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도, 두 번째 파도 (2) 인터뷰

첫 기획 '거제 조선업 조명' 이어 동남권 해양산업으로 확대
산업화 이전 해안마을 기록 없고 이후엔 기업·행정 사유화
문제의식 바탕으로 산업 흐름·경관 사진·영상·글로 담아
10월 전시회 열어 기록·예술 작업 공유…기록집 펴낼 계획

로컬디자인 섬°(섬도) 사무실은 거제시 가조도 신전마을에서도 바다 풍경이 어디 걸림 없이 고스란히 들어차는 높은 지대에 자리했다. 뭍에서 바다를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겠다 싶은데, 섬도는 기어이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갔다. 동남권 해양산업 현장을 탐사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리겠다는 지난한 항해의 포부였다. 서서히 잠식하는 해안선처럼, 옅어진 바다의 기록을 제 손으로 남기겠다는 의식의 발현이었다. 워낙 방대한 여정이라 지쳤을 법도 한데, 김은주 대표와 책임기획을 맡은 김나리 씨, 행정지원을 맡은 류지영 씨는 언젠가는 흑해까지 가겠다며 환히 웃었다.

 

- 2020년 거제 폐조선소 청강개발에서 지역 조선산업을 주제로 한 기획 전시 '첫 번째 파도'에 이어 두 번째 기획이다. '쇠로 만든 방주 표류하는 아고라'라는 '두 번째 파도' 기획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

김은주 "우선 이번 기획은 포럼과 전시가 주이다. 대홍수 이후를 대비한 방주는 희망적 인상, 마지막 보루라는 의미로 빌렸다. 거대한 선박이 물건을 실어나르고 인간 삶을 잇는 데 착안, 쇠로 만든 방주라고 붙였다. 표류하는 아고라는 포럼을 상징한다. 떠다닌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는데 '항해'는 보편적인 느낌이라 목표지향적이지 않으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를 표현하고자 '표류'를 골랐다. 장(場)에서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확장하길 바라는 뜻에서 아고라를 더했다."

- '첫 번째 파도'보다 작업 규모가 커졌다. 지역과 분야 측면에서 동남권 바다와 해양산업으로 넓어졌다. 확장 계기가 궁금하다.

김나리 "두 번째 파도 기획안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공예술사업에 선정된 이후 섬도에 합류했다. 초기 기획은 거제지역 선박 문화에 주목, 조선소 노동자를 집중 조명하고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옥포동 유휴공간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계획이었다. 좋은 인상을 받았다. 다만, 창원에 사는 터라 거제지역만 다뤘을 때 스스로 진정성 있게 참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내 삶 일부가 아니니까. 주체적으로 개입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고, 초기 기획안을 해치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평소 지닌 고민과 연결하는 작업으로 이어갔다. 동시대 해양산업 개념 전환과 주요 논점을 파악하고 미래를 상상하면서 경남과 부산, 울산 해양산업을 바다로 나가 살피고 싶다고 제안했다. 배는 이동성이 특징이니까,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가며 산업현장을 두 눈으로 보자고. 서로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고, 수도 없이 기획안을 고쳤다. 그 과정 속에서 전문가들을 만나 대담을 나눴고, 앞서 리서치 트립을 다녀와서는 확신이 들었다. 실제 현장에서도 세 지역 해양산업이 제 역할을 맡으면서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로컬디자인 섬도 (왼쪽부터) 김나리 씨, 김은주 대표, 류지영 씨가 거제시 가조도 신전마을에 있는 사무실 밖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hsm@idomin.com
▲ 로컬디자인 섬도 (왼쪽부터) 김나리 씨, 김은주 대표, 류지영 씨가 거제시 가조도 신전마을에 있는 사무실 밖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hsm@idomin.com

