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든 음식이든, 손가락 하나로 뭐든 주문할 수 있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마음만 먹으면, 인간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일상을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새삼 깨닫는 시대 변화다. 우리 몸이 편해진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따랐다. 특수고용형태근로종사자, 혹은 플랫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노동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2021년은 이들이 부당한 노동 현실에 맞서 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한 해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온라인 상거래는 전에 없는 성장 기회를 맞았다.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019년 134조 5830억 원에서 지난해 161조 1234억 원으로 늘어나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 자연스레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도 급격히 증가했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자료를 보면, 지난해 택배물동량은 20.93%(33억 7373만 상자) 치솟았다. 2019년까지 증가세는 매년 10 % 안팎에 불과했다. 음식배달 산업 성장세는 더 가팔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0년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산업조사'에서 음식배달 거래액은 지난해 20조 1005억 원으로 전년(14조 36억 원) 대비 43.5% 증가했다.

일이 있는 곳에는 노동자가 있다. 산업이 성장하는 만큼, 사람이 모인다. 하지만, 성장 산업에 종사한다고 해서 안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특히, 비대면 산업 전반을 떠받치는 택배·배달 노동자들은 플랫폼 노동, 특수형태노동이라는 이름에 갇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지역 택배 대리점, 혹은 배달대행업체와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수탁 계약서를 맺은 개인사업자이면서도 불합리한 업무지시를 받기도 하고, 최저배달비(수수료) 기준이 없어 무리한 노동에 시달린다. 이런 구조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과로사하거나, 더 많은 배달주문을 잡기 위해 달리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노동자가 생긴다.

▲ 지난달 10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열린 라이더보호법 제정, 배달·택배안전운임제 도입 촉구 배달·택배 노동자 행진에서 참가한 배달·택배 노동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달 10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열린 라이더보호법 제정, 배달·택배안전운임제 도입 촉구 배달·택배 노동자 행진에서 참가한 배달·택배 노동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공짜노동'이라는 굴레 = 우리가 집에서 편하게 물건을 받는 동안, 택배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고통받고 있다. 과로를 견디지 못해 지난해 16명이 숨졌고, 올해도 5명이 쓰러졌다. 지난해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노동자 8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는데, 이들의 한 주 노동시간은 평균 71.3시간에 달했다. 점심 시간은 고작 12분이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과로사 인정기준은 직전 3개월 주 60시간, 혹은 직전 1개월 주 64시간 노동이다. 법적 과로사 기준보다 더 많은 시간을 평균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 이후 배달시장 급증
점심시간 12분·주 71시간
근무택배종사자 올해 5명 과로사

 

이들이 오래 일하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택배 단가가 1997년 이후 계속 떨어지기만 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조사한 1997년 상자당 택배 단가는 4732원이었지만, 꾸준히 떨어져 지난해 2221원이 됐다. 산업 성장으로 업체 간 경쟁도 심해졌지만, 차별화가 쉽지 않아 단가 경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 단가 안에서 정해지는 노동자 배송·집화 수수료도 낮아질 수밖에 없고, 오래 일하지 않으면 수익을 유지할 수 없는 형태다. 이들이 받는 평균 월급은 234만 6000원이었는데, 평균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최저시급에도 못미쳤다. 다른 하나는, 소위 '까대기'라 불리는 오전 분류작업이다. 메인 거점(HUB)에서 지역 거점으로 옮겨진 물품들을 노동자가 맡은 구역별로 나누는 일이다. 문제는 통상 2~3시간 걸리는 이 작업을 하고 받는 임금이 전혀 없다는데 있다.

