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정수 축소 주장은 '정치혐오'를 자극한 표심 얻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선거 때마다 해묵은 공약으로 등장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4.10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 국회의원 300명(지역구 253·비례대표 47)을 250명으로 50명 줄이는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한 위원장이 밝힌 정치개혁 공약 중 하나다. 지난해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의원 정수를 10% 줄이자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수 줄이기는 우민정치를 부추기는 전략이며 오히려 소수화로 국회의원 특권을 강화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조재욱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수 축소는 총선을 앞두고 표로 직결될 수 있는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발언"이라며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다른 나라 사정과 비교할만한 여유가 없다는 점을 공략한 우민정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회의원 수가 많은 편이 아니다. 학계 견해는 확대해야 한다는 쪽이다"고 말했다.

선거제 개편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 10일 오후 본회의장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제 개편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 10일 오후 본회의장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원 정수는 헌법으로 정한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때 200명이었다가 1963년 175명까지 줄었다 점차 확대됐다. 299명에서 2012년 19대 총선부터 300명으로 유지되고 있다.

300명을 인구로 따져보면 국회의원 1명은 국민 17만 명을 대표한다. OECD 주요 국가 평균은 의원 1명당 국민 8만 명이다. 한국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와 스페인, 영국, 캐나다의 총 의원 수는 443~1450명으로 우리나라보다 많다. 한국보다 의원 1명이 대표하는 국민 수가 많은 국가는 미국, 멕시코, 일본뿐이다.

이에 국회의원 정수 축소 주장은 정치혐오에 기반한 것이라는 비판이 정치권에서도 나온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로 무책임하며 근저에 정치혐오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나쁜 포퓰리즘 정수다. 국회의원이 적어질수록 의원 개인의 기득권과 권력은 강해진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정당이 가장 손대면 안 되는 표가 정치혐오에 기반을 둔 표다"고 지적했다.

OECD국가 의원 정수

국민 여론은 어떨까. 숙의과정을 거쳤더니 시민은 국회의원 수를 확대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해 5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를 했다. 시민 534명이 자료집과 동영상으로 선거제도를 학습하고 전문가 발제를 듣고 토론을 하며 숙의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국회의원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답변은 숙의 전 조사에서 13%였지만 숙의 후 33%로 20%p나 증가했다. 반면 국회의원 정수 축소 찬성은 65%에서 37%로 하락했다. 

당시 공론조사에 참여했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시민은 국회의원을 100명으로 줄이면 어떻게 되는지 사고실험을 해보며 국회법에 따라 재적 의원 3분의 1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서른 명 남짓한 의원이 법안 진행을 막는 모습을 그려봤다고 했다. 시민은 소수인 국회의원이 650조 원에 이르는 국가 예산을 심도 있게 심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공론조사를 준비한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그동안 선거제도에 대한 정보 공급과 개혁 문제를 공론화하는 자리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정치 무관심·혐오를 벗어나려면 국회의원 특권 포기, 다양한 정치세력 등장, 기득권 양당정치 견제 등이 시급하지만 국회는 총선 70여 일을 남겨두고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개편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배진석 경상국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권을 줄이고 능력 있는 국회를 만들고 싶으면 신뢰를 높이고 정치혐오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국회의원을 증원해야 더 능력 있는 정치인들이 국회로 진출할 수 있다. 능력 없는 기성 정치인을 도태시키려면 증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비수도권 인구감소로 발생할 수 있는 대표성 문제는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해결할 수 없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수를 늘려서 인구감소 지역 대표성을 늘리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기자 image@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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