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지방선거 평가와 과제 (2) 정책대결 실종·비리 공방만

대선 양당 후보 간 치열한 대결
미래 비전 제시 정책경쟁 대신
의혹 제기·네거티브 전략 집중

84일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도
지역발전 고민 없고 공방 몰두
유권자 피로감 높아 선거 외면

역대 대선에서 각 정당과 후보들은 그 시기 정치·사회·경제 현실에 맞는 '시대정신'을 설정해 국가적 의제를 제시하고 실천적 의지를 내보였다.

3월 대선은 이전 선거와 차원이 달랐다. 선거 이전부터 유력 후보와 가족 관련 도덕성과 자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상대를 둘러싼 추문과 의혹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네거티브 공방전만 이어졌다.

반면 대한민국 미래상을 제시하는 거대 담론 경쟁은 찾기 어려웠다. 주요 공약은 추상적 담론 수준에 머물렀고, '생활밀착형'이라고 내놓은 공약은 여야가 대동소이했다.

거대 양당 편중 속 정치적 다양성은 말살되다시피했다. 대선 후보 단일화는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제대로 된 정책 비전과 공약 없이 극단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대선 풍경은 84일 뒤 지방선거까지 이어졌다.

▲ 진주기후위기비상행동이 지난달 26일 진주시청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기후정책을 제안한 뒤 공룡과 북극곰 분장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진주기후위기비상행동이 지난달 26일 진주시청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기후정책을 제안한 뒤 공룡과 북극곰 분장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비리 공방 각축장 된 대선 = 대선이 정책이 아닌 비리 공방과 네거티브로 점철된 데는 거대 양당 후보들의 자질 문제가 컸다.

이들은 국회의원이나 제대로 된 정치 경험이 부족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행정력은 인정받았지만 국회는 물론 지방의회 경험도 없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선 후보가 돼 자치 행정도 정치 경험도 전무했다. 의회 경험이 없다는 건 대화를 기반으로 타협점을 찾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정치력, 이를 대중으로부터 검증 받을 기회가 적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대선이 정치적 능력보다는 개인 비리에 초점이 맞춰지는 대선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들은 흠결도 컸다. 이재명 후보는 형수 욕설이 비호감의 싹이 됐다. 장남 불법 도박, 부인 김혜경 씨 갑질·법인카드 사적 유용 등 논란도 더해졌다. 윤석열 후보는 검찰총장 재직 당시 고발 사주, 수사 무마 등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부인 김건희 씨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허위 이력 기재, 장모 최은순 씨의 각종 사기·횡령·위조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무속 논란도 더해졌다.

'성남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은 정치적 공방의 좋은 대상이었다. 이는 '부산저축은행 대출 비리 사건'과 연결돼 양측이 서로 '비리 몸통'이라며 으르렁대게 만들었다.

◇시대 정신도 현안 이해도 부재 = 역대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추구하는 미래상을 제시했다. 예컨대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나라다운 나라'라는 시대정신을 밑바탕에 깔고 그 위 국정 운영 비전과 실천과제를 내세웠다. 이번 대선에서는 이 같은 담론 경쟁은 찾기 어려웠다. 시대를 아우르는 정책과 공약 미흡은 대선 후보를 향한 정책 질의 '무응답' 속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경남도민일보>의 대우조선해양 문제를 비롯한 7가지 경남 현안 해법 질의에 윤석열 후보 측은 모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 외 다수 언론, 시민단체에도 마찬가지였다. 창원 유세에서는 탈원전 기업 줄도산 관련 거짓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공약은 '생활밀착형'으로 수렴됐다. '오토바이 소음 근절', '탈모·임플란트 건강보험 확대',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공개', '어린이 도서대출 절차 개선', '택시 운전석 칸막이 설치' 등이었다. 대선에서 '지역 공약'이라는 명목으로 기초의회 의원이나 할 법한 마을 민원성 공약도 쏟아졌다. 사회상 반영이라는 긍정 평가와 대중영합주의라는 부정적 평가가 동시에 나왔다.

