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문학관 가는 길] ① 통영 박경리문학관
박경리 소설〈김약국의 딸들〉무대
서문고개, 문화동, 서피랑, 해저터널 등
돌아보며 소설 속에 들어간 듯
지역마다 문학관이나 작가 생가 또는 기념비가 한두 곳은 있다. 대부분 지역 출신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문학 기념물이 있어도 찾는 발걸음이 없고, 무관심하다면 건립하고 기록하는 의미가 있을까. 지난 시대 작가들은 한국사회의 현실과 인간의 삶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지역 곳곳에 있는 생가, 시비, 문학관 등 문학 기념물을 톺아보고자 한다.
박경리가 태어난 집터와 동네 그리고 〈김약국의 딸들〉을 찾아가는 길. 국도 33호선으로 접어들었다. 진주에서 사천, 고성을 거쳐 통영으로 가는 도로다. 1940년께 단발머리 여학생 박경리가 통영 서피랑 근처 집과 진주 시내 여학교를 오갈 때 이 길은 어땠을까.
◇여학생 박경리를 따라 통영으로
박경리는 1940년부터 1945년 초까지 진주에서 10대 학생 시절을 보냈다. 그는 진주공립고등여학교(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여학교는 중·고등학교로 분리하기 전이라 5년제였다. 진주공립고등여학교는 1925년 진주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 인사들이 모금해 현 진주 시내 갤러리아 백화점 터에 설립한 사립학교로 처음 이름은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다. 1939년 공립이 되면서 명칭이 변경됐다. 박경리가 졸업한 1945년 그해 비봉산 아래 경남종묘장(현 경남도농업기술원)이 이전한 뒤 그 자리로 옮겼다. 박경리가 다녔던 붉은 벽돌의 3층 건물에는 금성초등학교가 들어섰다가 1995년 이전했고 학교건물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이 거셌지만 철거되고 그 자리에 백화점이 들어섰다.
박경리는 학교 근처 시내 어딘가에서 자취했을 거고, 방학을 이용해 이 길목의 산과 들과 하늘을 보며 통영을 오갔을 것이다. 물론 당시엔 국도 33호선이라 명명하지도 않았고 그때 그 길이 아니다. 그 산과 들과 하늘도 아닐 것이다. 다만 오랫동안 숱한 사람들이 걷고 달렸을 옛길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때 그 박경리'를 찾는다.
국도 33호선과 국도 14호선의 분기점은 고성읍이다. 읍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슬며시 한 바퀴 돌아봤다. 오래전 먼지를 뒤집어쓴 버스 안 단발머리 여학생의 시선과 생각을 더듬어본다. 버스가 정차했던 정거장 자리는 어딜까. 1910년 개장한 고성중앙시장(현 고성공룡시장)은 박경리가 들렸을 법하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이 단장하고 현대화된 지 오래전이다. 고성읍을 빠져나와 국도 14호선으로 갈아탔다. 통영 도산면 바다를 끼고 있는 못등산을 지나는데 산벚꽃 진 자리마다 온통 연둣빛이 차오른다. 골짝마다 도톰하니 누비천을 잇대어 놓은 듯하다.
◇서문고개 일대는 '박경리 문학 동네'… 〈김약국의 딸들〉이 있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로 시작한다. 박경리는 고향 통영을 두고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 주변에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언덕배기 대부분의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곳으로 소개한다. 마치 박경리와 동시대 활동했던 화가 전혁림의 그림을 활자로 옮겨놓은 듯하다.
내게 통영은 소설 〈김약국의 딸들〉 그 자체다. 10대 때 손바닥만 한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은 이 소설은 어린 가슴 밑바닥을 매섭게 휩쓸고 갔다. 통영이 어디에 붙어있는 도시인지, 언제 이야기인지 몰라도 다섯 딸의 기구한 이야기만으로도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전에 읽었던 루이자 올컷의 <작은 아씨들>과는 전혀 달랐다. 번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겠지만 <작은 아씨들>이 알록달록한 순정 만화 같았다면, <김약국의 딸들>을 통해서는 너무 일찍 삶의 비의를 엿본 듯했다. 어둡고 긴 터널 속으로 한없이 빨려드는 느낌이라니, 아마도 나 역시 딸 많은 집 둘째여서 그랬을까.
통영 시내로 접어들어 서문고갯길에 섰다. 서문으로 오르는 고갯길이 하도 가팔라 통영사람들은 '서문 까꼬막'이라 했다. 〈김약국의 딸들〉에서 한실댁은 시집에서 도망 온 셋째딸 용란의 손을 잡고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라며 다시 시집으로 돌려보내려 이 고갯길을 함께 넘는다. 소설 속 명정샘, 간창골이 근처에 있다.
박경리 생가터는 서문고개 근처 문화동 328-1번지다. 언덕배기 좁은 골목을 깊숙이 들어가면 보이는 붉은 벽돌 단층집이다. 옛집은 흔적도 없고 현대에 새로 지은 집이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내부를 전혀 엿볼 수가 없다. 담벼락에 작은 안내판이 붙어있다. 박경리 선생과 연고가 없는 일반 시민이 살고 있어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표지판조차 조심스레 붙인 이유를 그제야 알겠다.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날 법한 골목을 끼고 다닥다닥 낮은 지붕을 맞댄 집들은 당시에도 있었을까.
