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께 봇물 터져…11일부터 4월 10일 선거일까지 금지 까닭
세 과시·홍보 수단 주장 반면에 '무제한' 정치자금 모금 비판도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를 95일 앞둔 지난 6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창원지역에서 출판기념회가 잇따랐다. 장사진을 이룬 출판기념회장은 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참석자, 형식이 각양각색이었다. 다만, 어디서도 책값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풍경은 기이했다. 세를 과시하고 홍보하는 수단인 출마자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정치자금을 모으는 ‘편법’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각양각색 = 창원 성산구 출마를 선언한 예비후보자들도 출판기념회로 세를 과시했다. 국민의힘 강기윤 국회의원이 버티는 창원 성산구 경쟁은 치열하다.

허성무(60) 전 창원시장은 이날 오후 2시 창원문성대에서 <파란운동화의 꿈>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는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창원 성산구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행사장은 280석을 다 채우고도 100명 안팎이 서있을 정도로 붐볐다. 지역 정·경제계 인사부터 문화예술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까지 참석자 면면이 다양했다. 직장인 합창단 무대로 시작된 출판기념회는 시 낭송 등 문화공연으로 20분가량을 이어졌고 1·2부로 나눠 진행되는 등 연예 요소가 두드러졌다. 김두관(양산 을), 민홍철(김해 갑), 김정호(김해 을) 등 경남 국회의원부터 이재명 민주당 대표, 김동연 경기도지사, 조승래(대전 유성 갑)·고민정(서울 광진구 을) 의원 등 당내 여러 인사 축하 전보가 이어졌다.

김석기(58) 전 김해부시장은 이날 오후 3시 창원대에서 <경력이 미래를 만든다>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김 전 부시장은 마찬가지로 지난달 국민의힘 소속 창원 성산구 예비후보자로 등록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한 김 전 부시장은 최근 김해부시장을 끝으로 31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날 647석 대강당을 절반가량 채웠는데, 정치 인사보다는 전·현직 행정 관료가 두드러졌다.

경남도교육위원회 교육위원이었던 강수명 후원회장과 황철곤 전 마산시장이 축사를 했고 김호일 대한노인회장, 김장겸 전 MBC 대표이사가 축하 영상을 보내왔다. 모두 마산고 인맥으로 김 회장과 김 전 대표는 고려대 학연도 강조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도 영상을 보냈고,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명예교수가 박사 과정 지도를 맡았던 인연으로 축사했다. 축사와 축하 영상만 1시간 가까이 채웠다.

지난 6일 창원지역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 모습. /최환석 기자
지난 6일 창원지역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 모습. /최환석 기자

◇봇물, 왜 = 이날 창원대에서 김상민 대전고검 부장검사 출판기념회도 있었다. 명절 때 고향 창원 주민을 대상으로 총선 출마를 시사하는 문자를 보내 물의를 빚은 그는 조만간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창원 의창구에 출마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소속 출마자로 밀양의령함안창녕 박용호(58) 예비후보, 사천남해하동 정승재(60)·조상규(46) 예비후보, 밀양시장 보궐선거 안병구(63) 예비후보도 이날 출판기념회를 했다.

민주당 소속 창원 마산합포구 이옥선(59) 전 도의원과 마산회원구 송순호(54) 전 도의원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진해구 출마가 예상되는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은 지난 5일, 사천남해하동 고재성(51) 예비후보는 7일 각각 개최했다.

새해 첫째 주가 출판기념회 일정으로 가득 찼대도 과언이 아니다. 주말 쏠림 현상은 선거일 전 90일인 11일부터 후보자 출판기념회를 열지 못해서다. 현역 국회의원도 이때부터 의정활동 보고회를 할 수 없다. 이름을 알려야 하는 처지에서는 중요한 수단인 출판기념회를 시한 전에 치러야 해 봇물이 터진 것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한 정치인은 당시 2000만 원가량을 들여 책 3500권을 제작했었다. 권당 6000원꼴이다.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하면 현재 같은 규모로 책을 제작하는 데 4000만 원가량 든다. 권당 1만 1500원가량이다. 정가에 책을 모두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1000만 원정도 남는다.

행사를 준비하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지출이 많아 출마 홍보 수단으로 볼 수 있겠지만, 모금 한도가 없다는 점에서 출판기념회는 후보자에게 기회이자 유권자에게는 비판 대상이다.

무료나 정가보다 싸게 책을 팔면 공직선거법에서 제한한 기부행위에 걸리지만 더 받는 데는 제한이 없다. 수익 공개 의무도 없다. 선거법에 출판기념회 개최 제한 규정만 있고 다른 규제는 없다.

경조사로 분류되는 까닭에 선거관리위원회도 출판기념회 현황 정도만 파악하고, 현장 단속도 출판기념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 활동에 한정한다. 정치인 등 후보자 처지에서는 무제한 정치자금을 모을 기회인 셈이다.

비판이 쏟아지자 국회에서도 신고 의무, 정가 이상 판매 금지 등 출판기념회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논의됐지만 바뀌지 않았다. 자정 노력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출판기념회 매대 위 책값 함에는 얼마가 담겼는지 모르는 흰 봉투가 가득한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출판기념회에 위헌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규환 영산대 법학과 교수는 <정치자금의 헌법적 통제에 관한 연구>에서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유입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확인된 이상 자금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었다.

정당은 법률로 국가 보호를 받고 국가는 법률에 따라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는 헌법 규정 등을 어겼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정치자금과 관련해 엄격한 투명성 원칙을 헌법인 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독일 사례를 고려해 ‘정당재정 투명성 명령 조항을 헌법에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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