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시대지만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경남 농어민 수당은 공익 뒷받침 첫걸음

당산에 오르면 마을 앞 들녘이 눈에 들어온다. 낙동강 변 창원 대산들은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겨울엔 비닐하우스 하얀 바다가 펼쳐지고, 5월이면 반짝이는 자개장 같은 무논으로 바뀐다. 푸름은 가을과 익어가며 황금빛으로 물든다.

어린 눈엔 신기했다. 농민들 땀과 삶이 서린 설치예술 작품이랄까. 잊고 있었던 고향 풍경을 떠올린 건 경남 농어민수당 확정 소식을 듣고서다. 내년부터 가구당 연간 30만 원, 부부 공동경영주는 60만 원을 받는다. 지급 대상은 28만 9493명이다.

늦었지만 기쁜 소식이다. 농촌은 고령사회 극점에 있다. 농번기마다 일손이 없어 쩔쩔맨다. 마을회관 마당은 유아차 주차장이다. 어린아이용이 아니라 노인들이 붙잡고 다니는 보행보조기다.

농어업인 수당은 단순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특정 계층에게 얼마를 준다는 시혜적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의미는 직접민주주의 산물이다. 경남은 다른 지역보다 제일 적은 연간 30만 원에서 뒤늦게 시작하면서도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경남 농민들은 줄기차게 농민수당을 요구해왔으나 먹히지 않자 직접 조례 제정에 나섰다.

2019년 7월 농민회를 중심으로 주민발의 운동을 시작했고, 그해 12월 5만 5184명 서명을 받아 경남도에 제출했다. 조례안을 넘겨받은 도의회는 지난해 6월 어업인까지 포함해 수정 가결했다. 조례를 만들었으나 지급시기, 지급액을 정하기까지 순탄치 않았다.

1년을 넘겨서야 정해졌지만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낸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연 30만 원이면 기본소득은커녕 턱도 없는 적은 금액이지만 농어민단체는 받아들였다. 경남에 농어업인구가 많으니 자치단체 처지에선 재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년에 869억 원이 쓰인다. 경남도와 시군이 4 대 6 비율로 분담한다.

둘째 의미는 농어업의 공익성이다. 농어업과 농어촌은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생태환경적으로 중요한 공익적 역할을 하고 있다. 농어업의 위기는 농어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농어민수당 조례 목적은 농어업과 농어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익적 기능을 증진하기 위함이다. 개발로 농지면적은 줄어들고, 평균 농업소득은 각종 영농비용을 빼면 겨우 1000만 원 수준이다. 인건비도 남지 않는다.

농어업을 자본주의 승자 독식 시장에만 맡길 수 없다. 그래서 적은 금액이지만 농어민수당은 중요한 시작이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것.' 농활 가서 줄기차게 불렀던 '밥가'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첨단시대지만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농어민은 우리 생존을 담당하는 하늘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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