◇28년 만에 분류작업 제외 합의 = 2017년 출범한 전국택배노조는 분류작업을 '공짜노동'이라 규정하며, 개선을 촉구해왔다. 유난히 과로사가 많았던 올해는 이 문제가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논의됐다. 지난 1월 택배사·대리점·노동자·정부 등이 참여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택배노동자 업무를 집화·배송에 한정하고 분류인력을 따로 투입하는 데 합의했다. 다만, 업체 약속 이행이 미진하자 노동자들은 지난 6월 9일 전국적인 파업에 들어갔다. 이로 말미암아 전국적인 '택배 대란'이 벌어졌지만, 투쟁이 결실을 거두는 실마리가 됐다. 파업 철회와 함께 만들어낸 2차 사회적 합의는 △오는 2022년부터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완전 제외 △투입할 경우 상응하는 임금 지급 △일 12시간, 주 60시간 노동 등의 내용을 담았다. 1997년 택배산업 도입 28년 만에 분류작업이 택배노동자 손을 떠난 것이다.

 

6월 총파업 '택배대란'이후
분류작업서 28년 만에 해방
공론화·사회적 합의 성과도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도 택배노동자들의 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는 전국대표자회의에서 오는 28일 파업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 측이 택배요금 인상분을 노동자 처우개선에 써야 한다는 취지의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대부분을 영업 이익에 돌리고 있다는 이유다. 사회적 합의문에는 '분류작업 개선,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 등 택배기사 보호를 위해 필요한 택배 원가 상승요인은 개당 170원임을 확인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노조는 대한통운을 제외한 나머지 택배기업들이 요금 인상분을 합의문 취지대로 지출하고 있다며, 이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황성욱 택배노조 경남지부장은 "내년 1월에 분류인력에서 손을 뗄 수 있을 정도의 현장 준비가 미흡해 실제 업무강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응이 많다"라며 "그 와중에 대한통운은 요금 인상분을 기업 이윤으로만 돌리고 있으니, 이를 정상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권 사각지대, 단체협상으로 메워 = 배달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 바깥에 있다. 주문플랫폼업체-배달대행프로그램업체-지역배달대행사-배달노동자로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에서 일하고, 4대 보험이나 법정 근로·휴식시간 등 노동자 권리는 보장받을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성도 가진다. 대부분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고, 계약 당사자인 지역대행사와 연락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문을 골라 마음대로 동선을 짤 수 있을 것 같지만, 때로는 강제 배차를 당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제대로 된 위·수탁 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많지 않다.

경남비정규직지원센터네트워크가 17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경남 플랫폼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26.7%만이 문서로 된 계약서를 교환했고, 36.6%는 구두로 계약했다. 나머지는 계약서를 쓰고도 돌려주지 않았거나, 아예 쓰지 않은 경우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한계
도내 배달 라이더 첫 단협
수수료 체계 등 임금 협상

 

배달노동자들은 건당 수수료에서 모든 수익을 얻는다. 실태조사를 보면, 도내 배달비는 지역에 따라 건당 3000에서 3500원 사이에 형성돼 있다. 배달노동자 월평균 소득은 221만 3900원으로, 이중 전업은 290만 9100원, 부업은 128만 8100원 수익을 얻는다. 전업 배달노동자는 하루 평균 10.47시간, 주 5.72일 근무한다. 최대한 많은 수익을 얻으려면, 한 동선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여러 주문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 일반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배달노동자 신호 위반은 이런 구조에서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10시간보다 훨씬 오래 일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 노동자 자신의 위험부담도 크다.

라이더유니온 부산경남지역지부는 올해 부릉·타자하나로 창원시지사와 단체협약을 맺어 이러한 불합리한 노동 현실에 균열을 냈다. 지역 배달대행업체와 배달노동자 노동조합 간의 단협은 처음 있는 일이다. 현재는 임금 협상을 진행 중이다. 노동자가 안전운행하면서 적정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수수료 체계를 정하려는 내용이다.

조봉규 라이더유니온 부산경남지부장은 "처음에 교섭에 나왔다가 빠진 다른 대행업체는 '교섭해태'로 지방노동위원회에 차례로 진정할 계획이고, 이후 계속해서 단협을 체결해 나갈 것"이라며 "애초 계획대로 주요 대행업체 5곳과 모두 협약을 맺는다면, 창원시 배달노동자 90%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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