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상회 - 함양군 '숲속언니들'

함양서 청년마을 만들기 활동
선발된 1기 8명 지역살이 체험
"현실적 고민 없이 정착 안 돼"
박세원 대표, 주민과 관계 강조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트라이앵글.

-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전문

 

열무 씨는 삶의 가운데서, 영원히 쳇바퀴만 돌 것 같은 일상에서 최승자 시를 읽었다. '안녕, 할매' 참여 신청서에 위 시를 적었다. 그리고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함양군까지 오게 됐다.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 열무 씨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교와 집만 오가던 그가 새로운 지역으로 시선을 틔운 것이다. 열무 씨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숲속언니들이 지역에서 꾸린 삶을 상상하고 있다"고 했다.

열무 씨뿐만 아니라 8명 체험자는 청춘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함양을 만났다.

▲ 숲속언니들이 운영하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 '안녕, 할매'에 참여하는 1기 안녕이들이 함양 할머니에게서 음식 조리법을 전수하고 있다.  /숲속언니들
▲ 숲속언니들이 운영하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 '안녕, 할매'에 참여하는 1기 안녕이들이 함양 할머니에게서 음식 조리법을 전수하고 있다. /숲속언니들

◇'안녕, 할매' = '안녕, 할매'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 중 하나다. 청년에게 활동공간, 주거 기반을 마련해주며 지역살이를 체험하게 한다. 최종 목표는 청년들이 함양에 정착하는 것이다. 함양군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된 단체는 '숲속언니들'이다. 신생 단체지만 구성원 모두 함양으로 귀농·귀촌 온 지 꽤 된 선배님들이었다. 박세원(27) 숲속언니들 대표는 "함양살이 장점을 들자면 농촌생활과 인프라가 적절히 있다는 점이다"라면서 "이런 부분을 잘 알리기만 한다면 청년마을을 형성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고 '안녕, 할매' 기획을 설명했다.

체험을 신청한 인원은 77명이었다. 박 대표가 유심히 살펴보니 신청 이유가 3가지로 분류됐다. 첫 번째는 할머니와 애틋한 추억을 가진 이들이 할머니와의 정감을 다시금 느껴보고자 했다. 기획단계에서 할매니얼(할머니 방언 '할매'와 1982~2000년 초반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밀레니엄(Millennium)'을 결합한 신조어)을 꺼내 든 게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두 번째는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이 위안과 치유를 얻고 싶어했다. 경쟁사회에 장기간 노출돼 위안을 얻고자 하는 이들, 1인 가구가 늘어갈수록 제대로 된 식사보다는 간편식을 먹으면서 하루를 때우는 이들이 많아졌다.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은 할머니들에게 건강 조리법을 배우고 나의 식사를 잘 꾸려나가고 싶어했다. 도시거주자들도 사실 알고 있다. 농촌에 답이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다들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일 뿐. 그래서 박 대표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치유 밥상, 조리법 배우기, 텃밭 가꾸기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고자 했다. 또 귀농·귀촌한 지역민과 숲 요가, 춤 명상 등을 함께한다. 함양 속에서는 도시에서 바랄 수 없는 치유가 가능하다고 믿게 해주고 싶었다.

세 번째는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어느 세대든 정착지를 바꾼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어릴 때는 학교에 매여있고 성인이 돼선 직장에 매여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이 용기를 냈다.

용기를 낸 이들에게 귀농·귀촌을 경험하고 성공한 이들과 대화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다. 지역에서 빈둥협동조합을 설립해 문화콘텐츠 활동을 벌이는 김찬두 대표를 섭외했다.

숲속언니들은 '안녕, 할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을 '안녕이들'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콩콩언니로 불리는 박 대표는 "이름, 나이는 신경쓰지 않고 함양을 다니고 느꼈으면 좋겠더라. 각자가 지은 별명으로 부르고 불린다"고 말했다.

▲ '안녕, 할매' 1기 안녕이들이 숲 속 요가를 체험하고 있다.  /숲속언니들
▲ '안녕, 할매' 1기 안녕이들이 숲 속 요가를 체험하고 있다. /숲속언니들

◇함양과 할머니 = 프로그램 일정이 빡빡하지만 일주일 하루는 체험자 홀로 함양군을 오롯이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 날엔 그 경험을 각자의 창작물로 공유했다.

