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문학관 가는 길] ⑥ 거제 청마기념관

지역마다 문학관이나 작가 생가 또는 기념비가 한두 곳은 있다. 대부분 지역 출신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문학 기념물이 있어도 찾는 발걸음이 없고, 무관심하다면 건립하고 기록하는 의미가 있을까. 지난 시대 작가들은 한국사회의 현실과 인간의 삶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지역 곳곳에 있는 생가, 시비, 문학관 등 문학 기념물을 톺아보고자 한다.

경남 지역 문학관, 기념관, 시비 등을 두루 검색하면 시비가 건립된 곳은 일일이 찾기 힘드나 문학관 또는 기념관은 건립 과정이나 운영 등을 금세 알 수 있다. 대부분 작가의 출생지에서 대표 문학인으로 조명하고 있다. 더러는 대하소설 <토지>의 박경리처럼 한 작가를 두고 여러 지역에서 시비나 문학공원 또는 기념관을 건립해 생애와 작품세계를 널리 알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청마 유치환도 이 같은 경우일까. 현재 거제시 둔덕면에는 청마기념관이 있고 통영시 정량동에는 청마문학관이 있다. 두 지역이 모두 시인과 또는 시인의 작품과 연결된 뭔가가 있으려니 짐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인의 생가가 두 지역에 다 있다. 어떤 우여곡절이 있는 걸까? 애초 거제시 청마기념관만 둘러보고자 했으나 두 곳을 다 둘러보기로 작정했다.

거제시 둔덕면 청마기념관 전경. 입구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권영란 작가
거제시 둔덕면 청마기념관 전경. 입구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권영란 작가
거제 청마기념관 앞 빨간 ‘청마우체통’. /권영란 작가
거제 청마기념관 앞 빨간 ‘청마우체통’. /권영란 작가

 

거제시 둔덕면 청마기념관과 생가
방하마을에는 ‘박 넌출 남풍에 자라고’

거제시 둔덕면 청마기념관으로 가는 길이다. 옛 거제대교를 건너 거제시 방하마을로 향한다. 산방산 아래 방하마을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낮은 산과 탁 트인 들, 하루에 몇 번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이 있고 마을 어귀 정자나무가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청마기념관과 청마 생가가 있고 골목을 따라 마을의 집들이 돌아앉아 있다.

기념관은 2008년 개관한 아담한 2층 건물이다. 마당 한쪽에는 시인의 동상과 대표 시를 적은 시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시인은 자신의 시집들을 쌓아 기대고 선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시비에는 ‘출생기’, ‘행복’, ‘깃발’ 세 편의 시가 새겨져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요즘 보기 드문 빨간 우체통이 놓여있다. ‘청마우체통’이라 적혀있다.

자연스레 시인의 시 중 ‘행복’을 떠올리게 된다. 한때 청춘남녀의 연애편지 속 단골 시였다. ‘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구절을 읊으며 괜스레 약속 장소를 우체국 앞으로 정하기도 했다. 설렘과 애틋함이 깃든 그 시절의 우리 모두의 기억이다.

거제 청마기념관 마당에 있는 청마 동상과 시비. /권영란 작가
거제 청마기념관 마당에 있는 청마 동상과 시비. /권영란 작가

흔히 ‘교과서 시인’으로 얘기하는 청마 유치환(1908~1967)은 한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대부분 시가 뭔지도 모르는 10대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유치환의 시를 외우듯이 배웠다. 시 ‘깃발’의 전문과 의미는 몰라도 첫 구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은 한때 청춘들과 함께했다. 1980년대 그 시절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만큼이나 집회 후 뒤풀이에서 술잔을 치켜들고 “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외치곤 했으니까.

유치환은 국권피탈 두 해 전에 태어났고 아버지는 거제 사람, 어머니는 통영 사람이었다. 극작가 동랑 유치진이 시인의 형이다. 아버지는 거제에서 살다가 처가가 있는 통영으로 이사를 했다. 시인의 출생지 논란은 이 시기가 유치환이 태어나기 전인지 태어난 뒤인지 명확지 않아 시인의 출생지 논란이 일었던 걸까. 세 살 위인 형 유치진은 거제가 고향이다. 유치환은 1931년 <문예월간>에 시 ‘정적’으로 등단, 1936년 <조선문단>에 시 ‘깃발’을 발표, 1937년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펴내며 통영·부산·대구 등지에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과 문화운동을 했다.

거제 청마기념관의 내부 전경과 전시물. /권영란 작가
거제 청마기념관의 내부 전경과 전시물. /권영란 작가
거제 청마기념관에 있는 시인의 낙관들과 당대 문학지들. /권영란 작가
거제 청마기념관에 있는 시인의 낙관들과 당대 문학지들. /권영란 작가

기념관 1층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더듬고 감상하는 공간이다. 2층은 시인의 생애와 연대별 작품들, 출간 당시의 시집과 문학지, 시인이 사용하던 낙관을 보존 전시하고 있어 시인과 당대를 같이했던 문화예술인을 짚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시인은 시 ‘거제도 둔덕골’에서 집안의 다정스레 내력을 읊으며 ‘아아 나도 나이 불혹에 가까웠거늘/ 슬플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조의 하늘로 돌아와/ 일출이경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라고 말한다.

기념관 건너편은 바로 시인의 생가다. 생가는 본채와 아래채 그리고 마당의 우물과 장독대, 작은 꽃밭으로 되어 있는데 봉숭아와 맨드라미가 가을볕에 붉디붉다. 마루 벽면에는 시인의 옛 사진과 시 ‘출생기’가 걸려있다. 구절 중 ‘…지붕에 박 넌출 남풍에 자라고/푸른 하늘엔 석류꽃 피 뱉은 듯 피어/나를 잉태한 어머니는…’에서 출생지가 이곳인가 더듬게 된다. 골목 돌담에는 시인을 위한 후배 시인들의 시들이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다. 시인의 묘소는 지금 이곳 둔덕골에 있다.

