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진해구 소쿠리섬 백패킹 체험기

요즘 큰 배낭에 텐트, 침낭, 매트와 각종 물품을 한 번에 담아 산으로 바다로 무작정 걷는 배낭 도보여행(백패킹·Backpacking)이 유행이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된 백패킹 열풍 덕분에 2022년 울릉도를 찾은 이가 42만 명으로 역대 최다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백패킹은 보통 특별한 장소가 필요한 게 아니기에 캠핑보다는 넓은 개념이나 어느 정도 규모를 파악하고자 한국관광데이터랩에서 캠핑장을 찾아보니 올해 1월 기준 전국에 3758곳으로 나타났다.

경남에서는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소쿠리섬이 백패킹에 입문하기 좋은 곳으로 알렸다. 도대체 백패킹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장비와 경력을 갖춘 진주 출신 김현정(29) 씨에게 완전히 의존해 지난 24·25일 소쿠리섬을 다녀왔다.

요즘 더욱 유행가도를 올리는 백패킹(배낭 도보여행) 매력을 알아보러 지난 24, 25일 진해 소쿠리섬에 갔다. 김현정 씨와 세운 텐트. 하루를 묵을 아늑하고 작은 우리 집이다. /주성희 기자
요즘 더욱 유행가도를 올리는 백패킹(배낭 도보여행) 매력을 알아보러 지난 24, 25일 진해 소쿠리섬에 갔다. 김현정 씨와 세운 텐트. 하루를 묵을 아늑하고 작은 우리 집이다. /주성희 기자
김현정 씨가 텐트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김현정 씨가 텐트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무인도에 세운 작은 우리 집 = 소쿠리섬은 육지에서 가깝고 오가기 쉬운 무인도다. 진해구 우도까지 차를 타고 가서 소쿠리섬까지 배를 타고 가는데 10분이면 닿는다. 왕복 뱃삯은 1명당 7000원이다. 사유지를 제외한 섬을 둘러보려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썰물 때는 남쪽에 있는 곰섬과 연결되는 바닷길이 열려 오갈 수 있다.

지난 24일 오후 4시 소쿠리섬에 도착하자 사슴이 까만 눈으로 사람들을 반겼다. 김 씨는 사 온 당근을 사슴에게 주자고 했다. 통째로 먹지 못해 주변에 있는 돌로 당근을 쪼개서 던져줬더니 '아작아작' 잘도 씹어 먹었다. 

사슴들이 자주 다니는 노지엔 바닷가를 향해 텐트가 여러 채 있었다. 김 씨가 곰섬이 보이는 반대편으로 가보자고 해 언덕을 건넜다. 건너편에서 오른쪽으로 더 들어가니 모래밭이 있었다. 텐트 치기 좋은 평평한 땅과 그 주변에 동그랗게 돌을 박아둬 빗물을 막은 것처럼 보였다. 그만한 곳이 없는 것 같아 짐을 내려놓았다.

다만 쓰레기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단으로 장박(장기 캠핑)하던 이들이 버리고 간 것 같았다. 고기구이용 일회용 철판이 몇 겹씩 쌓여있고, 종량제봉투에 쓰레기를 잘 담아두고도 가져가지 않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깨진 술병도 있었다. 술병들이 어디에 어떻게 깨져있을지 몰라 어두워진 후에는 텐트 주변으로만 움직였다. 우리는 "쓰레기장에서 자는 기분이겠는데"라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 씨는 등산용 지팡이를 연결해 기둥을 세웠다. 김 씨가 텐트 끝을 바닥에 고정하는 동안, 어른 한 명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내피를 텐트 안에 달아보라고 했다. 무릎을 꿇고 텐트 구석구석에 손을 뻗었으나 연결에 실패했다. 결국 김 씨가 직접 연결하면서 텐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우리 집이 생겼다"며 웃었다. 작지만 아늑한 오늘 우리의 집.

