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사태 직후 4일 저녁부터 시민들이 창원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창원시청 앞 회전교차로, 그것도 차량 통행이 많은 6차로에 신호등 없는 건널목을 지나야 겨우 창원광장으로 갈 수 있다. 그렇게 그날 밤 시민 1000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민주주의를 소생시키는 발걸음을 뗐다. 아마 함께 모인 이들의 눈에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가장 먼저 들어왔을 것이다. 아이돌 가수를 응원할 때 쓰는 것인데, 저마다 상징하는 모양과 빛이 제각각이다.

내란 사태 규탄 집회 현장을 보면서 이렇게 아이돌을 응원하는 문화가 집회·시위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점에 놀랐다. 걸 그룹 소녀시대 중 가수 태연의 팬이라는 한 창원 시민은 "아이돌 팬들이 공개방송을 기다리려고 새벽같이 나오는데, 그때 챙기는 물품을 그대로 들고 오면 되더라"라면서 "아이돌 팬들은 시위에 특화된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돌 팬들은 콘서트 현장 경험으로 추위나 배고픔에 잘 버티고 군중의 규모를 파악할 줄 알며, 모든 일정에 참여율이 높고, 집단적 구호를 잘 외친다. 아이돌 팬들은 주로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데, 이를 통해 집회 정보도 지역 구분 없이 골고루 전해진 것도 특징이다. 집회 현장에는 저마다 개성을 담은 깃발을 들고나온 젊은이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14일 창원시청 앞 잔디광장에도 자체 깃발을 들고 온 이들이 많았다. 개성 있는 깃발은 '나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것을 상징한다.

10·20대 여성이 광장에 나온 것을 두고, 어떤 이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미래 세대로 규정하는 데 거부감을 표현한다. 자신들도 지금 시대를 사는 현재 세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년 전 박근혜 퇴진 집회 때도 발광다이오드(LED) 촛불과 함께 응원봉은 도시의 어두운 거리를 빛으로 수놓았었다. 이번에도 국가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자 다시 응원봉을 들고나온 것뿐이다. 그들은 늘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이번처럼 집중 조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비슷하게 집회·시위 역사가 여성을 지워왔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은 항상 그곳에 있었음에도 말이다.

아이돌 팬들은 이 응원봉을 '가장 소중한 빛'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응원봉을 들고 있을 때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발휘한다. 탄핵 절차와 내란 사태 진상규명이 진행 중이다. 응원봉을 든 시민이 있는 한 우리는 지지치 않고 이를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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