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주 잘했어." 지난해 말 고성군의회 본의회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군수가 제출한 올해 예산안을 대거 삭감한 이유를 설명하고, 자리로 돌아오자 옆 자리 의원이 한 말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사천리로 247억 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11명 중 2명뿐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손 한 번 들지 못했다.

삭감 규모는 고성군 지방자치 역사상 최대, 지난해 51억 원의 5배에 이른다. 백두현 군수의 역점사업은 줄줄이 발목이 잡혔다.

지역 여론은 사분오열이다. 군수가 싫어서, 특히 지방선거를 위해 예산을 삭감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말 배상길 의원이 군수 퇴진 운동과 삭발·단식 농성으로 '백두현 저격수'로 나섰을 때 국민의힘은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군수선거 출마 예정자들까지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배 의원을 응원했다.

군수 비판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의회 설득 노력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것. 군수도 인정한다. 백 군수는 이번 일을 사과하면서 "군수 역할 중 하나는 많은 국·도비 예산을 가져오는 것인데, 그 과정에 행정의 존재감이 부각돼 의원들의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가 없었던 고성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11개 단체가 뭉쳤다. 기자회견을 열고 군수와 의회의 사과와 해명, 공청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군의회가 무조건 잘못했다는 주장은 아니다. 군의 행정절차 미비도 지적했다. 그런데도 군의회는 단체들이 나선 것 자체가 불만이다. 예산 삭감은 의회 고유권한인데 왜 간섭하느냐? 군이 시켜서, 부추겨서 추가경정예산 조속 통과를 위해 의회를 압박한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이 싸움은 지방선거가 지나야 끝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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