 진화 관련 쟁점을 정리합니다. 아울러 한국에 앞서 초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본 유럽과 북미지역의 선진 통합 산불 대응 거버넌스의 작동 과정과 현장을 8차례에 걸쳐 정리합니다.

3월 영남권 초대형 산불에서 보았듯 국내 산불 대응 체계는 산림청-지방자치단체-소방청 등으로 나뉘어 조기 진압에 되레 걸림돌이 됐다. 부처별 역할 중첩과 현장과 중앙 간 괴리, 명령 체계 혼선 등은 종합적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도 한국과 같은 혼란상을 일찌감치 경험했다. 산불 진압에 급급하기보다 관리 체계 형성에 주력했다. 여러 기관이 정보와 인력, 자원을 공유해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그 중심에는 미국 국가산불센터(NIFC·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가 있다. ‘리더 없는 컨트롤타워’를 표방하는 NIFC는 인구 25만 명 아이다호주 보이시(Boise) 공항 인근에 있다. 앞서 캐나다 파이어스마트가 ‘예방 중심 산불 체계’ 표본이었다면 NIFC 작동 원리는 ‘산불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미국 아이다호 보이시에 자리한 NIFC 전경. /공동취재단
미국 아이다호 보이시에 자리한 NIFC 전경. /공동취재단

산불 대응 기관 간 경계 없어야

20세기만해도 미국도 한국과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후와 지리적 특성으로 대형 산불이 잦았지만 산림청과 토지관리국, 소방국으로 나뉜 지휘체계 탓에 혼선이 이어지고, 인명과 재산 피해는 줄지 않았다. 이에 산불에는 기관 간 경계가 없다는 인식 아래 1959년 미국 내무부 산하 토지관리국과 산림청, 국립공원관리청이 미 서부 산불대 중심인 몬태나주와 캘리포니아 중간 지점인 보이시 공항 인근 땅에 공동 대응기지를 만들었다. 시작은 작은 협력체로 시작해 1970년대 서부 대형 산불을 계기로 보이시 인터에이전시 파이어센터(BIFC)가 출범하면서 연방 전체로 확대됐다. 1993년에는 산불 외 모든 재난을 조정하는 기능이 추가돼 NIFC로 확대됐다. NIFC는 총 9개 연방기관이 협력한다. 산림청, 토지관리국, 국립공원관리청, 어류·야생동물청, 인디언업무국, 연방비상관리청, 국방부, 국립기상청, 해양대기청이다. 이들이 협력하는 NIFC는 현장에 투입되지는 않지만 전국 화재, 재난 정보를 통합하고 자원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안드레아 굿(Andrea Good) 토지관리국 소속 NIFC 홍보담당자는 “불은 경계를 넘나들기에 더 많은 기관이 힘을 모으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약 650명이 상시 근무하지만 ‘대표자’는 없다. 각 기관 대표가 참여하는 국가 다기관조정그룹(NMAC·National Multi-Agency Coordinating Group)이 최고 의사결정 협의체다.

연방 기관별 자원 공유와 함께 필요에 따라 10개 지역 조정센터(GACC)로부터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받는다.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NMAC 조정 아래 기관 대표들이 헬기, 진화 인력, 장비 배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안드레아 씨는 “모든 의사결정에는 각 기관 간 협력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면서 “각 연방기관 리더들이 소통하고 협업하면서 비상 상황과 주요 의제를 함께 조율해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고, 군부가 함께해 항공 방재기와 헬기 등을 빠르게 투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안드레아 굿(Andrea Good) 씨 NIFC 홍보담당자가 기관을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팀
안드레아 굿(Andrea Good) 씨 NIFC 홍보담당자가 기관을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팀

산불 예측·현황·대응 자원 투입 한 번에

다기관 조정 기능에 NIFC는 작은 연방 정부를 연상케 한다. 덕분에 산불 등 모든 재난에 통합적 대응이 가능하다. 산불 예측부터 발생 현황, 자원 투입까지 실시간 공유와 협업이 이뤄진다.

NIFC 내 예측센터에서는 자동기상관측소(RAWS·Remote Automatic Weather Stations)를 활용해 기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이동식 장비인 RAWS는 기온과 습도, 풍속, 풍향은 물론, 강수량, 자외선, 연료 수분 등 수십 개 데이터를 NIFC로 전송한다. 이런 장비가 전국 331곳 깊은 산림이나 산림·도시 인접지(WUI)에 설치돼 있다.