요즘 더욱 유행가도를 올리는 백패킹(배낭 도보여행) 매력을 알아보러 지난 24, 25일 진해 소쿠리섬에 갔다. 지도해 준 김현정 씨는 폴대 대신 등산용 지팡이로 텐트 기둥을 세웠다.  /주성희 기자
김현정 씨는 폴대 대신 등산용 지팡이로 텐트 기둥을 세웠다.  /주성희 기자
요즘 더욱 유행가도를 올리는 백패킹(배낭 도보여행) 매력을 알아보러 지난 24, 25일 진해 소쿠리섬에 갔다. 가운데는 기자가 평소 업무용으로 쓰는 가방, 지도해 준 김현정 씨 가방은 오른쪽에 놓여있다. 2인용 짐을 싸느라 가방이 크다. /주성희 기자
가운데는 기자가 평소 업무용으로 쓰는 가방, 오른쪽이 김현정 씨 가방이다. 2인용 짐을 싸느라 가방이 크다. /주성희 기자
김현경 씨가 텐트를 접어 부피를 줄이고 있다. /주성희 기자 
김현정 씨가 텐트를 접어 부피를 줄이고 있다. /주성희 기자 

백패커니까, 알죠? = 초보자, 그러니까 입문을 시도하려는 이에게는 낯설지만 백패커('백패킹'에 사람을 뜻하는 '-er'을 붙인 단어)들에게 일상인 부분이 있었다. 

가방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건 백패커에게 주어진 당연한 과제다. 그래서 김 씨는 등산지팡이를 텐트 폴 대신 사용했다. 티피형 텐트라 가능했다. 중간에 기둥만 세우면 다른 폴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는 소쿠리섬에서는 굳이 등산지팡이가 필요없어서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초경량 제품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짐을 쌀 때부터 무게를 줄이려 신경을 쓴다. 김 씨는 천막, 텐트, 매트를 새 상품이었을 때보다 더 작게 싸려고 노력한다. 공기주입형 매트는 기계를 이용해서 최대한 공기를 뺀다. 기존 매트 주머니가 헐렁하게 남을 만큼 작게 접는다. 마지막엔 줄로 세게 동여맨다. 이렇게 싸도 배낭이 머리 위로 솟아오르려 한다. 김 씨는 "여기서 더 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르는 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백패커 문화 또한 초보자에게는 낯선 부분이었다. '우리의 작은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텐트를 치고 낚시하러 온 이들이 있었다. 김 씨는 지나치면서 구면인 듯 텐트 설치 상태를 칭찬하며 알은척을 했다.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처음 보는 이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해가 지고 난 뒤 쌀쌀해질 때쯤 헤드랜턴을 불빛과 함께 우리 집에 왔다. 그들은 어묵탕을 한가득 끓여서 전해줬다. 일회용 그릇과 젓가락도 함께였다. 뭘 드려야 하나, 음료수 한 묶음을 산 게 생각이 나 얼른 전했다.

그들이 가고 난 뒤 그들이 어묵탕을 주는 게 어떤 저의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김 씨에게 물었다. 김 씨는 "초면이어도 텐트 치고, 불 때는 것을 도와주고 먹을 것을 나눈다"면서 "별다른 의미는 없고 백패커, 캠퍼들 사이엔 일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다음 날 아침에도 어묵탕과 음료수를 갖고 왔다. 비 올 때 텐트 안에서 먹는 따뜻한 어묵 국물이라니, 좋은 추억거리가 아닌가. 나중에 인사하러 갔지만 그들이 자리를 깨끗하게 치우고 떠난 뒤였다.

낚시하러 온 다른 백패커가 전해 준 어묵탕. /주성희 기자
낚시하러 온 다른 백패커가 전해 준 어묵탕. /주성희 기자

대자연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 김 씨는 어릴 때는 가족들과 캠핑장을 다녔고, 성인이 되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후에는 백패킹에 빠져들었다. 특히 강원도와 전라도를 많이 다녔다고 한다. 최근에는 텐트 없이 매트와 침낭만으로 설산에서 잠을 잔 적도 있단다. 처음에는 침낭 안으로 막혀있는 발이 답답했지만 이젠 그게 아늑하게 느껴진다. 불편함이 아늑함으로 바뀌는 순간 백패커의 길로 들어서는 것 같다고 김 씨는 말했다. 

김 씨는 스위스 알프스산맥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산은 아니지만 소쿠리섬을 등지고 보는 바다도 장관이었다. 바다 건너편으로 산등성이가 겹겹이 쌓인 풍경도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파도치는 것만 보아도 괜찮은 휴식이 된다. 김 씨는 백패킹을 하는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거리를 찾는다고 했다. 예를 들어 비가 오거나 해가 빨리 지면 텐트 안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독서를 하는 식이다. 

김 씨에게 백패킹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대자연을 만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일몰과 일출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자연 한가운데에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라고 말했다. 실제 백패킹을 하려면 '산 아래, 바다 멀리' 어느 장소에 가서도 일상을 잘 꾸려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체력도 단련되고,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는 것도 부수적인 장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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