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소년이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이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라는 질문에 은숙 누나가 해 준 대답이다.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공수특전단과 수도방위사령부 병력을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겸손방송국에 투입했다. 헌법에 따르면,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의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다. 대통령은 국회가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협하므로, 국군을 동원해 국회의 기능을 무력화하겠다는 계엄선포 의도를 드러냈다. 그러나 헌법기관인 국회를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무력화하고 싶을 때, 헌법은 국회의 유고는 불가하다는 원칙을 명백히 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무력에 의해 국헌을 문란하게 한 죄로 내란수괴가 돼 버렸다. 이는 대통령의 면책 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즉시 체포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즉각적이고 위중한 범죄를 범한 것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한국사> 교과서 과목에서는 요즘, '민주화를 위한 노력' 항목에서 비상계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우고 있다. 고등학생은 질문한다. "대통령이 왜 반란을 일으키지?" 은숙 누나는 "윤석열은 대통령 직위를 남용해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하기 위해 국군을 이용하려고 있어.  윤석열은 대통령이 아니라, 내란 수괴야"라고 답할 것이다.

1979년 10월 20일 새벽 한밤에 위수령 발령에 따라, 1공수특전여단 2대대 235명의 병력이 창원 39사단에 투입되었고, 이어서 5공수특전여단 5개 대대 1461명의 병력이 경남대학교 교정에 주둔한다. 이들은 10월 27일 아침까지 일주일 정도 마산에 머물면서, 위력시위, 경계, 시민들에 대한 폭행을 자행하고 물러난다. 당시 마산의 청년들은 길거리와 주점에서 폭행당하고, 술집의 술상은 뒤엎어지고, 얼차려를 받고, 몽둥이와 총 개머리판으로 폭행을 당했다. <부산일보> 취재기자의 취재노트와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진술기록에 나오는 장면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들은 한 아버지가 소대장인 아들에게 전화하며 "민간인을 공격하거나 살상을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은숙 누나는 소년에게 "계엄군이 오늘 밤에 들어온대. 집에 가면 이제 여기 오지 마"하고 부탁한다. 그러나 소년은 엄마에게 "걱정 마요. 며칠만 일 거들다가 들어갈게요. 정대 찾아서"라고 안심시키면서 다시 거리로 나선다. 정대는 이미 죽었고, 소년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 의해 사살당해 죽는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표하고 30분 뒤 한 할머니가 손주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울 손자 손녀야 몸조심 하자.  계엄령은 경찰이 밉다 싶으면 무조건 잡아가는 거니까. 조심해 튀는 행동하지 말고. 길 가다가 고성도 하지 말고, 학교에 조용히 다녀."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이 진입한 새벽에 살해된 박용준은 마지막 기록을 남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6일 창원시청광장 앞 집회에서 한 중학생은 "우리의 미래가 걱정되는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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