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문학관 가는 길] ② 사천 박재삼 문학관 

어린시절 보낸 서금동 골목
박재삼 문학의거리로 조성
가난 속 소년과 꿈 떠올려

서쪽 노산공원에 문학관
시인의 삶·작품세계 담겨
활용도 낮은 듯 하지만
멋진 섬섬섬 풍경에 위안

지역마다 문학관이나 작가 생가 또는 기념비가 한두 곳은 있다. 대부분 지역 출신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문학 기념물이 있어도 찾는 발걸음이 없고, 무관심하다면 건립하고 기록하는 의미가 있을까. 지난 시대 작가들은 한국사회의 현실과 인간의 삶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지역 곳곳에 있는 생가, 시비, 문학관 등 문학 기념물을 톺아보고자 한다. 

이른 아침부터 여름비처럼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국도 3호선을 달리고 있다. 산청에서 진주로, 다시 사천으로, 남쪽 바다 끝 박재삼 문학관으로 가는 길이다. 지금의 국도 3호선은 1992년 옛 진삼선 철로를 걷고 새로이 들어선 확장 도로다. 옛 3호선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줄을 이어 여름이면 무성한 잎들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사천시 용현면 사천시청 앞을 지나는 지금의 진삼로가 옛길의 흔적이다. 국도 3호선에서 보이던 먼바다가 오늘은 가늠조차 힘들다. 들인지 바다인지 하늘인지 분간하기 힘든 회색빛이다. 

사천시가 서금동에 조성한 박재삼 문학의 거리. /권영란 작가
사천시가 서금동에 조성한 박재삼 문학의 거리. /권영란 작가
박재삼 문학의 거리에서 노산공원으로 이어지는 길. /권영란 작가 
박재삼 문학의 거리에서 노산공원으로 이어지는 길. /권영란 작가 

◇맑은 시심을 길어 올린 삼천포 바다 그리고 서금동 골목

박재삼(1933~1997)은 한국 서정시의 대표 시인으로 꼽힌다. 시인은 생전에 15권의 시집과 10권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이외 다양한 작품집이 있다. 1983년 시집 <추억에서> 이후 1997년 작고할 때까지 1~3년 간격으로 시집을 출간했다. 병이 깊어 활동하기 힘들 때 오히려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박재삼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해방 후 4세 무렵 외가가 있는 삼천포로 들어왔고 이곳 서금동에서 성장했다. 소년 박재삼의 집은 노산공원 근처에 있었다. 문밖을 나서면 남쪽으로는 팔포바다가 있고 서쪽으로는 노산공원과 삼천포항이 있다. 끼니도 챙겨 먹기 힘든 집안이라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했다. 여자중학교 사환으로 일하면서 야간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밥벌이에 전전하다 좋은 기회가 닿아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이곳 삼천포 바다와 서금동 골목 풍경은 그의 초기 시 '가난의 골목에서는'에서 엿볼 수 있다.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중략)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이 아닌 것가. 우리의 골목 속의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도 옳은 일쯤 되리라.(후략)"  

바닷가 골목골목에 기댄 낮은 지붕 아래는 밤마다 '가난한 숨소리'가 눈물처럼 흘렀고 좁고 긴 골목을 빠져나온 소년은 집 앞 바다로 갔을 게다.

옛집은 흔적 없고 그 자리에 번듯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수십 년 세월을 거치는 동안 골목은 넓어졌고 이웃하던 낡은 옛집들은 철거됐거나 새 건물이 들어섰다. 노산공원에서 삼천포중앙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박재삼 길'로 명명됐고 최근에 만든 듯 초입에는 '박재삼 문학의 거리'라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골목길 곳곳의 담벼락에는 시인의 시가 적혀있어 오가는 이의 눈길을 잡아끈다. 

박재삼문학관 옥상에서 본 삼천포 앞바다. /권영란 기자 
박재삼문학관 옥상에서 본 삼천포 앞바다. /권영란 기자 
박재삼 시인 살던 옛집 근처 삼천포중앙시장. 시인의 엄매(엄마)도 이곳 어딘가에서 좌판을 깔고 있었을 것이다. /권영란 작가
박재삼 시인 살던 옛집 근처 삼천포중앙시장. 시인의 엄매(엄마)도 이곳 어딘가에서 좌판을 깔고 있었을 것이다. /권영란 작가

◇박재삼의 시세계를 이루는 삼천포는 어떤 곳인가

박재삼의 문학에 있어 시 세계의 바탕은 삼천포다. 삼천포는 이제 행정 지명에서 사라진 옛 지명이다. 199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되면서 행정명이 사천시가 됐다. 당시 삼천포시는 인구 6만 명, 사천군은 인구 4만 명. 삼천포 주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안 된다. 사천은 군이고 삼천포는 시인데 와 사천이라 카노?"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감정은 남아있는 듯하다. 이곳 주민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아직도 "우리 삼천포 사람들"로 시작한다. 한 마디로 삼천포는 이곳 주민들의 생생한 추억과 자존감이 깃든 지명이다. 행정명인 사천시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삼천포는 고려 때부터 조창이 있어 사람과 물산이 모이던 활발한 지역이었다. 옛 자료에 따르면 삼천포는 개성에서 뱃길 3000리가 되는 포구여서 삼천포라는 지명을 얻게 됐다. 삼천포 주민들은 새벽이면 생선 등 물건을 이고지고 인근 큰 도시인 진주로 팔러 나갔다. 1962년 발표한 박재삼의 시 '추억에서'는 삼천포에서 진주중앙시장 생어물전으로 생선 팔러간 엄매 이야기다. 신새벽에 갔다가 밤빛에 돌아오는 엄매를 기다리던 오누이는 차가운 골방 안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었던가. 삼천포 바닷가 주민 대부분이 돈을 사기 위해 사천읍으로, 진주로 나가던 시절이었다. 