이 일대는 '박경리 문학 동네'라 일컫는다. 어린 박경리가 오르내리던 서문고개, 충렬사 높다란 계단, 건너편 명정샘 그리고 간창골을 지나 세병관…. 세병관은 일제강점기 때 학교 건물로 쓰였고 박경리가 이곳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사라지거나 들어섰거나 많이도 변했을 텐데 통영에서는 아직도 옛 지명을 보듬어 사용하고 있어 서문고개와 서피랑 일대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소설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생가터에서 서피랑 뚝지먼당길을 걸어 서포루에 닿았을 때 정오의 하늘은 더욱 낮게 깔리고 바람은 사정없이 몰아쳐 먼바다의 붉은 등대가 둥둥 떠밀려가는 듯했다. 사월의 통영 바다는 김약국네 다섯 딸을 위한 진혼굿을 하는 걸까.
◇한실댁과 윤씨가 함께 건너가던 해저터널
"우리가 죽으면 이런 어두운 굴을 지나가겄제."
"아마도 저승길이 이럴 기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김약국의 딸들>에서 한실댁과 윤씨가 해저터널을 건너며 주고받는 말이다. 서문고개와 뚝지먼당을 내려와 해저터널로 갔다. 해저터널은 다섯 딸의 어미이자 김약국의 아내 한실댁과 아들 때문에 속 시끄러운 윤 씨가 불공을 드리기 위해 미륵도 용화사로 가는 길이다.
해저터널에 대한 첫 기억은 1995년 무렵이다. 터널은 입구부터 으스스했다. 들어갈수록 더 어둡고 축축했다. 여기저기 갈라진 시멘트 사이에서 바닷물이 지직거리고 쿰쿰하고 지린내가 코끝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은 터널을 다 건너지 못하고 돌아 나왔다. 해저터널에 대한 첫 기억은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을 때만큼이나 강렬했다. 그 뒤에도 두세 번 더 방문했고 그때마다 터널은 더 정비돼 있었다. 하지만 첫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참 많이 달라졌다. 입구부터 환한 터널이 왠지 낯설다. 터널 안도 천장에 줄지은 네온으로 밖인 듯 환하다. 터널 중간쯤에는 1932년 해저터널 공사 전의 모습, 당시 공사 과정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사진 전시를 해놓았다. 환기가 잘 되고 있는지 습한 냄새가 없다. 도리어 쾌적하기조차 하다. 긴 터널을 건너다가 앉아 쉬는 사람도 있다. 때마침 여인 둘이 짐을 들고 지고 해저터널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가는 뒷모습이 소설 속 한실댁과 윤씨가 걸어가는 듯하다. 부디 그들처럼 삶이 비극적이지는 않기를.
◇박경리 묘소에서 봄을 기다리다
박경리 기념관은 산양읍에 있다. 4465㎡의 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다. 2008년 8월에 착공해 2010년 5월 완공됐다. 발표 연도에 따른 작품들, 생전에 쓰던 유품, 집필하던 서재 모습 등을 통해 박경리의 일대기와 작품세계를 한꺼번에 알 수 있다. <김약국의 딸들>을 읽은 독자라면 전시실에 재현해 놓은 당시의 통영 시내를 살펴보며 소설 속 인물과 이야기를 되짚어보는 재미가 크다. 기념관 앞은 작은 공원이다. 책을 펴들고 먼바다에 시선을 둔, 생전에 여러 지면에서 엿보던 그 모습 그대로 만든 청동상이 있다. 동상 받침대에 유고 시집의 제목이기도한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란 문구가 적혀있다. 현재 박경리 기념관은 6월 30일까지 휴관 중이다. 건물 보수 작업과 전시실 재배치 등 새로이 단장해서 재개관할 예정이다.
묘소는 숲 한가운데 무심한 듯 자리 잡고 있다. 더러 새들이 날아들 뿐 고즈넉하다. 묘소 앞 제단에는 누군가가 작은 솔방울을 주워 곱게 꽃으로 빚어 놓았다. 박경리는 이곳에서 멀리 통영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열네 살 무렵 떠나 여든이 넘어 통영으로 돌아왔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 마지막은 용빈과 용혜가 배 갑판 위에 서서 멀어지는 통영항을 보고 있다. 그리고 '봄이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그렇게 떠난 용빈과 용혜는 통영으로 돌아왔을까. 그들에게도 봄은 왔을까. 세상은 온통 연둣빛인데 어째 아직 봄이지 않다. 삶은 계속되고 기어이 봄은 오리라.
/ 권영란 작가
지역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시장으로 여행가자>, <남강 오백리 물길여행>, <경상의 말들>을 차례로 출간했다. <남강 오백리 물길여행>으로 제1회 한국지역출판대상을 받았다. 2016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있으며, 지역 기록과 경남 토박이말 채록 작업을 궁리 중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