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과 세계 (4)캐나다-Firesmart가 불러 온 변화
정부 외 주민 공동체 책임의식 조성
교육·집 주변 연료 관리 등 변화 유도
참여 주민 큰 불에도 피해 적고 회복 빨라
초대형 산불 이후 국내에서 제기된 산불 예방과 진화 관련 쟁점을 정리합니다. 아울러 한국에 앞서 초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본 유럽과 북미지역의 선진 통합 산불 대응 거버넌스의 작동 과정과 현장을 8차례에 걸쳐 정리합니다.
한국과 기후 조건, 산림 구조가 다른 캐나다는 산불 원인이 사람에 의한 실화보다 번개 등 요건에 의한 자연발화 비중이 높다. 산불은 재난이기도 하지만 ‘공존해야 할 자연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산불 대응에 있어 사후 대응보다 예방적 접근에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파이어스마트 BC가 세운 7대 핵심 원칙은 △교육 △식생 관리 △법률 및 계획 수립 △개발 시 고려사항 관리 △주택과 기반시설 생존 가능성을 높일 개발 규제 도입 △기관 간 협력 △교차 훈련 △비상계획 수립 등이다. 이 원칙을 바탕으로 산림 인접지 주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건축 또는 조경을 할 때 내화자재 사용, 식생 관리, 비상 훈련 등 산불 대응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것은 산불은 ‘정부만이 아니라 주민 간 공동 책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산불 주체적 대응 이끌 공동체 형성 효과는
7월에 만난 한나 스위프트(Hannah Swift) 파이어스마트 BC 프로그램 책임자는 “산불이 불가피한 자연현상임을 인정하고 억제하는 차원이 아니라 ‘불이 났을 때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능력, 불이 날 수 있는 상황’에 적응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고 말했다.
이른바 ‘좋은 불’(Good Fire) 전략이다. 이는 원주민(First Nations)들이 지녔던 ‘문화적 불태우기’ 지식과도 연결된다. 이에 “불이라는 것을 ‘불가피하지만 관리는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불이 난 후 그냥 ‘대응해야 한다’는 자세에서 벗어나 불이 나기 전과 난 후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주민들이 산불 발생과 대응에 공동 책임 의식을 갖도록 유도한다.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부주의나 실화를 경계하는 ‘예방 의식 확대’로도 이어진다.
한국에서 산불 대응은 으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역할로 치부한다. 반면 파이어스마트가 주민을 ‘피난 대상’이 아니라 ‘대응 주체’로 두는 접근은 한국 산불 대응에도 시사점이 크다.
한나 씨는 “파이어스마트 자체가 정부가 아닌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먼저 위험을 경감시키고자 시작한 움직임이고 이를 정부가 인정해 지원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공동체를 지원하고 규제로 개발이 되지 않았을 때 특전을 제공하는 등 방식으로 행동을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원은 마을 단위로 이뤄진다. 산불 대응에 공동체적 활동을 장려하고 연례적인 캠페인을 이용해 여러 홍보, 대외 활동을 조직한다. TV나 라디오, 누리소통망(SNS)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교육·홍보 활동도 지속한다.
한나 씨는 “이런 식으로 주민이 먼저 변화해야만 실제 산불이 났을 때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고 재빠른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풀뿌리 움직임을 형성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적 상황에 비춰 주민 스스로 참여하는 체계적인 예방적 식생과 연료 정비 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나 씨는 “주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면 지역정부랑 원주민 정부가 지역사회에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임업전문가와 협업으로 체계적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특성과 수종 고려 없이 산림청이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숲 가꾸기 등 연료관리 정책과는 다른 지점이다.
정부 차원 공동체 지원도 중요해
지역 공동체적 움직임과 별개로 대규모 정부 투자의 효용성도 무시할 수 없다. 파이어스마트는 산불 복원력 강화 프로그램(RCF·Resilient Communities through FireSmart Program) 정부 투자의 집행기관이기도 하다. 파이어스마트 BC는 투자금을 주로 ‘전문인력집단 활용’(코디네이터) 제도 활성화 주민교육에 집중했다.
한나 씨는 “산불 진화에 전문지식이 많은 코디네이터들이 주민 대상 다양한 교육·훈련 활동으로 산불 대응 의식 변화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이 덕에 주민 스스로 전문 지식을 쌓아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이들도 생겼다. 산불 대응 커뮤니티가 활발해진 것이다.
내륙지역 산불 고위험 지역에는 코디네이터 중 교육보다는 산불 예방 활동에 더 특화한 ‘산불관리전문가’를 조직했다. 이들은 각 주택을 방문해 산불 취약성, 정부 규제 기준 등을 알려주고, 공원 운영에도 연료 저감 등 불에 탈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등 역할을 한다. 생활 속 교육으로 효과를 높인 것이다.
산불관리 전문가들은 또한 지역 축제나 시장 등에 부스를 설치해 ‘상징 활동’(Represent)도 펼친다. 파이어스마트 홍보는 물론 주민과 소통하면서 산불 예방과 대응 방법을 알려주고, 집을 직접 찾아가 대응 체계 평가도 해준다.
한나 씨는 “이들은 일종의 ‘지역사회 챔피언’으로 대우하고 공익적 역할의 수범 모델로 권장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내에서도 이 같은 파이어스마트 BC의 인력 양성 제도는 큰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받는다.
이처럼 파이어스마트 BC는 교육과 인력 양성에 강점이 있지만 공통된 7대 원칙은 각 주마다 다른 여건과 적용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나 씨는 “5~10년간 산불 위험이 없었던 지역은 교육활동 위주로 접근하고, 산불을 경험한 곳은 집을 산불에 강한 내화자재 등을 활용해 수리하는 등 중점 방향을 달리한다”고 말했다.
주민 공동체 대응 마을 넘어 도시 전체로
파이어스마트 BC는 이 같은 활동이 재난적 상황 감소에 도움이 됐다고 판단한다.
한나 씨는 “큰 화재 후 연구를 해보니 파이어스마트에서 제시한 권고사항을 지킨 집들이 피해를 훨씬 덜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는 지역사회 공동체 내 협업, 즉 집 주변 연료 관리 지붕에 낙엽 치우기 같은 행동을 취하는 게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나 씨는 취재단과 만남 이후 8월 캐나다 산림청 산불센터(CIFC) 예방·완화 책임자로 자리를 옯겼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넘어 캐나다 전체 산불 예방을 책임지게 된 그는 파이어스마트의 원칙이야말로 국가 전체 산불 정책의 기초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한나 씨는 “도시 설계, 대형 건축물 또는 집을 지을 때 산불 대응 원칙에 반드시 파이어스마트가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 “보험산업과 연계해 주택소유자가 파이어스마트 권장사항을 실천했을 때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불에 대응할 주민들의 직접적인 행동을 유도할 장치를 강화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밖에도 “산불이 일어나 피해를 입은 사람이 다시 집을 지을 때 산불에 취약한 자재를 쓰는 행동을 할 때 왜 그런 선택을 하고 어떻게 하면 행동 변화를 가져올지 연구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천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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