박재삼이 힘든 서울 생활하던 1960년대 후반 삼천포는 쥐치 사업을 독점하며 일본 수출까지 했다. 항구 주변에는 쥐치 가공공장이며 냉동공장이 들어섰다. 1965년께 삼천포 팔포바다 앞까지 진삼선 기차가 들어왔다. 진삼선은 삼천포 주민의 발이 되었고 상권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시인도 일 년에 몇 번 귀향길에 진삼선을 탔을 게다. 진삼선은 1981년 운행 중단됐다. 박재삼의 옛집 옆에 '카페 삼천포역'이 옛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노산공원 초입 박재삼문학관으로 오르는 길. /권영란 작가
노산공원 초입 박재삼문학관으로 오르는 길. /권영란 작가
박재삼문학관 입구에 있는 팽나무와 시인 동상. /권영란 기자
박재삼문학관 입구에 있는 팽나무와 시인 동상. /권영란 기자
박재삼문학관 1층 로비. /권영란 작가
박재삼문학관 1층 로비. /권영란 작가
박재삼문학관 1층 전시실에는 시인의 집필실을 재현해 놓았다. /권영란 작가 
박재삼문학관 1층 전시실에는 시인의 집필실을 재현해 놓았다. /권영란 작가 

◇문학관 앞 삼천포 앞바다에는 솔섬 아두섬 장구섬·…섬들이 떠있다

사천시 서금동 노산공원 언덕 위에 있는 박재삼 문학관은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기념하고 조명하는 공간이다. 공원을 오르는 여러 길 중 '박재삼 문학의 거리'로 이어지는 동쪽 계단 길을 올랐다. 얼핏 보기에 계단은 가팔라 보여 다른 길이 없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딱 50~60여 계단이 그리 보일 뿐 계단을 다 오르면 금세 호젓한 공원길이다. 

문학관은 2008년 개관했다. 3층으로 됐지만 그리 크지는 않다. 입구 마당 한쪽 커다란 포구나무(팽나무) 앞에는 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시인의 동상이 있다. 드나드는 관람객 중 더러 그 동상 옆에 앉아 사진을 찍고는 한다. 오늘은 빗속에 홀로 앉아 있다. 너른 마당을 끼고 문학관 왼쪽은 조선시대 아이들의 학당이었던 호연재를 복원해 뒀는데 제법 규모가 크고 단아한 기와집이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1층 로비에 실물 크기의 박재삼 브로마이드가 서 있다. 시인의 친필 시들도 전시돼 있다. 전시실에는 박재삼 시인의 연보, 작품, 친필 원고, 소장 도서, 앨범 등 다양한 유품 전시가 마련돼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전시관인데 한쪽 코너에는 관람객이 시인의 시를 직접 낭송하는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다. 낭송한 시를 USB에 저장해서 가져갈 수도 있다. 

2층에는 시인의 소장 도서가 한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희귀본 책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시인이 두고두고 읽었을 시집들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잘 갖추진 소강연장도 있었는데 세미나 등 일반 대관도 가능했다. 1일 사용료가 시간에 따라 2~7만 원이라 비교적 부담 없이 대관 신청할 수 있다. 전시실 밖 한쪽에는 시인의 시를 탁본으로 뜰 수 있는 탁본 체험도 마련돼 있으나 상시 운영은 되고 있지 않았다. 3층에는 어린이 도서관과 휴게 공간이 있다하여 내심 기대를 했다. 문학관 옆에는 옛 학당이었던 호연재가 있고 시인 또한 가난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린 시절이 있었으니 어린이 도서관을 갖췄구나 싶었다. 어른들만 찾는 문학관이 아니라 청소년은 물론 아이와 부모가 손을 잡고 문학관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건가 싶었다. 잠시 3층 어린이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뒹굴며 책을 뒤적이는 모습을 떠올렸다.

기대가 너무 컸나…, 3층 어린이 도서관은 휑했다. 휴게 장소인 듯 책상이 덩그러니 있고 방 한 칸의 책장에는 2000년대 이전의 어린이책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손이 가지 않는 오래되고 낡은 책들이 꽂혀있는 먼지 쌓인 책장을 살펴볼 관람객이 있을까. 무관심하게 버려진 공간이 많이 아쉬웠다. 공간 활용과 주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여러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짐작컨대 가장 큰 문제는 건립 후 장기간 관리 운영하면서 적은 예산과 적은 인력으로 딱히 방도를 못 찾았을 게다. 

다행히 문학관 3층까지 오른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건 서남쪽으로 난 창 기득히 들어오는 삼천포 바다다. 옥상 테라스로 나가니 빗속 바다 위로 아슴푸레 등대가 서 있다. 맑은 날이면 파란 바다 위로 솔섬·아두섬·장구섬 등 크고 작은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문학관 3층 옥상에서는 잠시 책을 펼치거나 하염없이 바다를 보기에 좋은 곳이다. 

문학관에서 내려오는 남쪽 바닷길은 노산 정자와 바다 데크가 잘 정비돼 있다.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바닷가 바위에 좌판을 깔고 그 자리에서 숭덩숭덩 썰어주던 '비렁횟집'은 이제 옛이야기가 됐다. 다만 소년 박재삼의 가난한 숨소리를 품어주던 그 바다가 오늘 또 누군가의 숨소리를 다독이고 있다.  

/ 권영란 작가 

권영란 작가.
권영란 작가.

지역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시장으로 여행가자>, <남강 오백리 물길여행>, <경상의 말들>을 차례로 출간했다. <남강 오백리 물길여행>으로 제1회 한국지역출판대상을 받았다. 2016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있으며, 지역 기록과 경남 토박이말 채록 작업을 궁리 중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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