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현장 노동자] 23년 차 집배원 남용진 씨
체감온도 33도 육박하는데도 쉼 없이 배송
고용노동부 휴식 권고 현장에서는 무용지물
"특정 시간대 작업 중지해서 안전 확보해야"
22일 낮 12시 체감온도가 33도를 넘어섰다. 23년 차 집배원 남용진(49) 씨 옷은 이미 땀으로 흥건한 지 오래다. 원래 옷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날 남 씨는 점심도 거른 채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일대에 우편물을 배송했다. 이 일대 빌라와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직접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남 씨는 직접적인 답을 하기보다 “하루에 63빌딩을 두 번 오르내린다고 보면 된다”며 익숙한 일이라는 듯 웃어 넘겼다.
이날 남 씨의 배송 현장에는 집배 노동자 폭염 실태조사를 위해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와 <경남도민일보>, MBC경남, 창원KBS가 동행했다.
경남본부는 WBGT 값을 통해 집배 노동자 노동 환경과 강도를 분석했다. WBGT는 일사량, 습도, 기온, 바람의 속도 등을 복합적으로 측정해 인간이 실제 느끼는 열 스트레스를 도출한 값이다. 이날 측정된 WBGT 값은 31.4도였다.
고용노동부 고시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기준’을 보면 WBGT 값이 30도 이상일 때 중작업 기준으로 매 시간 25% 작업, 75% 휴식이 권고된다. 중작업은 시간당 열량 350~500칼로리가 소요되는 작업을 뜻한다.
이날 남 씨가 5시간 동안 소비한 총 열량은 2186칼로리로 시간당 약 437칼로리에 달했다. 평균 심박 수는 108bpm, 최고 심박 수는 171bpm을 기록했다.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을 적용하면 중작업을 하는 남 씨는 1시간 기준 15분 일하고 45분 쉬어야 한다. 꼭 고시 기준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고용노동부가 이날 폭염 경고를 발효하며 권고한 내용에 따라 매시간 15분씩 휴식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남 씨가 쉰 시간은 우편물을 배송하며 잠깐 숨을 돌린 게 전부다. 고시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은 물론 15분 휴식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남 씨 업무는 크게 오후 2~3시까지 이어지는 우편물 배송과 이후 우체국에서 퇴근 전까지 진행되는 우편물 분류로 나뉜다. 배송이 늦어진 만큼 퇴근도 늦춰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다수 집배원이 밥 시간도 줄여가며 일을 서두르는 이유다. 이들에게 체감온도나 WBGT 값, 고용노동부 권고 따위는 무의미한 숫자일 뿐이다.
남 씨는 “고용노동부에서는 매시간 몇 분씩 쉬라고 하는데 점심도 5분, 10분 만에 먹는 상황에서 그거를 어떻게 지키느냐”며 “요즘 같은 날씨에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머리가 핑 도는 일도 있는데도 휴식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미 정해져 있는 폭염 관련 고용노동부 고시나 권고가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또 성별이나 연령, 노동 강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체감온도만 두고 일률적으로 권고를 내리다 보니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폭염 관련 안전대책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으려면 연령, 작업 강도 등을 고려해 휴식 시간을 정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그런 것들이 잘 안 되니 특정 시간대 작업을 아예 제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련 법 개정에 앞서 고용노동부 의지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인 만큼 고시, 시행령 등을 제정해 적극적으로 폭염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작업을 중지하는 행위는 결국 비용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노동자 안전을 우선하느냐 기업 이윤을 중시하느냐를 놓고 고용노동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남 씨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접할 때마다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무릎이고 팔, 허리 안 아픈 데가 없는데 이러다 큰일 날 것 같다 생각한 적도 많다”면서도 “내가 조금 아프다고 쉬어버리면 다른 동료가 그만큼 더 일을 해야 하니 어디 크게 다치지 않는 이상 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박신 기자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