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김해 '느린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 (1) 대동면 수안마을영농조합 최병식 대표

45년간 쓰레기장 방치된 공터, 쓰레기 치우고 수국정원 조성
2018년부터 연 축제 매년 성황... 딸, 마을 역사 기록·수집 작업

김해시가 슬로시티였나요? 슬로시티면 다른 도시와 뭐가 다르죠? 시민에게 도움 되는 건 뭔가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공장 많고 난개발 오명을 불식하지 못한 김해시에 종종 쏟아내는 질문들입니다.

슬로시티(Slow city)는 지역이 가진 고유한 자연과 전통 문화를 유지하면서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국제적인 행복공동체 운동입니다. '슬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요. 소중한 공동체 가치를 재인식하고 여유와 균형, 조화를 찾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생산성 우선주의 탈피, 환경 보전을 거스르는 소비 행태, 분별 없는 바쁜 생활 태도 배제, 자연 그대로 기다림 등 철학을 실천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김해시는 2018년 동남권 도시 중 처음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됐으며, 2023년 재인증을 앞두고 있습니다. '도시형 슬로시티'인 김해는 자연 환경, 전통 산업, 문화, 음식 등 지역 고유 자원을 지키면서 지역민들이 지역문화와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삶을 지속가능한 가치로 발현시키는 필수 요건은 느린 삶(가치)에 대한 '관심'과 '실행'입니다. '느린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 봤습니다.

▲ 김해시 대동면 수안마을영농조합 최병식(왼쪽) 대표와 딸 최새미 씨.  /이수경 기자
▲ 김해시 대동면 수안마을영농조합 최병식(왼쪽) 대표와 딸 최새미 씨. /이수경 기자

해마다 6월이면 수국 향연을 펼치는 김해시 대동면 수안마을은 7월 중순에도 늦게 핀 수국이 이방인을 반갑게 맞았다. '소등껄 수국정원'이라는 푯말을 눈에 담고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앙증맞은 다리와 만발한 수국이 보이고, 포토존과 대나무숲, 극장 모양 야학정(예전 야학이 열렸던 곳에 만든 정자)까지 한바퀴 둘러볼 수 있다. 매우 조그만한 수많은 꽃봉오리에서 풍성한 꽃을 피워내는 수국의 신비감에 빠졌다가 저 멀리 구름과 하늘로 시선을 옮기면 돗대산 탕건바위가 다가온다.

◇쓰레기장이 축제 마당으로 = 5년 전만 해도 수안마을 수국정원 자리는 45년간 버려진 땅이었다. 주민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이라 동네 쓰레기장으로 방치됐다. 안타까워하던 주민들은 기금을 모아 2015년부터 쓰레기 없애기 운동을 펼치며 변화를 시도했으며, 2018년 제1회 수안마을 수국정원축제를 열며 입소문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148명이 사는 작은 시골마을 첫 축제에 3일 동안 방문객 5000여 명이 다녀갔다.

수국정원축제를 생각해 낸 사람은 최병식(64·전 이장) 수안마을영농조합 대표와 그의 딸 최새미(35·로컬티 대표) 씨다. 수안마을은 2016년 영농조합법인 설립과 함께 농림축산식품부 창조적마을만들기 사업에 선정됐으며, 2018년 행정안전부 마을기업에 뽑혔다. 이후 농촌포럼 전국 대상, 2019년 슬로시티 주민경진대회와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최우수상, 국가균형발전사업 우수사례 표창까지 받았다. 2019년 김해시가 지정한 슬로마을에도 이름을 올렸다.

 

주민 절반 참여한 마을기업... 수익-문화 견해차로 성장통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 모색 영원히 살기 좋은 마을 되길"

 

수국정원축제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매년 진행했다. 2019년 축제는 1회처럼 주민 집 정원을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소 외양간을 전시장으로 꾸몄으며, 주민 중 화가의 집도 개방해 1만 2000여 명이 방문했다. 2020년엔 수안마을 자체적으로 인근 마을자원인 대동화훼단지 협조를 얻어 꽃꽂이팀에 의뢰해 마을 전체를 꽃으로 꾸며 방문객을 맞이했다. 지난해와 올해 축제도 공식적으로 열진 못했지만, 동네 위 노는 밭에 라벤더 언덕을 조성해 볼거리를 선사했다.

최 대표는 "2015년부터 6년간 이장을 하면서 공원 땅을 구입해 마을을 변화시키고 문화가 있는 관광지로 바꾸면서 주민 전체가 잘사는 가치를 실현하려 노력했다"며 "지난해 해바라기 언덕 750평 밭에 해바라기 대신 라벤더를 심어 올해 방문객들에게 인기를 모았다"고 말했다.

◇마을 역사를 후세에 = 새미 씨는 슬로시티 철학에 부합하는 문화역사 연구에 몰두해 2018년 문화역사책 <수안에서>를 펴냈다. 수안마을 과거를 알아야 미래로 나아간다는 생각에서다. 옛 지명, 소등껄(소 등 모양) 유래 등 지역 문화 역사 자료를 수집해 기록했다. 2021년엔 주민들이 예전 수기로 작성한 31종류 서류들을 모아 '수안마을 고문서 디지털 아카이브'로 남겨 마을살이 단서와 메시지들을 후세까지 전달할 수 있게 됐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앨범, 1973년 연쇄점 운영 요강, 1990년도 마을회관 건립 금전출납부까지 마을 역사 서류를 총망라했다.

그는 문화소외지역인 수안마을 주민을 위해 극장 모양으로 '야학정'을 짓고 주민들과 커뮤니티 시네마 조직을 만들어 2020년 두 차례 '수안 영화제'도 열었다.

또 축제 후 쓰레기가 넘쳐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환경친화관광 아이디어도 고안했다. 방문객에게 쓰레기봉투와 돗자리를 주며 1000원을 받았다. 일회용품을 덜 쓰고 텀블러를 쓰게 하며 쓰레기를 되가져가게 하는 슬로운동이다. 그랬더니 2020년부터 쓰레기가 줄었다.

▲ 김해시 대동면 수안마을 '소등껄 수국정원'.  /이수경 기자
▲ 김해시 대동면 수안마을 '소등껄 수국정원'. /이수경 기자

◇천천히 변화하는 삶 = 수안영농조합법인은 주민 50%가량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수국을 재배해 뿌리째 판매하고, 연근과자와 연근가루를 연 400t 생산해 판다. 또 카페·식당·슈퍼를 운영해 건강한 공동체 수익모델을 키우고 있다. 연간 수익금은 1억 원 정도다. 수익금은 마을 발전기금과 독거노인 돌봄에 쓰인다.

최 대표와 새미 씨는 이제 지속가능한 슬로마을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다.

새미 씨는 "그동안 1단계 수안마을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들 모두 성장통을 겪고 있는데, 조합 수익 창출과 문화역사 가치를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킬 방안을 모두 소통하며 찾아가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현재 수안마을 정원축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주민들과 방문객이 늘었고, 수익 창출에 무게를 두며 빠르게 성장하고픈 주민들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조금 늦더라도 마을 주민들이 다함께 성장해 나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미 씨는 "도시든 농촌이든 급변하는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빨리 변해가는 것보다 과거를 기반으로 천천히 새 문화를 받아들이고 만들어 나가면 우리 마을뿐 아니라 김해시에 사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편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대표 역시 "수안마을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기 좋은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수경 기자 sglee@idomin.com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