니니 씨는 운명처럼 함양의 한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다. '안녕, 할매' 참여가 확정되고 경북 구미에서 함양까지 오는 길이었다. 경유지는 대구. 터미널에서 책을 읽고 있던 니니 씨는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옆을 돌아보니 한 할머니가 "아이고 예뻐라" 하면서 웃고 있었다. 버스 시간이 임박한 니니 씨는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버스에 올랐다. 며칠 후 함양전통시장에서 옷을 사러 가게로 들어갔는데 버스터미널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이런 사연 덕분인지 니니 씨는 함양에 와 주변인, 이웃들이 궁금해졌다. 그는 "인사만 잘해도 나를 기억해주고 반겨준다. 인사할 때마다 더 반겨주는 것 같아 좋은 관계가 형성돼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니니 씨는 함양에서 겪고 느낀 일들을 블로그에 정리해두고 있다.

책방 씨는 귀촌을 한다면 목공과 농사를 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온배움터를 방문했다. 온배움터에서 특별히 누군가를 만나거나 수업을 듣진 않았다. 대봉산에 둘러싸인 온배움터를 둘러보며 쉬다가 왔다. 책방 씨는 "내가 함양에서 마냥 한적하고 고요함만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의 시골살이에 해상도를 높이는 하루였다"면서 함양을 경험한 소감을 말했다.

박 대표는 귀농·귀촌에 가장 중요한 바탕은 지역민과 관계 형성에 있다고 했다. 그가 직접 느낀 것이다. 2008년 가족과 함께 귀촌한 박 대표는 함양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타지에서 대학 졸업 후 2019년에 함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농촌에 다시 적응해야 했다. 박 대표는 "농촌, 농사를 알려고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들었다. 2019년부터 작년까지 들은 수업 시간이 1000시간이 넘더라"고 경험을 털어놨다.

박 대표는 교육내용을 농사와 사업에 활용하기도 했지만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는 "동네 어른들이 내가 할 줄 알겠다 싶으면 부탁한다. 반대로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본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구한다"고 말했다. 홀로 감당해야 한다면 어렵고 막막한 일들이 오랜 세월 함양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별일이 아닌 것처럼 쉽게 해결되기도 했다. 박 대표가 숲속언니들에서 함양 귀농·귀촌 길을 열어주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지역민과 관계 맺으며 지내면 농촌살이가 술술 풀려나간다고 확신한다.

▲ '안녕, 할매' 프로그램 1기 안녕이들과 박세원(앞줄 맨 오른쪽) 대표.   /주성희 기자
▲ '안녕, 할매' 프로그램 1기 안녕이들과 박세원(앞줄 맨 오른쪽) 대표. /주성희 기자

◇귀농·귀촌 환상만으론 안 돼 = 니니 씨는 함양에 있어 행복하고 또 사랑받는 느낌도 든다고 했지만, 함양에 정착해 사는 건 고민된다고 했다. 그는 "함양에 2주 동안 있으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게 내 인생에 건설적인 부분이 될 거로 본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실제로 정착하기까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역귀촌하는 이들을 보곤 한다. 많지 않은 역귀촌자가 지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런 인상들이 쌓이면 귀농·귀촌으로 오는 이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결과물을 낳는다. 그렇기에 환상을 갖고 귀촌하기보다 어려운 일을 접하고 해결방안을 세우는 방식으로 귀촌을 고민해봐야 한다. 그는 "안녕, 할매 같은 프로그램이나 지자체가 진행하는 체류형 프로그램을 먼저 체험해보고 나서 결정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숲속언니들이 청년마을 사업을 하고 있지만 지역소멸 해결책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는 지역민과 지자체, 행정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지역민들끼리 어울리고 떠들고 놀 수 있는 유휴공간이 없는 게 아쉽다. 그는 "지역민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장구도 치고 노래교실도 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어야 결속력이 생기고 연대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은 3년 동안 진행된다. 숲속언니들은 '안녕, 할매' 프로그램으로 3년간 12기를 맞이한다.

/주성희 기자 hear@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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