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군민 받은 재난문자 내용 추상적이고 전송 시기 늦어
군민 "고지대로 가야 할지, 마을 벗어나야 할지 판단 안 서"
안전 전문가, 시민 대피할 구체적 정보 재난문자에 담아야
통신장애 땐 무용지물 "지자체가 마을 단위 대피체계 점검"

산청군 산청읍 모고마을 폭우 피해현장에 23일 전봇대가 부러져 있다./김구연 기자
산청군 산청읍 모고마을 폭우 피해현장에 23일 전봇대가 부러져 있다./김구연 기자

‘관내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산간 계곡, 하천, 산사태 우려 지역 등 위험지역 접근금지 △외출을 자제하시고 이상징후 발견 시 즉시 대피 바랍니다.’

지난 19일 오전 6시, 산청군이 군민에게 보낸 호우 재난문자다. ‘많은 비’, ‘위험지역’, ‘즉시 대피’ 등의 경고성 내용이 담겨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산청군 차황면에 한 사업장을 운영하는 박모(62) 씨는 폭우가 쏟아지던 19일 이 재난문자를 받았다. 그는 어떤 상황인지 갈피도 잡히지 않는데,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이날 하루 차황면에 쏟아진 비는 357㎜였다.

박 씨는 “산을 보니 절골수류지에 물이 넘쳐서 곧 마을로 쏟아질 것 같았는데, 재난문자는 어디로 대피하라는 내용도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며 “일단은 자체적으로 젊은 마을 사람들을 풀어 어르신에게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하라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다급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어 그는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면 마을 밖으로 가야 하는 건지, 물이 범람하지 않을 고지대로 가라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됐다”며 “다행히 차황면에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비 오는 내내 스스로 대피한 곳이 안전한지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 동안 산청군, 산청군경찰서, 낙동강홍수통제소, 경남도, 기상청 등이 산청군민에 보낸 재난문자는 총 84건이다. 84건 중 ‘대피’ 문구가 포함된 건은 43건이었지만, 정확히 어디로 대피하라는 내용을 넣은 문자는 10건에 불과했다.

산청군 산청읍 모고마을 폭우 피해현장에서 23일 굴삭기가 집 옥상에 올리가 떠내려온 돌을 치우고 있다./김구연 기자
산청군 산청읍 모고마을 폭우 피해현장에서 23일 굴삭기가 집 옥상에 올리가 떠내려온 돌을 치우고 있다./김구연 기자

더구나 대피령 문자를 한 발짝 늦게 발송하면서, 현장의 다급함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19일 오전 10시 46분 산청읍 내리에서 산사태로 2명이 숨졌다. 이를 포함해 이날 오후 1시까지 산사태 관련 사고로 9명이 숨졌다. 산청군은 이날 오후 1시 50분 재난문자로 ‘전 군민 대피령’을 내렸으나 이미 각 지역에 산사태가 덮친 상태였다.

이원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안전정책연구소장은 “재난 문자가 추상적 경고에 그쳐선 안 되고,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해 시민의 능동적 대피를 유도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며 “재난문자가 매일 몇 통씩 오니까 ‘재난’이라는 문구에 경계심이 무뎌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이 위험 수준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재난문자 단계를 설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재난문자 글자 수를 현행 90자에서 157자로 확대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난문자는 통신장애 상황 등에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산청군 일부에서는 19~20일 통신 장애, 정전 등으로 외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산청지역 8358가구가 정전됐고, 일부 이동통신 중계기도 먹통이 됐었다.

전문가들은 재난문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마을·지역 단위 대피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술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통신장애 땐 재난문자를 수신할 수 없을뿐더러, 노년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은 휴대전화로 재난문자 확인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결국 재난 상황에서 재난문자는 보조 역할을 하되, 마을이나 지역 단위가 스스로 대피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이번 산청군 폭우처럼 단기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재난 상황에서 소방·경찰 등 공무원이 일일이 마을을 다니며 위험성을 알릴 수 없다”며 “각 이장 등이 자치단체 경보 이후 마을 연락책 등의 역할을 더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치단체가 이러한 마을 단위 체계를 평소 꾸준히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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