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하는 모습에 반해 해녀가 된 최영희 씨
한국해녀문화전승보존회 만들어
"열악한 현실 개선하고 해녀 명맥 잇고파"

해녀 전통 의상 '소중이'를 입고 물질을 하고 있는 최영희 회장./갈무리
해녀 전통 의상 '소중이'를 입고 물질을 하고 있는 최영희 회장./갈무리

경남에도 해녀가 살고 있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 해조업자들이 경남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경남은 경제적 가치가 높았던 우뭇가사리와 미역이 가득한 황금어장이었다. 제주 해녀는 일본인 해녀에 비해 작업 능력이 좋고, 임금도 저렴했다. 1937년 기준 제주도에서 육지로 출가한 해녀는 모두 2801명.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50명이 경남에 터를 잡았다.

해녀가 바다에 온 몸을 바쳐 바다가 내어주는 양식을 따오는 게 물질이다. 지역마다 농사를 짓는 토양이 다르듯, 물질을 하는 바닷길도 제각각이다. 어느 하나 같은 바다가 없는 만큼 해녀 문화 역시 지역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다. 우리 동네에 사는 해녀를 지키는 건 곧, 우리 지역 역사와 문화를 잇는 일과 맞닿아 있다. 현재 경남 해녀는 1000여 명 남았다. 이 가운데 실제로 바다에 들어가는 해녀는 대략 300여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 해녀는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들을 기록하려는 이유다.

지난 27일 사무실에서 만난 최영희 한국해녀문화전승보존회장./백솔빈 기자
지난 27일 사무실에서 만난 최영희 한국해녀문화전승보존회장./백솔빈 기자

2016년 제주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어 2017년엔 '해녀'가 국가무형문화재 132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경남 지역 해녀'는 아직 관심 밖이다. 경상남도는 해녀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던 그 해 '경상남도 나잠어업 보존 및 육성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이 조례는 나잠어업(해녀 물질) 보존 및 육성, 나잠어업 문화의 보존과 계승을 목적으로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덕분에 경남 지역 해녀들은 치료비 등 지원을 받고 있으나, 해녀 문화의 보존과 전승에 관해서는 아직 진행되는 게 없다.

현재 비영리 민간단체인 한국해녀문화전승보존회가 힘겹게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2018년에 발족한 이 단체는 거제를 중심으로 전국 10여 군데에 지회가 있다. 지난달 27일 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최영희(58) 회장을 만났다.

◇눈물 나는 해녀 삶에 풍덩 =  한국해녀문화전승보존회는 이름 그대로 한국 해녀 문화를 보존하려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해녀 문화를 교육하고, 이수자들을 데려다 물질을 가르친다. 작년 6월엔 거제 해녀를 경남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기록화 사업을 시작했다. 이런 활동들은 문화재청이 하는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과  전승공동체 활성화 지원 사업의 힘을 빌려 이어가고 있다. 보존회 중심에 있는 최영희 회장이 '용쓴' 끝에 만든 작은 결실이다. 

최 회장은 사실 경남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이다. 어느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부대표로 일하며 꽤나 잘나갔다는 그는 2014년 매장을 보러 거제를 방문했다. 일하는 틈에 바닷가에 들렀다. 거제 바다 저 멀리 돌고래 같은 형체가 보였다. 옆에 있던 낚시꾼에게 돌고래가 보인다고 말하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 저기 보이는 거요? 해녀가 물질하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 전율을 느낀 최 회장은 그 길로 회사를 그만뒀다. 해녀 학교도 없던 시절, 그는 무작정 거제나잠협회 회장을 찾아가 물질을 가르쳐 달라 부탁했다. 

최 회장은 거제 해녀로 살수록 해녀들이 처해있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겨울 바다에 들어간 나이 많은 해녀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 어느 지역에 어떤 해녀가 살고 있는지 한줄도 기록돼 있지 않은 상황, 대우가 좋은 제주로 경남 해녀들이 빠지고 있는 상황 등을 보게 됐다. 최 회장은 며칠씩 눈물을 흘릴 정도로 해녀의 삶에 동화돼 갔다. 그는 예전에 비해 경제적으론 어려워졌지만 영혼만큼은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사실 = 최 회장이 해녀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환경'에 있다. 해녀들에게 바다 생태계를 가꾸는 건 밥 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해녀들은 뿌리째 뽑은 톳을 돌에 묶어 바다숲이 필요한 곳에 던진다. 그러면 톳이 그곳에 다시 뿌리를 내린다. 또,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 중 성게는 바다를 사막화한다. 성게를 적당히 채취하는 것은 오히려 바다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다. 

최 회장은 해녀가 바다에서 익힌 지혜야말로 환경 위기를 맞이한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이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특히 지구에 남을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해녀는 바다가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바다를 정성스레 보살피죠. 이런 일은 해녀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 비밀(?)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해요. 우리 지역에 이렇게나 소중한 해녀가 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요."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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