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현장 노동자] 5년 차 마트 배송기사
그늘 없는 야외 작업장에서 물류 적재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 맞추랴 못 쉬어
물·음료수 등 무거운 물품 대다수 차지
"관절이란 관절은 이미 나간 지 오래다"
30일 오후 홈플러스 창원점 물류 입고장에 뙤약볕이 내리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과 택배 탑차 20여 대가 뿜어내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뙤약볕 아래 전자 온도계는 한때 44.4도까지 치솟았다.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 위로 온라인 배송기사들이 오갔다. 허리 높이까지 물품을 싣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수레를 밀었다. 강한 햇볕을 피하려 두건과 팔 토시 등으로 온몸을 가린 상태였다.
배송기사들은 오전 10시, 오후 2ㆍ5시 하루 세 차례 탑차를 끌고나간다. 총 배송 건수는 40건 정도다. 건수만 보면 많지 않아 보이지만 배송 물품은 300개가 넘는다. 4만 원 이상 구매해야 무료 배송이 가능한 까닭에 한 건이라고 해도 배송 물품은 수십 개에 이른다.
정해진 출발 시각에 맞추려면 늘 빠듯하다. 그렇다고 너무 빨라도 안 된다. 고객들에게 고지된 배송 예정 시간을 맞춰야 한다.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탑차 주차 공간이 야외에 있다는 점이다. 물품을 창고에서 옮겨 차량에 실어야 하는 기사들은 폭염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앞선 배송이 지연되거나 물품 수가 많으면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5년 차 배송 기사 ㄱ(53) 씨는 더우나 추우나 야외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여기는 그늘막 하나 없습니다. 이 더위에 무거운 물, 음료수, 쌀을 차에 실어야 하는데 기사들만 죽어나는 겁니다. 그것을 하루 세 번씩 해야 하니 관절이란 관절은 이미 다 나갔습니다.”
배송도 만만치 않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물품이다 보니 고객들이 직접 들고 가기 어려운 물, 음료수, 쌀 등이 대다수다.
“얼마 전에는 음료수 120개를 시킨 집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을 5번 올라갔다 내려왔어요. 가능하면 물품을 나눠서 주문해달라고 요청하는데, 고객들은 배달비 받지 않느냐고 되레 본사로 항의를 합니다. 그러면 저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계단을 오르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ㄱ 씨는 한 달에 6일 빼고 아침 8시 출근, 8시 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마트 휴무일에 쉬지만 유일하게 길게 쉴 수 있는 날은 설날과 추석 이틀 휴무가 전부다. 휴가를 가려면 사비로 직접 대체 인력을 구해야 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 쉬지 않고 일하지만 실제 손에 쥐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물량이 많을 때 통장에 한 달 350만 원까지 찍히기는 합니다. 근데 영업용 차량 번호판 구매 비용 한 달에 19만 원, 차량 할부 70만 원, 보험료 15만 원 등을 빼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200만 원 조금 넘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잘 안 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매일 홈플러스로 출근하지만 홈플러스 소속 직원은 아니다. 이 때문에 작업 현장 개선 요구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땅한 휴게시설조차 없다.
“홈플러스에서는 자기네들 직원이 아니라서 안 된다, 시청 땅이라서 안 된다, 늘 핑계는 많습니다. 휴게시설이 지하 2층에 있기는 한데, 안 그래도 시간 부족한 기사들이 언제 왔다 갔다 합니까. 물류 창고 안에는 홈플러스 직원들이 있는데 거기는 시원하더라고요.”
ㄱ 씨는 언제 다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있다.
“앞에 있던 한 기사는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그만뒀습니다. 또 몇 달 전에 한 기사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근골격계 질환은 그냥 달고 사는 거고요. 뉴스에 나오는 거처럼 저도 과로사하는 거는 아닌지 늘 불안합니다.”
김영혜 마트노동조합 경남본부 사무국장은 “휴식 문제부터 고중량 물품 배송,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임금까지 마트 배송 노동자는 사각지대 중 사각지대입니다”라며 “마트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러 불이익을 받고 있는데 노조법을 하루빨리 개정해 실질적 사용자에게 노동자 보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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