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과 교수
의사 사회 폐쇄성·인력 부족·집단이기주의 지적
비급여 진료 늘면서 대형 병원 의사 떠나
"의학적 근거 없는 비급여 진료만 늘어나"
지역 공공병원 문제, 정치적 접근 경계해야
"의대 정원 확대하되 지역 정착 유도해야"
‘의료 공백’은 2023년 한국 사회를 관통한 화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응급실 뺑뺑이부터 지역 공공병원 의사 구인난, 소아과 오픈런까지 곳곳에서 ‘의료체계 붕괴’ 경고음이 울렸습니다. 이에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등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의사단체 등의 우려로 결국 논의는 해를 넘겼습니다.
시민 처지에서 의대 정원을 몇 명 늘려야 하는지, 의료수가는 얼마가 적당한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관련 정보가 제한적이고 의사 사회가 폐쇄적인 까닭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과 교수 주장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의사 처지에서 의료계 현실을 가감 없이 전합니다.
시각에 따라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동안 듣기 어려웠던 내밀한 이야기를 시민과 환자 입장에서 전한다는 점은 의료 정책을 재편해야 하는 현시점에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김윤 교수 인터뷰를 시작으로 지역 의료 공백 문제를 짚고 해결책을 제시해 봅니다.
김윤 교수는 의료 정책을 연구한 학자로 한국 의료계를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이들 중 한 명이다. 특히 의사 당사자로서 내부 문제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코로나19 때는 민간병원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했고 최근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의사 단체를 향해서는 ‘밥그릇 지키기’,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1월 김 교수가 의사 전체 명예를 훼손했다며 의협 중앙윤리위원회 징계 심의에 회부했다.
연이은 의료 체계 붕괴를 목격하는 시민 처지에서는 모처럼 나온 의료계 내부 성찰 목소리가 반갑다. 김 교수가 전하는 이야기는 시민이 의료 정책을 평가·판단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시민도 의료 체계와 문제에 대해서 알아야 정책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며 “지금처럼 의사들이 불편한 진실은 숨기면서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여론을 몰아가는 모습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의료 체계에 누적된 위기… 붕괴 시간문제 = 김 교수는 앞으로 최대 10년은 의료 체계 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의사 수 부족’을 꼽았다. 이와 함께 지나치게 영리적인 의료 시스템과 의사 사회의 집단 이기주의도 위기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정부·정치권과 대형 병원, 의사 단체 간 일종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의료 정책이나 제도가 현실과 달리 많이 왜곡된 상태입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구조적 위기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김 교수는 필수의료 붕괴와 관련해서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를 보던 의사들이 소규모 병의원으로 빠져나가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5~6년 사이 대학병원 의사와 동네 병의원 의사 임금 격차가 2배 가까이 벌어졌습니다. 동네 병의원에서 진행하는 비급여 진료 때문입니다. 비급여 진료는 수익성이 높은데 이는 곧바로 병원 수익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병의원급에서 이뤄지는 비급여 진료 대다수가 의학적으로 큰 효과가 없는 시술이라고 꼬집었다.
“과거에는 비급여 진료를 했어도 지나친 상업화를 경계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너도나도 비급여 진료를 늘리는 추세입니다. 도수 치료부터 통증 주사, 체외 충격파, 관절 주사, 신데렐라 주사 등은 의학적으로 근거 없는 진료라고 봐야 합니다.”
이처럼 비급여 진료 급성장은 실손의료보험(민간 보험) 확대와도 관계 있다. 필수의료 분야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관리하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다. 그 때문에 수가가 오르지 않는 한 수입이 상대적으로 낮고 그에 비해 잦은 야근과 당직 근무로 업무 강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이유로 적지 않은 흉부외과, 외과 등 전공의들이 자기 전공과 무관하게 개원하기도 한다.
◇커지는 지역 의료 공백 = 지역에서 의사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상대적으로 의사들이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공공병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통영적십자병원은 3억 원이 넘는 임금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끝내 의사를 채용하지 못해 창원경상국립대병원에서 교수를 지원받고 있다. 앞서 산청보건의료원은 1년 넘는 구인 과정 끝에 의사 한 명을 채용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정부가 공공병원을 방치하면서 어려움이 가속됐다고 설명했다. 적절한 투자도 없이 지방자치단체장이 누구냐에 따라 정치적으로만 소비됐다는 지적이다.
“공공병원을 수익성만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경영을 방만하게 하게끔 놔둬서도 안 되지요. 결국 적절한 투자와 관리가 필요한데 최근 수년간 공공병원은 그런 관리 없이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정치권에도 공공병원 악화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공공병원 수익성 등 문제가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면서 구조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적절한 투자도 없이 공공병원장에 지방자치단체장과 가까운 사람을 앉히기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는 도덕적 해이도 발생하는 등 끊임없는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의대 정원 확대 대안 되나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지역 필수 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 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조건”이라고 밝혔다. 윤 정부가 의사 수 확대에 의지를 보인 만큼 앞으로 그 규모와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이목이 쏠린다.
김 교수는 인구 1000명당 한국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 점을 근거로 매년 1000명씩 3회에 걸쳐 최소 3000명은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달 10일 발간한 <지역별 의료이용통계연보(2018∼2022)>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평균 의사 수는 5년 전보다 0.17명 늘어난 2.12명(한의사 제외)에 그쳤다. 경남은 전국 평균보다 낮은 1.71명이다.
김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의대생들을 지역에 정착시킬 수 있는 정책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졸업생들이 수도권 병원으로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대 입학생들을 그 지역 출신으로 채우면 됩니다. 지금도 지역인재전형이 있지만 그 비율을 더 높여야 합니다. 적어도 정원 80%는 지역 학생으로 뽑아야지요. 하지만 대학 자율에 맡겨놓다 보니 수도권 학생들이 지방 의대에 입학해 졸업하면 다시 수도권으로 가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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