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진실 위해 진심 다한 연극
책임지지 않는 세상에서 마음 달래줄 일

지난 20일 사천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 사천 극단 장자번덕 1·2대 대표 이취임식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극단 장자번덕 이훈호 전 대표는 만 25년을 장기 집권하다 이날 김종필 신임 대표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김 대표는 이제 30대가 됐지만, 극단에서는 최고선임 단원이다. 어쨌거나 이렇게나 젊은 대표 체제는 지역 연극계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먼저 이날 이훈호 전 대표의 큰딸 이연욱 씨의 말에서는 도대체 연극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들이 열심인가 생각하게 됐다.

"장자번덕은 제가 태어난 해에 창단됐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특히 의미가 깊은데요. (중략) 장자번덕 첫 연습실은 사천 장자산 중턱 비닐하우스였습니다. 연습을 하기 위해서 1시간을 등산해야 했는데, 당시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등산길이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략) 아버지가 묵묵히 본인의 역할을 하면서 올린 수많은 연극을 보고 자랄 수 있어서, 또 그 옆에서 순수하게 뜨거운 열정으로 함께 작업하셨던 수많은 이가 있어서 누구보다 유쾌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독특한 '마음 전달식'에서는 연극인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 행사는 장자번덕 이훈호 전 대표와 창단 초기 상임 연출과 부대표를 맡았던 심봉석 거제 극단 예도 예술감독에게 그림과 글을 액자에 담아 전달하는 것이다. 담긴 글은 1998년 장자번덕 창단 때 쓰인 당시 이훈호 대표와 심봉석 부대표의 말이었다. 그들 스스로 한 말을 26년이 지나 다시 자신이 돌려받은 셈이다. 이 행위 자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으로 연극을 하고 있다는 선언으로 읽혔다.

먼저 이훈호 전 대표에게 전달된 마음을 보자.

"실제 현상에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진실을 무대라는 허구의 실험대 위에 재현시키는 일이 연극입니다. 연극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 현실과 자신을 흠집 내 무언가 절실한 상태로 만드는 일은 연극 작업의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어 심봉석 예술감독에게 전달된 마음이다.

"작년과 별로 달라질 게 없는 전망 속에 한 해가 시작됐다. 또다시 출발선에서 삶을 파악하고 그것에 필요한 연극을 준비해야 한다. 여전히 힘겨운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어떤 국가의 제도나 권력자도 그 힘겨운 삶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책임지지 않는 세상에서 신음하고 소리와 고통의 아우성을 듣고 이들의 소박한 가슴을 달래줄 일은 연극의 큰 임무이다."

말들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일상이나 생활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느 시대나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인간 삶의 근본이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날 객석 구석에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예술의 주제는 늘 이 지점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서후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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