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생글 공공언어' 연재를 마치면서 되돌아보니 올해 공공언어 게시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달 9일 경상남도 누리소통망(SNS)에 올라온 태풍이 오니 잘 대비하자는 권고입니다. 당시 제6호 태풍 '카눈'이 경남 쪽으로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비상이 걸렸는데요. 태풍경보, 강풍주의보, 풍랑주의보 발효 중이라는 게시글과 함께 어민이 닻줄을 당겨 배를 고정하는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에는 '단단히 묶어라'는 문구가 들어갔습니다. 간단하고 쉽지만, 아주 강력하고 직접적입니다. 이는 외국어 쓰지 않기, 바른 문장 쓰기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느냐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 계기가 됐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간다면, '단단히 묶어라' 말고 '단디 묶어라'라고 했으면 더 좋았겠다 싶어요. 우리말뿐 아니라 '지역말(사투리)'을 적절히 활용하는 일 역시 공공언어가 주목해야 할 점이겠습니다. 예를 들어 남해군이 내세우는 '남해로 오시다'는 지역말을 잘 쓴 사례죠. '남해로 오세요'라는 뜻인데, 남해 지역말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무슨 뜻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면서, 아는 이들에게는 정겹고 반가운 느낌을 줍니다. 최근 함안 법수면에서 군북면으로 넘어가는 미남교 입구에서 '또 오이소'라고 적힌 표지석을 봤습니다. 보통 면이나 읍 경계를 벗어날 때 볼 수 있는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같은 의례적인 인사가 아닌 '또 오이소'라니, 참 정감 있고 좋지 않나요.

경상남도 누리소통망에 올라온 태풍 주의 안내 '단단히 묶어라'. /경상남도
지역말을 활용한 남해군 구호 '남해로 오시다'. /남해군
함안 법수면에서 군북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또 오이소' 인사말. /이서후 기자 

◇다정한 글쓰기 = 올해는 문화, 체육, 관광 등 공공문화 영역에서 공공언어를 살펴봤습니다. 대중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분야이기에 오히려 우리말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문화 영역에서는 최신 경향을 쫓는 분야가 많다 보니 외국어가 많이 들어가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의미도 있고, 어감도 예쁜 공공언어를 고민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박물관과 미술관 공공언어 편을 통해 '다정한 글쓰기'를 주문했습니다. 핵심을 담으면서도 쉬운 글쓰기가 하루아침에 가능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도 했고요. 실제로 김달님 작가와 송지원 KBS창원 아나운서와 박물관 미술관 전시 설명을 고쳐보면서 느낀 건데, 정말 만만찮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너무 어려웠다.' 만약에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 내가 이것보다 더 잘 쓸 수 있었겠느냐는 생각을 계속 했었어요. 그런데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우선 공공시설이고 또 공공시설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하다 보니까 이런 소개 글도 그 모두를 초대할 수 있는 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쓰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좀 더 쉽고 또 읽기 편한 글로 좀 바꿔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고쳤어요."(김달님 작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단어 사용은 늘 선택의 문제라고 하는데 상황에 맞는 가장 적확한 단어를 고르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근데 역사나 미술학계에서 일상적으로 써온 단어들이 보통 사람들한테는 어렵게 읽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여실히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앞에도 얘기를 했지만 또 바꾸는 작업이 그래서 쉽지만은 않았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단어를 그 분야에서 계속 써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조금 더 쉽게 바꾸려다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쉽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우리가 했던 작업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송지원 아나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쉽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우리가 했던 작업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송지원 KBS창원 아나운서. /이서후 기자
"쓰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좀 더 쉽고 또 읽기 편한 글로 좀 바꿔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고쳤어요."  김달님 작가. /이서후 기자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나 단순히 지식 전달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이 중심이라면 전문성을 크게 헤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힘을 얻어 어려운 내용으로도 씩씩하게 수정 작업을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일단은 번역 투가 가장 먼저 보이더라고요. '~에 다름 아니다' 처럼 일본식 표현이 우리 문장에 정말 많이 녹아져 있어요. 그런 표현을 최대한 걸러내려고 노력했어요. 또 '~ 되었다', '~된' 이런 수동 표현들은 문장을 담백하게 이해하는 데 불필요하다고 느껴져서 고치려고 애썼어요. 그리고 안긴 문장들은 되도록 풀어써서 긴 문장을 짧게 만들었어요. 이런 게 형식적인 부분이라면 내용 면에서 단어 표현 하나에도 배려가 조금 더 들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서 조금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송지원 아나운서)

"제 글을 수정할 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제가 읽었을 때 걸리는 부분이 없는가, 쉽게 이해가 되는가를 중점적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보다 쉬운 말 그리고 익숙한 말, 일상의 언어로 바꿔보고자 했어요.  또 이제 사회 다양성을 담아내는,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언어를 쓰는 일에도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김달님 작가)

◇혼자가 아닌 함께 = 이번 연재를 통해 국립박물관 안내문과 설명이 아주 쉽게 잘 돼 있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실제 송지원 아나운서, 김달님 작가와 전시 설명 고쳐볼 게 있을까 하고 국립김해박물관을 찾았다가 그냥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국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지침에 따라 모든 안내문과 설명을 최대한 쉽게 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옛날 박물관은 '이런 게 있으니 잘 보시오' 하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었기에 학술 용어와 전문 한자어를 많이 썼지만, 요즘은 전시 자체를 시민과 소통으로 보기에 전시 설명이나 안내문 역시 소통할 수 있는 언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0년 12월 (사)국어문화원연합회와 손을 잡고 어려운 전문 용어나 한자어 대신 쉬운 우리말 위주로 안내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전시물 설명이나 안내문을 써서 보내면 국어문화원연합회 전문가들이 이를 쉽게 고쳐주는 방식입니다.

이전보다 한결 쉽게 고쳐진 경남도립미술관 새 전시 서문. /이서후 기자 <br>
이전보다 한결 쉽게 고쳐진 경남도립미술관 새 전시 서문. /이서후 기자 

우리는 경남도립미술관과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7일 시작한 새 전시 '보통 사람들의 찬란한 역사' 서문과 작품 설명을 아이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바꿔보고 있는데요. 결과물은 경남도립미술관이 별도 안내 책자로 만들 예정입니다. 쉬운 안내 책자를 보면서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본다면 꽤 흐믓할 것 같아요. 전시 개막식에서 전시장 입구에 크게 적힌 전시 서문을 봤는데, 우리가 처음 받은 글보다 한결 알기 쉽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친절하고, 배려하며, 다정해지려는 노력에서 나온 공공언어야말로 정말 품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직접 해보니 이제는 서양 외국어나 외래어, 한자를 많이 쓰지 않아도 충분히 높은 교양 수준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말을 쉽게 쓰는 일은 사실 단어나 문장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생각과 관련돼 있습니다. 글이 곧 생각이기 때문이죠. 생각하는 과정이 반듯해지면 자연스럽게 적당하고 쉬운 우리말 단어를 더 찾게 될 겁니다. 올 한해 연재를 하고 보니 공공언어 역시 아주 조금씩이나마 예뻐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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