▲ YMCA 회원으로 활동하는 창원 시민이 지난달 12일 창원시청 앞에서 창원시장과 창원시의원 후보에게 생활밀착형 정책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YMCA 회원으로 활동하는 창원 시민이 지난달 12일 창원시청 앞에서 창원시장과 창원시의원 후보에게 생활밀착형 정책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거대 양당 편중과 지지층 위한 정치 = 대선 막판 후보 단일화는 가뜩이나 거대 양당으로 치우쳐진 정치 환경을 더욱 고착화했다. 이 가운데 주요 지지층 결집을 노린 남녀(이대남 대 이대녀)와 세대(세대포위론) 갈라치기가 횡행했다.

국민의힘은 2030세대 일부 보수 성향 남성을 겨냥해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강화를 공약하며 젠더 갈등을 심화시켰다. 2030 젊은 남성층과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 노년층을 묶어 민주당 주 지지층인 40~50대 중장년층 지지를 압도하겠다며 세대 갈등도 부추겼다. 민주당은 이에 부동층 여성 유권자가 이에 동요하자 2030 여성에 집중한 선거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를 기점으로 등장한 게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세력이다. 민주당은 대선 결과와 원인을 두고 남녀 지지층 간 인식 차로 갈등이 비화하는 모습이 비치고 있다.

대화와 타협으로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가 되레 갈등DMF 유발·조장한 셈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후보와 가족 관련 추문과 네거티브, 남녀와 세대 갈라치기를 매개로 한 극심한 정치적 대결이 2년 뒤 총선 때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양당은 후보자와 그 가족 의혹 공방을 위주로 충분한 근거 없는 상호 비방과 세대, 이념,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선전 선동을 이어가는 등 '혐오 정치'를 재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정치 권력과 승자독식 대통령 선거제 특성, 상호 불신과 적대적인 한국의 정치 문화에 기인한다"며 "이 같은 선거 경쟁과 양당 중심의 적대적 국회 운영을 벗어날 자정적인 논의가 정치권 내에서 치열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경상남도청소년정책연대가 지난달 9일 오후 경남도청 앞 광장에서 다가오는 6.1지방선거 후보자에게 경상남도 청소년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 경상남도청소년정책연대가 지난달 9일 오후 경남도청 앞 광장에서 다가오는 6.1지방선거 후보자에게 경상남도 청소년 정책 제안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대선에 휩쓸린 지방선거 = 대선에 나타난 극심한 여야 대립과 인물·정책·공약 부재는 84일 뒤 열린 지방선거에까지 이어졌다.

메가시티를 완성할 구체적인 방안, 교육 혁신 등 지역 현안을 풀고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모습은 없었다. 지역소멸로 활력을 잃은 도시를 혁신하고 사회기반시설 확충이 아닌 시민 개개인 삶의 질을 높일 심도 있는 토론도 부족했다.

정책 선거 실종은 거대 양당 중심 정치 체제가 지역에 고스란히 반영된 탓이 크다. 하동군수 공천 개입 갈등에서 보듯 지역 일꾼을 뽑기보다 중앙 정치 심부름꾼을 선택하는 선거 성격이 강했다. 대선 직후 열린 선거라 다수 여당 후보는 현 정부와 연결고리만을 강조하는 데 열을 올렸다.

0.73%포인트(p) 차 대선 결과 탓에 일부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는 상대 후보를 향한 비방과 고소·고발이 난무했고, 정책을 알리기보다 상대 인물이나 정책 흠집내기에 급급했다. 시민이 연이은 선거에 따른 피로감 탓에 관심도가 떨어져 후보자 정책이나 공약을 제대로 보고 선택했는지 의문스러운 지점도 있다. 이는 경남에서 '바람' 선거, 특정 정당을 향한 줄투표로 나타나는 모양새를 띠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는 새 정부 국정 운영을 평가하기에 너무 시간이 부족해 결과가 대선과 다르지 않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는 중앙 선거보다 유권자 한 표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지만 후보자와 공약 등 정보 부족으로 투표율이 낮게 나타나 우려스럽다"면서 "이럴수록 시민보다 기득권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될 가능성이 큰 만큼 선출직 공직자 활동에 정량 평가와 정성 평가가 강화돼야 한다"고 짚었다.

/김두천 기자 kdc87@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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