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 이주노동자
안면 마비 증세로 요양 신청
전산 착오로 의견 제출도 못해
"질병 판정 방어권 보장 미흡"

산업재해 요양을 신청한 한 이주노동자가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신청부터 판정까지, 이주노동자가 받은 알림은 신청서가 접수됐다는 문자 단 한 통이었다. 제대로 연락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는 의견 제출 기회를 잃었다. 근로복지공단 전산상 착오에서 비롯한 문제였는데, 사실상 산재 보상 절차 구멍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안면 마비 = 대우조선해양 한 사내 하청업체 소속으로 마무리 다듬(그라인더) 작업을 맡은 20대 미얀마 국적 이주노동자 ㄱ 씨. 지난해 12월 옥외 작업장에서 일을 하던 ㄱ 씨는 왼쪽 눈 시야가 흐려졌다.

사상 작업으로 불리는 ㄱ 씨 업무는 옥외 작업으로 날씨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더욱이 산소 결핍을 막는 작업 보호구인 특수 송기마스크는 얼굴 쪽에 산소를 곧바로 공급한다.

증세는 얼굴로 번졌다. 얼굴 왼쪽 마비 증세가 심해진 ㄱ 씨는 병원을 찾았고, 벨 마비 진단을 받았다. 안면 신경 마비 하나인 벨 마비는 안면 신경 기능 장애로 나는 얼굴 한쪽 근육 쇠약이나 마비를 뜻한다.

ㄱ 씨는 기본 근무 이외에 잔업이나 주말 특근으로 피로가 쌓였고, 증세가 나타난 날 옥외 작업 환경이나 마스크로 공급되는 차가운 산소가 안면 마비를 일으켰다고 봤다. ㄱ 씨는 지난 2월 산재 요양을 신청했다.

◇연락은 문자 단 한 통 = ㄱ 씨 산재 요양 신청 절차를 돕던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하 마창거제산추련)은 최근 근로복지공단 부산질병판정위원회에 심의 일정을 물으려고 연락했다가 뒤늦게 모두 끝난 사실을 전해들었다. 결과는 불승인. '신청 상병과 업무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앞서도 따로 일정 통보가 없어 문의를 하고, 빠른 처리까지 부탁했는데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때까지 ㄱ 씨가 받은 연락은 고작 문자 한 통. 그마저도 2월 근로복지공단에서 보낸 최초요양급여신청서 접수 사실을 알리는 문자였다.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는 바뀐 ㄱ 씨 주소로 불승인 결정 통지서를 보냈다고 해명했지만, ㄱ 씨는 연락처나 주소를 바꾼 적이 없다고 마창거제산추련은 전했다.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 측은 최초 사고성 재해로 접수, 질병 재해로 바뀌는 과정에서 전산상 예전 ㄱ 씨 자료가 있어 참고했다고 밝혔다. 전산상 ㄱ 씨 전화번호는 실제 번호와 한 자리가 달랐다.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 관계자는 "(ㄱ 씨를 지원하는 측에서) 답변서 등 자료가 계속 들어왔다"고 해명했으나, 틀린 전화번호를 바로잡을 기회를 놓친 바람에 ㄱ 씨는 연락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

틀린 전화번호는 전산상 그대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넘어갔다. 보통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먼저 이관 사실을 우편으로 알리고 심의 일정을 문자로 알린다. ㄱ 씨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연락을 받지 못한 까닭이다.

◇방어권 실종 = 더 큰 문제는 사업주가 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는데도, ㄱ 씨가 반대 의견을 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판정 결과를 떠나 근로복지공단 착오로 ㄱ 씨는 방어권을 잃었다.

김정열 마창거제산추련 부대표는 이주노동자에게 최소한 해명 기회를 주지 않은 사실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 혼자 산재 신청을 하기도 어려운데, 더군다나 질병은 절차가 워낙 복잡해서 포기 종용과 마찬가지입니다. ㄱ 씨는 어렵게 자료를 입증했지만 최초요양급여신청서 접수 문자만 받았고, 질병판정위원회 참석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은 출국을 앞둔 ㄱ 씨 마비 증세가 많이 나아졌다는 것. 김 부대표는 "한랭이나 과로 원인 안면마비 산재 승인 사례가 있는데도 인과관계가 없다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단도 이해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요양업무처리규정은 보험가입자인 사업주 의견이 신청인 신청 내용과 다르면 알리도록 하지만, 전문가는 ㄱ 씨처럼 사업주 의견이 달라도 알리지 않는 일이 왕왕 있다고 지적했다.

바른길노무사사무소 김승환 노무사는 "사업주가 산재를 인정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데도 사업주 의견이나 문답서를 재해자가 받지 못해 제대로 반박조차 못 하고 판정이 이뤄지는 불합리함이 있다"며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사는 서면 원칙이라 확인이 미흡하다"고 짚었다.

/최환석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