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은 사실 아기자기하게 재밌는 곳이다. 경남에서 유일하게 순수 예술대학이 있는 곳인 만큼 문화 예술 감각을 지닌 젊은이들이 계속 배출된다. 지금도 도심 곳곳에서 저마다 문화를 일구는 이들이 많다. 도시 문화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이런 이들이 계속 창원에 머물며 저마다 개성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핵심은 이들 사이의 연결이다.

경남도민일보가 창원시문화도시지원센터와 창원 문화지도를 그려 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즘 문화생활에서 단순히 구경꾼이나 관객이 아닌 직접 참여해 자기 실현과 만족감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작은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이 끊임없이 열리는 이유다. 창원 문화지도는 창원 곳곳에 흩어진 다양한 공간과 이 공간을 공유하는 소규모 공동체를 찾아 이들 사이에 연결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연결된 공간과 공동체들이 바로 도시의 문화 자산이 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생활 주변에서 다양한 공간, 다양한 방식, 다양한 활동으로 문화와 여가 생활을 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창원은 재밌다. 아직 우리가 제대로 발견하고 연결해 내지 못했을 뿐이다. 문화지도 역시 새로운 발견과 연결을 통해 계속 확대되고 오밀조밀해져야 한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슬세권’이란 말이 나왔다. 슬리퍼와 역세권을 합성한 말로 집에서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생활 반경 안에서 여가와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동네에 뭐가 있을까 싶지만, 요즘에는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카페, 소품숍, 책방들이 많다. 이런 구석진 곳에 누가 오나 싶어도,  누리소통망(SNS) 덕분에 공간만 좋다면 사람들이 알아서들 찾아온다.

개성과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차별화된 공간, 취향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가능하면 자신이 직접 참여해서 의미를 만들고 싶어하는 거다. 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 중 대표적인 게 동네책방이다. 지금이야 동네책방이라 부르지만, 처음에는 독립서점이라고 했다. 큰 출판사나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고 서점 주인의 취향대로 책을 가져다 꾸린 작은 서점이다. 일반적으로 서점은 유명한 책이나 참고서 등 수익이 되는 책을 중심으로 운영하지만, 동네책방은 주로 주인이 좋아하는 책을 가져다 놓는다.

동네책방 전성시대 

창동예술촌에 '산책'이라는 서점이 있긴 했지만, 창원에 본격적으로 동네책방 시대가 열린 건 2018년이다. 이해에 의창구 봉곡동에 '오누이북앤샵'이 생겼다. 이름 그대로 남매가 운영하며 열 평 남짓한 공간에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작은 서점이다. 이어 성산구 사파동 복합공간 무하유 안에 '업스테어'가 들어섰다. 부산에서도 꽤 유명했던 동네책방이었다. 독특한 책이 많아 나름 마니아층이 있었다. 하지만, 부산에서 오가는 어려움이 있어 지금은 그만두고, 책방 부분은 무하유에 통합됐다.

2019년 무하유와 같은 사파동에 주책방이 들어섰다. 특유의 추진력으로 개점 초기부터 유명 작가를 줄줄이 섭외해 강연을 진행하며 주변을 놀라게 했다. 2021년 도청 근처 의창구 사림동에 들어선 책방19호실이나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자리잡은 화이트 래빗 같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모두 주책방 글쓰기 모임 참가자들이었다. 이것만 봐도 주책방이 얼마나 활발하게 활동을 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창원 동네책방 주책방 내부. /이서후 기자
창원 동네책방 주책방 내부. /이서후 기자
창원 동네책방 오누이북앤샵에서 열린 작가 강연. /오누이북앤샵
창원 동네책방 오누이북앤샵에서 열린 작가 강연. /오누이북앤샵
창원 동네책방 묘책 입구. /이서후 기자
창원 동네책방 묘책 입구. /이서후 기자

크고 멋진 카페들이 모여 있는 창원 가로수길에는 '민들레책밭'과 '청보리책방'이 자리 잡고 있다. 둘 다 아담하고 예쁜 책방으로 상업적인 분위기 가득한 가로수길에 숨통이 되고 있다. 또,  소답동 소리단길에 있는 '묘책'은 고양이를 주제로 한 독특함과 붕어빵 간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마산합포구 육호광장 옆에 있는 책방 '백석이 지나간 작은 책방'은 노부부가 시와 소설 등 문학 책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실제 시인 백석이 그가 사랑에 빠진 여인을 보려고 통영을 찾았을 때 당시 마산역(육호광장 옆)에서 기차를 내려서 마산항까지 걸어갔었다.

건물주가 아닌 다음에야 동네책방은 공간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고, 생계 수단이 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동네책방은 영업도 중요하지만, 책방 주인의 자아실현 목적이 더 큰 곳이다. 실제 정말 책이 좋아서, 지금이 아니면 하고 싶은 걸 못 할 것 같아서 책방을 시작한 이들이 많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꾸준히 독서모임을 하고 글쓰기도 하고, 작가를 초청해 강연도 하면서 저마다 지역 문화공간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

함께하는 즐거음 

동네책방을 둘러봤으면 가까운 카페도 가보자. 창원 도심에는 갤러리를 겸하는 카페나 지역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공유 카페가 많다. 갤러리 카페는 대부분 내부 벽면에 작품을 걸지만, 창원대 앞 인사이드 갤러리처럼 카페 공간과 따로 전시 공간을 두고 본격적으로 전시를 하는 곳도 있다.

이런 공간들이 개별 공간으로만 있으면 힘이 약하다. 늘 생존 위협에 시달리며 불안한 까닭이다. 이럴 때 비슷한 생각을 지닌 공간들끼리 무언가를 함께 하는 일은 늘 힘이 된다. 예를 들어 이달 초 창원에 있는 작은 공간들이 '리틀 저니'란 주제로 2주간 스탬프 투어를 진행했다.  복합공간 무하유, 동네책방 오누이북앤샵을 포함해 창원대 앞 카페 해피아워클럽, 도청 앞 소품 가게 컨시어지 데스크, 도계동 식물가게 새잎이, 이렇게 다섯 공간이 스스로 돈을 모아 기획한 행사다. 어떤 공간은 금·토요일만 문을 열기에 행사 기간 2주 중에 실제로는 4일만 방문할 수 있었는데, 이 기간에 스탬프를 완성한 이들이 100명 가까이 됐다. 이렇게 분위기만 만들어지면 기꺼이 참여하려는 이들이 창원에는 많다.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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