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사무소 52건 접수
관련자 규정 모호해 혼란 야기
인력·자료 부족에 조사 지연도
시행령 개정 등 후속조치 시급

꼬박 62년이다. '3.15의거 참여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이하 3.15특별법)을 제정, 국가가 당시 마산에서 벌어진 일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나서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길은 여전히 멀고, 그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법조문이 모호해 대상자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지난 1월 21일 개소한 진실화해위원회 창원사무소가 아직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탓이다. 시행령 개정 등 후속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관련자 인정 어디까지 = 우여곡절 끝에 조사가 시작됐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3.15의거 관련자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부터 난관이다.

3.15특별법 제1조를 보면 3.15의거 참여자에 대한 명예회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취지가 쓰여 있다. 하지만 3.15의거 관련자를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은 까닭에 의거 참여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진실 규명 대상자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런 모호함을 보완해야 할 시행령에도 구체적인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3.15특별법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을 근거로 진상 규명 여부를 판단한다. 과거사정리법에 정의된 진상 규명 대상은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이다. 신청자 처지에서는 3.15특별법과 과거사정리법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당시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와 같은 국가로부터 입은 피해를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실제 피해자들도 자신이 겪은 일이 진상 규명 대상인지를 확인할 마땅한 법 조문이 없다 보니 신청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사 과정에서 계속 문제가 된다면 행정안전부와도 다시 논의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주임환 3.15의거기념사업회장은 "3.15의거 특별법의 주된 목적은 더 늦기 전에 증언을 수집하고 역사를 복원하는 데 있다"면서 "신청인들이 대상자인지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기념사업회에서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3.15의거기념사업회 주최 제62주년 3.15의거 민주열사 추모제가 14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국립3.15민주묘지에서 열렸다. 추모제 참가자들이 헌다·참배하고 있다. 추모제에는 주임환 3.15의거기념사업회장, 오무선 3.15의거희생자유족회장, 최형두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3.15의거기념사업회 주최 제62주년 3.15의거 민주열사 추모제가 14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국립3.15민주묘지에서 열렸다. 추모제 참가자들이 헌다·참배하고 있다. 추모제에는 주임환 3.15의거기념사업회장, 오무선 3.15의거희생자유족회장, 최형두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길어지는 조사에 신청자 한숨 = 1호 진상규명 신청자 이영조(74·마산합포구) 씨는 14일 추가 증언이 담긴 녹취록을 제출하려고 창원사무소를 찾았다. 지난 1월 21일 신청서를 제출하고 53일 만이다. 이날 이 씨 표정은 어두웠다. 형의 한을 풀어주고자 직접 증거까지 모아 진상 규명 신청을 한 그였지만 길어지는 조사 기간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는"형이 고령이다 보니 몸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명예회복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조사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말했다.

이날 기준 창원사무소에 접수된 3.15의거 진상 규명 신청은 52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신청이 들어오면 90일 이내(사전조사가 필요한 경우 30일 연장 가능)에 조사 개시 또는 각하를 결정한다. 하지만 보통 90일을 꽉 채워 조사를 벌인다.

사건이 오래되다 보니 남아 있는 증거 찾기가 쉽지 않다. 자료 검토, 증언 청취 등을 거치면 최종 진실 규명 판단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창원사무소 전문조사관 채용일정이 연기된 점도 초기 조사 지연에 한몫했다. 전문조사관 외에는 파견직으로 이뤄져 있다 보니 자료 조사에도 어려움이 있다. 전문조사관 4명은 내달 8일부터 창원사무소에 출근한다.

김만수 3.15의거과 총괄팀장은 "당시 의료 자료나 학생 명부 등 이미 폐기된 자료가 많고 당사자 중에서도 살아 계신 분이 많지 않다"며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여러 여건상 증거 수집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작은 자료라든지 사소한 증언이라도 당시 진실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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