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사무실처럼 연말 편집국은 평소보다 더 긴장되고 분주합니다. 다음 날 배포될 신문을 만드는 취재-기사 작성-편집 업무와 따로, 각 부서가 그리고 편집국 전체가 이번 한 해를 평가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작업을 하느라 바빠집니다. 경남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여러모로 짚어보고 그 흐름 속에 언론으로서 해야 할 것을 찾습니다. 그 끝에 내년 새 의제를 정하고, 의제를 지표 삼아 다양한 기획기사 계획을 세웁니다.

10월에 새해 준비 회의를 시작한 후 '지금'을 찬찬히 살펴보면 볼수록 우울하고 답답해졌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런데 설마 정말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닐까 싶은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을 과녁과 방패 삼아 팽팽히 맞서 평행선만 그어온, 싸우느라 힘 다 빼고 정작 중요한 건 아무것도 처리하지 못한 국회와, 성장을 멈추고 얼어붙는 국내외 경제, 거칠고 분명하게 지구를 삼키는 기후위기도 심각하지만, 이 엄혹한 상황이 이제 국민 일상 구석구석까지 덮쳐 그저 자기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밑이 무너져내리고 있는데 이 사태가 나아지리라는 말은커녕 얼마나 더 좌절해야 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침몰 중이라는 아우성을 뛰어넘어 이미 폐허라는 자포자기 탄식까지 나온 지 오래입니다. 대통령 탄핵 요구도 있지만 탄핵을 또 반복하는 것이 과연 해법일까, 탄핵 뒤에는 어찌할 건가 하는 고민이 깊었습니다.

캄캄한 늪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계엄령이라니, 1979년에서 45년이 지나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곧바로 국회의사당 하늘에 군 헬기가 날고 유리창까지 깨 본회의장으로 진입하려는 무장 군인들과 정문에서 의원과 시민들을 총으로 막아선 계엄군의 모습은 충격적이고 무서워 되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헌법에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여야 국회의원들도 국민도 그 같은 상황이라는 대통령의 판단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은 대체 누구와 무슨 전쟁을 하는 중인지, 각자의 생존 전쟁을 하는 국민은 보이지 않는 것인지, 기습 계엄령으로 그 밤 온 나라가 흔들렸고 대외 신인도와 국격에 금이 갔으며 정치·경제 후폭풍이 불 보듯 한데 대체 어떤 구국을 하겠다는 건지 직접 묻고 싶습니다.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2시간 30여 분 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고 그로부터 3시간 30여 분 지나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선언했습니다. 단 6시간의 계엄, 직후부터 정치권에서는 탄핵, 퇴진, 하야 요구를 쏟아냈습니다. 각계 단체에서도 더는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외칩니다. 정상적인 국정 운영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혼돈의 새벽을 보내면서 근래 내내 안갯속 같았던 머리는 반대로 맑아졌습니다. 눈앞의 숙제가 명료해졌습니다. 국민을 향해 무기를 겨누는 자에게서, 국민이 준 권력을 당장 거둬야 할 때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그 어떤 '다음'도 없습니다.

/임정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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