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촛불에도 윤석열 정부 탄생시킨 한국사회 보수성
이번에도 혁명에 편승한 기득권이 모든 공 가로채나?
쿠데타를 이끌던 대령이 대통령실에 들어서면서 감격에 차 이렇게 말합니다. "드디어 우리가 해냈어!" 정국불안으로 시끄러운 이름 모를 남미의 독재국가. 실제로는 칠레를 모델로 한 듯한데, 픽션인지라 정확히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폭정을 참다못한 군부 소장세력이 은밀하게 쿠데타를 계획합니다.
정보기관에 꼬리를 밟혀 전모를 들킬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쿠데타 세력은 탱크부대를 앞세워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독재자를 지하 감옥에 수감하는 데 성공합니다. 쿠데타를 지휘했던 대령은 혁명군 수뇌부와 대통령실에 들어서면서 안도한 표정으로 우리가 해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먼저 대통령궁을 점령했던 탱크부대 지휘관이 미리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들을 보고 차갑게 응수합니다. "우리가 아니라 나야!"
<배반당한 혁명>, 스탈린에게 쫓기던 트로츠키가 러시아혁명이 당초 의도와 달리 왜곡됐다며 그 실상을 폭로한 책 제목입니다. 1978년 작 정치 스릴러 영화인 <파워 플레이>에 등장하는 이 쿠데타 또한 '배반당한 혁명'을 주제로 내세웁니다.
영화는 쿠데타군 주역으로 참여했다가 망명한 군인이 서구 방송에 출연해 어떻게 혁명이 배반당했는가를 술회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으니 쿠데타란 단어 때문에 이 쿠데타와 윤석열 일당이 벌인 친위쿠데타를 연결 지어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얼개와 성격이 전혀 다르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그게 아닙니다. 혁명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쿠데타는 적어도 명분상 압제를 일삼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 영화를 지금 소환한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촛불과 응원봉으로 만들어낸 '민주 혁명'이 한 차례 배신당했으며, 앞으로도 배신당할 우려가 높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대한민국이지만, 불과 5년만에 그보다 훨씬 더 무능하고 무도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습니다.
이번 탄핵과정에서 시종일관 울려퍼진 '국민주권의 원칙'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 켜켜이 쌓인 보수성은 생각보다 견고합니다. 젊은이들이 광장에서 소리높여 정치를 학습하는 그 시간, 동네 목욕탕을 다녀온 지인은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윤석열이가 칼을 한 번 휘둘러야 하는데, 그것도 못해보고 쯧쯧" "박근혜만 불쌍하지 뭐!"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여성 욕객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또 때가 되면 어떤 고려도 없이 제 2의 윤석열을 선택할 것이고, 탄핵 반대 세력에 표를 던질 것입니다.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언론들 또한 이를 부추길 것이고, 검찰을 포함한 권력기관들은 공정성을 잃은 저울로 그 뒤를 받칠것입니다. 탄핵심판 지연을 노리는 발언들, 윤석열 일당의 대응 태도, 헌법재판소를 걱정하는 사람들…. 요즘 돌아가는 뉴스를 보노라면 그런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박근혜를 몰아낸 촛불혁명을 두고 당시 국내외 인사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나섰던 그들을 보라"며 역동적인 한국사회를 찬양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그 때 뿐이었습니다. 문재인 집권기가 끝나자마자 한국사회는 다시 '패륜아'들에게 권력을 헌납했습니다. 강고한 기득권이 '개 돼지'로 여기는 국민들의 보수성을 부추기고, 눈과 귀를 가로막은 채 사실을 왜곡한 탓입니다.
<파워 플레이>에 등장하는 혁명 세력은 촛불과 응원봉으로 상징되는 민주세력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독재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2024년 현실에서는 온 몸을 던져 친위 쿠데타를 저지했습니다.
하지만 혁명이 성공하는 순간, 모든 공을 가로챈 탱크부대 지휘관은 전임 독재자는 물론 혁명 주도자들까지 반란세력으로 몰아 모조리 처형합니다. 그리고는 조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면서 새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사람만 바뀐 독재정이 다시 시작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2024년 한국사회에서 탱크부대 지휘관으로 상징되는 '혁명 편승 세력'은 누구일까요? 지금까지 윤석열을 옹호하다 계엄사태에 놀라 방향을 바꾼 보수언론, 윤석열 앞에 조아리다 돌연 칼을 빼든 정치검찰,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기회주의자들, 바로 국민들을 호도해 민주적 진보를 원점으로 돌리는 한국사회 기득권이라고 하겠습니다.
광장에 선 많은 사람들은 국회가 윤석열에 대한 탄핵 결정을 내리자 환호했습니다. "드디어 우리가 해냈습니다." 저는 그 뒤에 따를 말이 두렵습니다. 한국사회 기득권은 탄핵 이후를 유린하면서 이렇게 말할 듯 싶습니다. "너희가 아니고 우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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