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힘든 불법 계엄 선포에 불안·공포
권선징악 영화처럼 정의가 승리하기를

3일 밤 10시 33분 단체 채팅방에 뜬 현직 대통령의 기습적인 계엄 선포에 '가짜 뉴스냐', '실화냐', '불법합성물(딥페이크)이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학원을 마치고 나온 딸도 "영화 촬영하는 것 아니지?"라며 비현실적 상황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딸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속보를 하나씩 읽어 주었다. '계엄사 설치', '국회와 지방의회의 정당 활동 금지', '언론 통제 포고령'. "지금 2024년 대한민국 맞아?" 딸의 물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긴박한 상황과 달리 거리는 이상하리만큼 한산했고, 고요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 꺼!"를 외치던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이 떠올랐다.

거실에 온 가족이 모여 국회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회 표결이다. '재적 의원 과반 찬성'을 위해 최소 150명의 국회의원이 본회의장에 모여야 했다. 막혀있던 출입문 담을 넘어 의원들이 국회에 입성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국회 하늘 위로 군 헬기가 나타나더니 곧이어 특수부대원이 무장을 한 채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취재진과 보좌진, 무장한 계엄군이 뒤엉켜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됐고, 서울 시내 한복판엔 장갑차까지 등장했다. 의결정족수 190명이 채워졌지만, 결의안이 올라오지 않아 상정이 늦어졌고, 그사이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건물에 진입했다.

새벽 1시 1분. 재석 190명 중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됐다. "교과서에 실릴 역사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다니…. " 딸이 넋두리를 늘어놨다. "12월 3일을 잘 기억해 둬야 해."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계엄 선포 6시간 만에 대통령 계엄령 해제 대국민 담화가 발표되고,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이 철수하면서 종료됐다.

150분, 전 국민은 뜬 눈으로 생중계를 지켜보며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현직 대통령의 일방적인 계엄령은 법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불법 계엄 선포였다.

4일 아침.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으리만큼 하늘은 맑았고, 복잡한 머리를 스치는 공기는 차가웠다. 만나는 이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로 안부를 물었다. 업무를 위한 단체 채팅방에는 계엄령이 몰고 온 파장이 컸다. 녹화는 연기되고, 섭외도 뒤엉켰다. 연말 모임도 하나둘 취소됐다. 일상이 무너졌다. 현직 대통령의 일방적 계엄령은 외신에 일제히 대서특필 됐다. 오월의 광주를 다룬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긴급 타전된 지 두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챗GPT에게 비상계엄령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이런 답변을 내놨다. "솔직히 국민은 하루아침에 일상과 자유가 위협받는 걸 목격한 거잖아. 이런 경험은 분노와 두려움을 동시에 남길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이제 중요한 건,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거 아닐까 싶어. 이번 사건이 어떤 식으로 역사의 한 장에 기록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이런 비상사태에서 결국 시민과 민주주의 힘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거야."

2024년 겨울, 대한민국 서울에서 벌어진 영화 같은 현실이 더 나은 봄을 위한 씨앗이 되길…. 악인이 등장하는 영화의 결말이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듯, 이번 사건도 정의와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역사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최은정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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