- 첫 번째 파도와 두 번째 파도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김은주 "산업현장 접근이 굉장히 어려웠다. 해안마을이 있을 때는 누구나 바다에 접근하기 쉬웠는데, 산업화로 폐쇄적으로 바뀌었다. 허가나 승인 없이는 접근이 어렵고, 남기지 않는 정보도 많은 데다, 어떤 형태 기록이 남았는지도 확인이 어려웠다. 마을이 사라지자 기억하는 이들도 같이 흩어졌다. 산업화 이전 기록이 너무 없다. 산업현장 기록도 마찬가지다. 해안이 산업화하면서 기업과 행정 사유가 되었다는 데 문제의식이 없다. 바다는 예측이 어렵고 전문적인 영역이라 일반인이 바다에 나가는 자체가 힘들기도 하고.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인문학적·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김나리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그것을 누가 어떻게 바라보고 기록할지가 무척 중요하다. 이번 기획도 결국, 동시대의 현안을 기록하는 행위가 중요해서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해양수산분야 전문기관 영역의 시선과 우리 시선은 결이 다르니까."

- 산업현장을 직접 바다에서 바라본 소감이나 인상은 어땠나.

김은주 "종합병원이 떠올랐다. 산업도 신체기관과 같다는 인상이었다. 거제는 배가 태어나는 산부인과, 엔진을 생산하는 창원은 흉부외과, 선박 수리 조선소가 많은 부산은 뼈를 맞추는 정형외과 같았다. 울산은 실제로는 중공업보다 화학에너지 도시였다. 신경외과 같았다. 첫 번째 파도 이후 두 번째 작업을 벌이면서 산업 흐름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년 사이 조선업조차 LNG선이 늘고 친환경 선박이 공론화하는 등 형태가 달라졌다. 스마트 항만, 사물인터넷 적용, 자율 운항, 풍력과 수소 에너지…. 산업 변화에 나가떨어질 것인지 흐름에 따라 이어 갈 것인지 중간 지점에 놓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중요한 목격자 처지가 됐다."

▲ 김은주, 김나리, 류지영 씨가 지도 위 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 김은주, 김나리, 류지영 씨가 지도 위 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 두 번째 파도 기획을 '이제껏 과학기술과 경제를 중심으로 논의된 해양산업을 문화 차원으로 편입하는 시도'라고 소개했다. 어떤 의미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김나리 "이번 프로젝트 기획 가치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리라 확신한다. 도시가 바뀌듯 바다도 시시각각 바뀐다. 신항만과 북항 재개발, 해양신도시를 비롯해 해역세계에서 바라보면 해양풍경을 변모시키는 요인들은 넘쳐난다. 일례로 리서치 트립 때는 부산진해 신항 좌측은 땅을 다듬어 매립하고 있었는데, 세일링 포럼 때 다시 가보니 갠트리 크레인이 올라왔더라. 경남(통영-마산-진해-고성-사천)과 부산, 울산 해양산업 경관을 사진과 영상, 글로 남겼으니까 나중에 누군가가 변화를 인지할 수 있겠다. 바다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어떻게 바뀌는지 누구나 알 권리가 있다. 진행 과정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획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해줬다."

- 경남과 부산, 울산 세일링 포럼을 마쳤다. 남은 계획은 무엇인가.

김나리 "오는 10월 거제 칠천도 선진호라는, 육지에 올린 배에서 전시를 벌일 계획이다. 기획 조사부터 세일링 포럼까지 기록을 보관하는 작업과 아트워크로 나뉜다. 아트워크는 경관을 살피면서 뽑아낸 기후, 대기, 소음이라는 특징적 요소가 주가 될 것이다. 아티스트 6팀이 작업에 참여한다. 노동자와 해양산업 관계자가 만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계획했다. 그들이 실제 회식하는 웨스턴 펍이나 고깃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 될 테다. 이후 항해일지가 든 아카이빙북까지 펴낼 예정이다. 두 번째 파도를 끝맺으면, 범위를 넓혀 국내 해양산업 현장 전반을 살피는 계획도 있다. (지도를 보면서) 먼 목표는 흑해까지 가는 거다(웃음)." <끝>

/최환석 기자 che@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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