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의 책장 = '2013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은 류승희 작가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 가족 만화다. 아픈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우주', 아이가 태어난 뒤 일을 그만두고 홀로 육아를 책임지는 '미주'. 두 자매는 책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다독이며 앞으로 다가올 삶을 응원한다. "그대로인 적은 없었다. 한없이 겹쳤다가 한없이 멀어지면서 각자의 시간이 흘러간다. / 우리는 서로에 대해 끝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기대어 살아가겠지. 가족이니까." 264쪽. 보리. 1만 8000원.

◇S언니 시대 = <캐리어 끌기>로 다채로운 여성의 삶을 보여주었던 조화진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 1970년대 사춘기 소녀 수자가 성장통을 겪으며 S언니들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내용이다. S언니는 스텝 시스터(step sister) 혹은 수양 언니의 준말로 친자매만큼이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1970년대에는 동네, 학교 선후배 간에 S언니, S동생을 만드는 것이 유행했었다. "중학교에 갈 준비를 하면서 겨울 동안 집에서 놀기만 하는데도 나는, 나 자신이 부쩍 크는 것이 실감 났다. 동시에 나의 삶이 조금 뻔뻔해지고 교활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커버려서 어른만이 가지는 프레임 안의 비밀에 쑥 들어선 것 같았다. 어른의 대열에 진입하는 느낌은 모호하면서 비현실 같지만 실은 어떤 종류의 쾌감이었다." 260쪽. 산지니. 1만 7000원.

◇가족 각본 =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가 4년 만에 낸 두 번째 책. 앞의 책에서 일상 속 차별과 혐오를 날카롭게 들여다본 저자는 이번 책에서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여온 가족제도에 숨은 차별과 불평등을 추적한다. "평소에 잘 인식되지 않지만 가족의 명칭이나 호칭은 온통 성별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 성별이 바뀌면 딸이 아들이 되고, 엄마가 아빠가 되고, 누나가 형이 된다. 호칭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기대도 달라진다. 가족 안에서 역할이 바뀐다는 말이다. 당연한 듯 이상한 일이다. 사람은 같은데 성별 하나로 가족 사이에서 바뀌는 게 정말 많다." 248쪽. 창비. 1만 7000원. 

◇악인의 서사 =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2022년 1월 올려진 이 문장으로 시작해 트위터에서 확대된 악인의 서사에 관한 논쟁을 단행본으로 다시 정리해 옮겼다. 소설가 겸 영화평론가 듀나, 문학평론가 겸 편집자 박혜진, 문학평론가 전승민,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김용언, 영화평론가 강덕구, 영문학 연구자 전자영, 번역가 최리외, 웹소설 작가 겸 연구자 이융희, 비평가 윤아랑 등 저자 아홉 명이 창작 서사에서 악을 재현하는 문제를 두고 저마다 다채로운 논점을 제기한다. "악의 부재는 선을 재현하는 한 가지 방식일 수 있는가? 적의 얼굴을 마주하며 갈등에 뛰어드는 대결 하나 없이 그저 악이 없는 세계를 미리 상정하며 선을 구현하는 작업은 오히려 위선이지 않을까?" 320쪽. 돌고래. 1만 8000원.

◇규방의 미친 여자들 = 장르문학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가려진 여성의 삶에 주목해 온 전혜진 작가가 우리 신화와 고전 속 여성 영웅들을 재조명했다. 태초의 여성 신화 '바리데기'부터 '정상가족'에 도전한 <방한림전>까지 고전 속 여성 영웅들은 때론 시대의 제약을 뛰어넘어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때론 가부장제에 저항하며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간다. "당대의 여성 독자들이 <방한림전>을 통해 여성과 여성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았다면, 현대의 독자들은 이 이야기에서 성적인 열정 없이도 서로에게 애정과 그리움을 품고 상냥함과 헌신, 존중과 예의로 서로를 대하며, 입양한 아이를 함께 돌보는,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공동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320쪽. 한겨레출판. 1만 8000원.

◇점촌6길 = 진주 출신으로 울산에서 활동하는 수필가 배혜숙의 다섯 번째 수필집. 표제작인 점촌6길은 저자가 자주 가는 카페 이름이다. "점촌6길은 옛 동네의 모습이 얼마쯤 남아 있다. 도시 속 시골이다. 살짝 굽이진 골목을 들어가면 낡은 기와집이 나온다. 담도 울도 없는 집 앞에 넓은 텃밭이 있다. 저녁 무렵, 흙담을 두른 통나무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따뜻하다. 홀로 사는 할머니가 쉬었다 가라고 의자를 권한다. 마을 앞에는 '점촌'이란 표지석이 우람하다. 자연부락을 이루며 살았던 흔적이다. 그 뒤로 새마을기가 펄럭이는 점촌노인정이 옹골진 세월을 품고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러니 점촌6길, 당호로는 최고가 아닌가." 215쪽. 연암서가. 1만 5000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