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1시께 팔용산 등산로 근처에서 성익경 씨가 발견한 쓰레기들. /성익경
24일 오후 1시께 팔용산 등산로 근처에서 성익경 씨가 발견한 쓰레기들. /성익경

굳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등산로를 고르고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오가며 눈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안부를 묻는 일이 일상이다.

창원 팔룡산 등산로는 1년 6개월 새 다른 길이 됐다. 경사진 흙길에 커다란 돌을 박아 계단이 생겼고 등산로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행정이 유난히 신경을 쓴 게 아니다. 모두 두 사람이 만들어낸 변화다.

이들은 재작년 가을부터 최근까지 아무렇게나 길에 박힌 돌을 골라내고 등산로 주변 쓰레기와 썩은 나무 등을 걷어내고 있다.

처음에 팔을 걷어붙인 이는 성익경(64·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씨다. 성 씨는 건강을 되찾고자 팔룡산을 찾기 시작했다. 2022년 뇌경색이 왔고 마비 증상을 극복하고자 시작한 게 등산이다. 처음 간 팔룡산 경사로는 너무 미끄러웠고 곳곳에 쓰레기와 썩은 나뭇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어 보기에 불편했다.

그는 산 곳곳에 있는 돌을 이용해 계단을 만들면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삽과 곡괭이 등 도구를 준비하고 2022년 9월부터 등산로를 다듬고 주변 환경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홀로 시작했던 일에 팔룡산을 오가던 등산객 중 한 명이 합세했다.

윤명대(84·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씨는 "2023년 3월쯤에 혼자서 큰 돌을 끌며 등산로를 다듬는 그를 봤는데 조경 기술이 없는 것 같아 걱정했다"며 "그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했지만, 누군가가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가 작업하고 떠난 후 안전하게 다시 다듬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경남대학교에서 조경 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이 있어 성 씨의 부족한 조경 실력을 보충했다. 

27일 오전 11시께 팔용산 정상에서 윤명대(왼쪽) 씨와 성익경(오른쪽) 씨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정종엽 기자
27일 오전 11시께 팔용산 정상에서 윤명대(왼쪽) 씨와 성익경(오른쪽) 씨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정종엽 기자

어느 날 성 씨는 작업한 곳이 더 잘 다듬어져 있는 것을 눈치 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평소와 다름 없이 산을 오르던 성 씨에게 자기가 작업한 곳을 다듬는 윤 씨 모습이 보였다. 그때부터 동업(?)이 시작됐다. 윤 씨는 성 씨에게 뇌경색을 앓고 인지·언어 능력이 손상됐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했다. 

윤 씨는 "성 씨가 몸이 안 좋은데도 계속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며 "아무리 바쁘고 힘이 없어도 이 동생이 하는 것만큼은 손 봐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성 씨는 최근까지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등산로에 나와 작업했다. 등산로 근처 쓰레기를 줍고 거치적거리는 돌멩이를 걷어냈다. 지나가는 등산객마다 성 씨에게 인사를 건네며 응원했다.

등산객 조기오(74·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씨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은 있는데 줍는 사람은 잘 없다"며 "돈도 받지 않고 헌신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등산객 이종필(58) 씨는 "주말에 등산객이 버린 쓰레기를 성 씨가 솔선수범해서 다 치우고 가는데 비양심적인 사람이 줄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9시께 팔용산 등산로에서 성익경 씨가 계단형태로 다듬은 경사길 위로 등산객이 지나가고 있다. /정종엽 기자
27일 오전 9시께 팔용산 등산로에서 성익경 씨가 계단형태로 다듬은 경사길 위로 등산객이 지나가고 있다. /정종엽 기자

성 씨는 매일 팔룡산에서 작업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월 13일 경남도의회 표창을 받았다.

그는 "팔룡산은 나에게 고마운 존재"라며 "몸도 많이 회복하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팔룡산은 우리에게 영원한 쉼터니까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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