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봤던 아침 뉴스가 아직 생생하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무장조직 알카에다의 테러 사건으로 촉발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년 만에 사실상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그동안 군인·민간인을 포함해 24만여 명이 숨졌고, 난민이 500만 명 이상 발생했다. 어마어마한 희생과 맞바꿔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다른 20년이 있다. 경남의 한 여성장애인단체가 보내온 시간이다. 경남여성장애인연대는 장애인 당사자 공부모임으로 출발해 2001년 창립총회를 열었다. 당시 중학생 꼬맹이였을 내가 기자가 되어, 이 단체 20주년 기념 토론회를 취재하게 됐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장애인이라는 이중적 차별을 견뎌내야만 했던 당사자들이다. 현실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마음먹었고,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걸어 왔다.

야학을 열어 공교육에서 배제된 여성장애인을 가르쳤다. 사실상 전무했던 여성장애인 일자리를 만들려고 천연비누 제작 사업을 진행하고, 경남도 장애인일자리사업 여성장애인 의무고용률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부설기관인 경남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1576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경남아자장애인자립센터는 시설여성장애인 16명이 세상에 홀로 서는 데 힘을 보탰거나, 보태고 있다. 올해 경남도가 전국 최초로 여성장애인 기본조례를 제정한 일은 20년 활동의 결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멈출 생각이 없다.

세계 최강국이 하수구에 흘려보낸 전쟁의 시간과 사회적 최약자들이 맨땅에서 일군 진보의 시간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경남여성장애인연대 20년 활동에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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