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가 바란다] 우리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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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국 합계출산율은 0.72명입니다. 부부 100쌍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가 72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수치에서도 드러나듯 저출생 문제 해결은 한국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관련 공약이 쏟아집니다.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나 공약 재탕 문제를 따져보기에 앞서 근본적인 물음이 떠오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다짐 속에 아이들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됐을까요? 관련 정책들은 아동들에게도 좋은 걸까요? 아동 권리는 어른들 입장에 따라 뒷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경남도민일보>는 4.10총선을 앞두고 어른들 입을 거치지 않은 아이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회의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뭔가요?’

지난 3일 오후 마산YMCA에서 초등학교 5학년 아동 5명을 만났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질문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건네받은 질문지에 또박또박 진심을 눌러썼다. 장난기 가득하던 얼굴은 금세 사라졌다. 그렇게 꼬박 30분이 흘렀다.

이날 만난 아동 5명 외에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느티나무지역아동센터 아동 10명을 추가로 인터뷰했다. 아이들이 저마다 써 내려간 응답을 토대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정책과 비교했다.

​창원지역 초등학생들이 지난 3일 마산YMCA에서 나눠준 질문지에 답을 쓰고 있다. /박신 기자
​창원지역 초등학생들이 지난 3일 마산YMCA에서 나눠준 질문지에 답을 쓰고 있다. /박신 기자

◇아이들이 바라본 국회 = 한국행정연구원 ‘2022년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국가기관 가운데 가장 신뢰도가 낮은 곳은 국회다. 정부·법원·군대 등 평균 신뢰도가 47%인데 국회는 24.1%에 불과했다. 2013년 이후 줄곧 꼴찌다. 아이들 역시 국회와 국회의원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책에는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는데 뉴스에 나오는 국회의원들은 매일 소리 지르고 싸우는 모습뿐인 것 같아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어떤 의미인지 잘 와닿지 않아요.”

임지연(구암초교 5학년) 양이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TV에서 볼 때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말을 중간에 끊거나 싸우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그런데 지난해 체험활동으로 국회의사당에 간 적이 있는데,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법을 만들고 국민 의견을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강태화(월포초교 5학년) 군은 국회의원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게 됐는지 털어놨다.

“국민 이익보다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시민 목소리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정말 힘든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오는데 돈은 그런 데 안 쓰이는 것 같아요.”

장우성(회원초교 5학년) 군은 국회의원 역할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지적했다.

“법을 만들고 나라를 관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사람이라고 배웠어요.”

윤서현(진동초교 5학년) 양은 정답을 외치듯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느티나무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이 지난 2일 나눠준 질문지를 보고  답하고 있다. /느티나무지역아동센터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느티나무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이 지난 2일 나눠준 질문지를 보고  답하고 있다. /느티나무지역아동센터

◇안전한 학교 가는 길 = 등하굣길 안전은 학부모뿐만 아니라 매일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2019년 ‘민식이법’(개정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만들어지는 등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사고 처벌이 강화됐지만 관련 사고는 크게 줄지 않았다. 지난해 경남지역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벌어진 어린이 교통사고는 22건이다. 2022년(29건·사망자 1명)보다는 감소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치다.

김현도(진동초교 5학년) 군은 올해부터 1학년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간다. 동생을 안전하게 데려다줘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걱정이 앞선다.

김 군은 “학교 가는 길에 불법으로 주차된 차들이 많다 보니 도로로 다녀야 한다”며 “차들도 빨리 달리고 오토바이도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가서 학교 가는 길이 늘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나윤(진동초교 5학년) 양도 학교 가는 길이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학교 근처인데도 건널목이 없는 곳이 있다”며 “차들이 많이 다니고 워낙 위험하다 보니 차들이 안 오는 틈을 타서 뛰어서 건너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학교 교문·출입로 ‘보행로 단절·건널목 부재’ 문제는 <경남도민일보>도 지난달 연속 보도하며 보행권 확보를 촉구한 바 있다. 아이들 역시 안전한 통학로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김현준(마산고운초교 5학년) 군은 “같은 학교 학생이 학교 맞은편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뒤로 차가 무서워졌다”며 “도로에 차들이 너무 많은데 차가 다니는 길하고 학생들이 가는 길을 구분해 줬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전했다.

임지연 양도 “어린이보호구역이 있다고 하지만 차들이 여전히 쌩쌩 달리는 것 같다”며 “특히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와서 놀랄 때가 잦은데 차들이 더 천천히 다니도록 단속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창원지역 초등학생들이 '경남도민일보'가 준비한 질문지에 답을 빼곡하게 적었다. /박신 기자
창원지역 초등학생들이 '경남도민일보'가 준비한 질문지에 답을 빼곡하게 적었다. /박신 기자

◇놀 권리 빼앗긴 아이들 = 지난 4일 개학과 함께 ‘경남형 늘봄학교’ 운영도 시작됐다. 도내 초교 159곳, 1학년 4858명이 참여한다. 늘봄학교는 맞벌이 부부 등을 위해 학교가 매일 2시간씩 무료로 돌봄과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제도다.

늘봄학교 시행으로 부모들은 아이들 돌봄 문제를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되레 늘었다.

아이들에게도 늘봄학교에 관해 물었다. 다만, 정책 내용을 직접적으로 묻기보다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떤지 등 에둘러 질문을 던졌다.

백주영(우산초교 5학년) 양은 “학교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 든다”며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방과 후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너무 싫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나윤 양도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보내는 시간은 재밌지만, 그래도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며 “방과 후 활동보다 차라리 집에서 혼자 숙제하는 게 훨씬 좋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이들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동딸인 백주영 양은 “엄마는 오후 7시에 들어오시고 아빠는 오후 9시 넘어서 오시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심심하고 외롭다”며 “가족끼리 해외여행이나 캠핑장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몇몇 아이들은 경남에는 놀 공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임지연 양은 “놀이동산도 부산까지 가야 하고 박물관도 몇 개 없다”며 “직접 체험도 하고 구경도 할 수 있는 어린이 놀이시설이 생기면 좋겠다”며 바람을 전했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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