시인은 여러 지역의 학교에 근무했는데 한때 함양 안의중학교 교장으로 있었다. 현재 함양 향토전자대전에는 청마의 출생지를 거제 둔덕면 방아리로 언급하고 있다.

통영시 정량동 청마문학관과 생가
동호항 ‘하늘은 기旗빨처럼 다정하고’

 

통영시 정량동 청마문학관 전경. /권영란
통영시 정량동 청마문학관 전경. /권영란
통영 청마문학관에는 시인이 사용하던 국어사전이 있다. 이희승 박사의 <국어대사전>이다. /권영란 작가
통영 청마문학관에는 시인이 사용하던 국어사전이 있다. 이희승 박사의 <국어대사전>이다. /권영란 작가
통영 청마문학관 입구에 있는 시인의 동상. /권영란 작가
통영 청마문학관 입구에 있는 시인의 동상. /권영란 작가

순간 길이 헷갈렸다. 배 수리 공장과 오래된 가게들이 있는 골목에서 눈앞의 ‘청마문학관’ 작은 표지판을 보고서야 방향을 잡았다. 통영시 정량동에 있는 청마문학관은 통영시가 2000년 2월 청마 유치환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했다. 통영시에 따르면 원래 청마 생가는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인데 장소 확보가 힘들어 지금의 정량동, 동호항이 보이는 망일봉 기슭에 문학관을 개관하고 그 위에 생가를 복원했다.

문학관으로 가는 입구 돌계단에서 크게 숨부터 쉰다. 짧은 거리지만 가파른 계단이라 수월치가 않다. 어이쿠, 다리가 불편한 이들이나 노약자가 접근하기는 힘들겠다 싶다. 돌계단을 오르는데 한 아주머니가 앉아 있다. 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걸 보니 이곳 시설 청소를 하는 분인가 짐작할 뿐 고단한 그이에게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때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렸다. 바로 등 뒤에서 울리듯 가깝다. 눈길 끝에 바다와 항구가 보인다. 문학관 아래 어지러운 골목길 끝에는 동호항이 있었다.

문학관 입구에는 시인의 자작 해설집 <구름에 그린다> 중 ‘진실한 시는 마침내 시가 아니어도 좋다’는 구절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전시는 시인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좇아 세 주제로 나눠 있다. 첫째는 청마의 생애, 둘째는 청마의 작품 세계, 셋째는 청마의 발자취이다. 전시된 작품만으로 시인의 문학세계를 다 알 수 있겠냐만 작품의 변천, 평가 등을 접할 수 있고 또 시인의 유품과 각종 문헌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시인의 연보와 함께 내건 ‘청마의 고향 통영’이 선명하다. 시인의 시 ‘귀고’ 중 ‘우리 고향 선창가는 길보다도 사람이 많았소/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기旗빨처럼 다정하고’라는 구절에서 통영을 더듬게 된다.

문학관 옆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복원한 생가가 있다. 생가 마당에 들어서니 시옷 자 본채와 아래채가 있고 그 사이 장독대가 있고 마당 끝에 공이도 없는 돌절구가 놓여있다. 시인이 ‘구름에 그린다’에서 말하듯 ‘내가 자라던 집은 바닷가 비탈이며 골짝 새로 다닥다닥 초가들이 밀집한 가운데… 선창가엔 마포, 하동 등지로부터 장배들이 수없이 들어 닿고’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청마 유치환을 둘러싼 두 가지 논란

 

거제 청마기념관 건너편 유치환 시인의 생가. /권영란 작가
거제 청마기념관 건너편 유치환 시인의 생가. /권영란 작가
통영 청마문학관 위쪽에 있는 유치환 시인의 생가. /권영란 작가
통영 청마문학관 위쪽에 있는 유치환 시인의 생가. /권영란 작가

대구·부산 향토전자사전에는 시인의 출생지를 통영으로 밝히고 있다. 출생지, 그리고 친일 문제는 청마 유치환을 둘러싼 두 가지 논란이다. 통영시와 거제시는 청마의 출생지 진위를 따지는 문제로 법적 소송까지 간 바 있다. 대법원은 청마의 자작해설집 <구름에 그린다>에서 언급한 내용을 들어 통영시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유족들은 거제시에 힘을 실어줬다. 딱히 시원스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현재 두 지역은 해마다 각종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 통영시는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청마문학상을 제정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지난 8월 청마문학상에 <습이거나 스페인>(송재학, 문학과지성사)을 선정했다. 거제시는 18년째 시인의 문학 정신을 기리는 청마문학제를 열고 있다.

어떤 이는 거제로 가고 어떤 이는 통영으로 가고 있다. 두 지역 어느 곳에서도 시인의 출생지 논란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시인의 고향이 자기 지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거꾸로 생각해본다. 찬사와 업적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논란이든 과오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건 어떨까. 제대로 된 기록이고 기림이라면.

추분 지나 남쪽바다 하늘은 시인이 ‘귀고’에서 읊었듯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깃발처럼 다정하고 ‘행복’의 한 구절처럼 바다는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인양 파랗다. 아스라이 그 경계에서 턱없이 설레는 이는 뉘인지.

/권영란 지역스토리텔링 전문가·작가

 

권영란 작가.
권영란 작가.

지역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시장으로 여행가자〉, 〈남강 오백리 물길여행〉, 〈경상의 말들〉을 차례로 출간했다. 〈남강 오백리 물길여행〉으로 제1회 한국지역출판대상을 받았다. 2016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있으며, 지역 기록과 경남 토박이말 채록 작업을 궁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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