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풀이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기를 선언하고 나섰다. 실현되면 세금 부담은 줄어들겠지만, 지방 재정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전면 폐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공시부터 바로 적용하도록 올해 11월까지 부동산공시법 개정을 추진한다. 개정이 안 되더라도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69%)으로 동결할 계획이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보유세를 비롯해 건강보험료·기초연금 등 67개 행정·복지제도 기준이 되는 핵심 지표다. 시장 가격(시세)은 짧은 시간에도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매년 시세 반영 정도를 곱해 공시가격을 산출한다. 이 '시세반영률'을 '공시가격 현실화율'이라고도 부른다. 공시가격에 시세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반영할지 결정하는 기준인 셈이다.

지난 정부가 2020년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공시가격에 시세를 합리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다. 구체적으로 50~70% 수준의 낮은 현실화율을 2035년까지 9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그 과정에서 유형별 현실화율 형평성 문제(2020년 기준 공동주택 69%, 단독주택 53.6%, 토지 65.5%)도 조정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추이/연합뉴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추이/연합뉴스

유형별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실제 2022년까지 공동주택 71.5%, 단독주택 58.1%, 토지 71.6%까지 올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를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린 바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현실화율 계획(90%) 자체를 폐기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납세자 처지에서는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양도세·취득세 등 거래세 기준이라서다. 특히 수도권 지역은 최근 몇 년 사이 시세 급등 여파로 공시가격이 시세를 뛰어넘는 '공시가격 역전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가 주택 보유자일수록, 비수도권 지역 거주민일수록 '납세 부담 완화'보다 더 큰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 현재는 수도권 고가 주택일수록 시세 대비 공시가격이 높고, 현실화율이 떨어질수록 더 큰 납세 혜택을 받는다. 실제 경남 도내 고가 공동주택 중 하나인 창원 중동 유니시티 34평(전용면적 84㎡ 기준) 시세는 7억~8억 원이지만, 공시가격은 4억 원대 초반으로 '역전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부동산 보유세·거래세는 주요한 지방 재정 세입 중 하나다. 특히 종합부동산세는 전액 '부동산 교부금'이라는 명목으로 전국 기초지자체에 분배되는데, 재정 여건이 열악한 곳일수록 많이 받는다. 재정(50%), 사회복지 수준(35%), 지역교육 수준(10%), 부동산 보유세 규모(5%)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나누는 까닭이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곳에 살수록 행정서비스 위축 규모도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시장 가격과 과세기준을 다르게 보는 괴리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이야기이고, 가장 큰 악영향은 지방 재정에 미치게 될 것"이라며 "단순히 납세 부담을 줄여준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것 중 하나가 토지 보상가인데, 공공·민간 개발로 주택·땅을 수용당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시세와 괴리가 큰 보상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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