앨런 헤스터(Alan Hester) RAWS 필드 섹션장은 “기상청이 하는 도심 기상관측과 달리 사람이 없는 위험 지역을 관측할 수 있어 산불 재난에는 보다 정확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면서 “휴대 이동이 가능해 큰 산불이 발생하면 인근 지역에 더 많은 RAWS를 설치해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예측 자료를 토대로 재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을 지시하는 두뇌 역할은 전국산불조정센터(NICC·National Interagency Coordination Center)가 담당한다. 자료 분석 후 NMAC이 대응 방향을 설정하면 NICC가 결정을 실행하는 구조다. 예컨대 RAWS 예보팀이 분석을 통해 재난 준비단계(PL·Preparedness Level)를 경고하면서 상황을 1~5단계로 정리한다. NICC는 RAWS는 물론 전국 10개 GACC, 250개 지역 디스패치 센터(비상 상황 속 화재 진압에 투입될 소방대원들을 조정하는 역할)로부터 실시간 보고를 받는다. 각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는 지역 디스패치 센터를 거쳐 산불의 위치, 규모, 기상 상태, 필요 인력 등이 NICC로 보고된다. 이후 단계별 대응 정도를 1단계 평시에서 5단계 전국 동시 대응 위기 상황으로 구체화한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장비와 인력, 항공 자산 재배치가 신속히 이루어진다.

모든 정보를 갖춘 만큼 소방 인력, 방재 장비, 항공 진화대 투입 등에 적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산불 현장에서는 고도화한 통신 장비 역할도 한 몫한다. NIICD(National Interagency Incident Communications Division)는 무전기와 중계 장비 1만 2000대를 갖추고 현장 내 의사소통을 돕는다. 마크 힐튼(Mark Hilton) 국장은 “광범위한 산악지대에서는 통신망이 약하기에 실시간 상황을 전송할 통신 기기과 체계 구축이 무척 중요하다”며 “현장에 관련 기기를 설치해 소방대 간 통신망을 확장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련 인력도 세분화 돼 있다. 마크 국장은 “통신 작업은 소방대원이 아니라 주파수 교체, 중복 주파수 관리 인원 등이 배치돼 효율을 높인다”고 말했다. 이렇듯 고도화한 예측 체계, 촘촘한 현장 정보망, 다기관 수평적 협업에 기반을 둔 적확한 지휘 등이 산불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자동기상관측소의 앨런 헤스터씨가 휴대용 관측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자동기상관측소의 앨런 헤스터씨가 휴대용 관측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현장 대응력 강화 고민 더하기

3월 영남권 초대형 산불에서 한계를 드러낸 국내 산불 대응 체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한국은 주관 기관 산림청과 유관 기관인 지방자치단체와 소방청 등으로 지휘체계가 이원화된데다 또 현장에는 대책본부라는 게 만들어져 산불 대응력에 혼선을 빚고 있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미국 NIFC 같은 통합적 지휘 체계와 함께, 한국적 특성에 맞게 ‘현장 중심 지휘체계’를 단단히 해야한다는 의견이다. 특히 NIFC 기능에 더해 미국 산불 사고지휘시스템(ICS·Incident Command System) 코디네이션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ICS는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동시다발적인 대형 산불 발생 시 여러 기관 간 대응 실패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발된 표준화된 현장 지휘 관리 체계다.

고 회장은 “산림청도 산불과 관련된 예방, 진화에 필요한 정보 체계는 상황실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기에 NMAC같은 다기관 조정을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되도록할 필요가 있다”면서 “코디네이션은 산불이 일어났을 때가 아니라 그 전에 대응 기관별 교육 훈련 등을 강력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형식적인 재난 대응 훈련이 아니라 초대형 산불에 대비한 실제적인 예방 훈련이 이뤄져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 회장은 “산불이나 침수 피해 관련 좋은 장비와 통신 시스템이 있다해도 이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제대로 된 대응이 되지 않거나 사고가 더 커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서 “이런 건 다 평소 실전과 같은 훈련, 연습이 있어야 실제 상황에서 적용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과학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 능력을 더욱 갖춰나가되, 현장 실행력을 갖추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 하면 산불을 비롯한 재난 대응 미비 비판은 해가 거듭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김두천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