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결정 과정도 일부 자문위원 면면도
반민주주의 생생히 보여준 기특한 건물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고귀한 문장은 경남 마산에서 기이하게 구현된다. 반민주 정서가 도도하게 철철 흘러 넘치는 이곳에 감히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이 들어선 것은 순전히 과거와 죽은 자들 덕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202가 주소인 민주주의전당은 전체 면적 8000㎡ 정도 되는 지상 3층 건물이다. 3.15의거, 부마민주항쟁, 6.10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민주화운동 역사를 조명하는 곳이다. 시민에게 민주주의 가치를 체험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7월 1일 공식 개관 예정인데 이 기특한 건물은 벌써 민주주의를 생생하게 학습하는 매개로 기능하고 있다.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이라는 이름을 정한 과정부터 그렇다. 애초 시민 단위 숙의를 거쳐 결정한 이 공간 이름은 '한국민주주의전당'이었다. 한국을 굳이 대한민국으로 고친 주체는 창원시의회다. 민주주의전당 건립추진위원회에 참여해 시설 명칭을 논의했던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일방적인 명칭 변경에 당황했다.

이름 수정을 주도한 이천수 시의원은 "한국민주주의전당도 괜찮겠지만 오히려 우리가 좀 더 크게, 넓게 봐서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줄여서 쓴 게 한국이다. 상황과 기분만 맞으면 다섯 박자 박수에 맞춰 90분 넘게 "대∼한민국"을 외칠 수도 있다. 느닷없는 '대한민국' 이름 변경이 괘씸한 이유는 특정 정치 세력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활용한 방식 탓이다. 이들은 임시정부 맥과 단절하는 의미로 건국을 내세울 때 대한민국을 유난히 강조하곤 했다.

박선애 시의원은 "더 격 있게 이름을 바꾼 것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며 "시설 명칭에 자유가 왜 안 들어가느냐는 항의가 많았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빼고 다 중요한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여기까지가 창원시의회를 무대로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명칭 결정 과정에서 본 '현재 창원 민주주의 현황 1강'이다.

이어지는 2강은 더욱 역동적이다. 창원시는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 운영자문위원 15명을 위촉했다. 15명 중 위촉직은 12명, 당연직은 3명이다. 당연직 3명은 담당 부서 문화시설사업소장과 손태화 창원시의회 의장이 추천한 시의원 2명이다.

논란은 민주주의전당 정체성과 어긋나는 위원에서 출발했다. 위촉직 중 이우태 3.15의거 학생동지회 회장과 당연직인 국민의힘 김미나(비례)·남재욱(내서읍) 시의원이다. 이우태 회장은 12.3 불법계엄을 두둔하면서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미나·남재욱 시의원은 탄핵 반대 집회에 꾸준히 참가하며 내란 옹호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두 시의원을 추천한 손태화 창원시의회 의장 역시 탄핵 반대 집회에 꾸준히 참가했다. 손 의장은 16일 "정치적 편향성을 배제하고자 두 시의원을 추천했고 균형 있는 자문을 위한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내란에 동조하고 탄핵에 반대한 인사들이 민주주의전당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게 편향성을 배제한다? 민주주의전당이 마련한 2강 주제다.

현재가 과거를 해치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멸시한다. 반민주주의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민주주의전당, 거듭 생각해도 참 잘 지었다.

/이승환 자치행정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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