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마을 산단 갈등 상처는 여전한데
문제 인식 못하는 당시 행정 책임자들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현동·구산 일대는 최근 급격하게 변화했다. 마산로봇랜드를 중심으로 한 여러 국도와 진출입로가 만들어졌다. 현동서부터 원전항까지 차로 수월하게 달릴 수 있다. 나는 그래도 옛 도로가 정감 있고 좋다. 가포서 시작되는 1차로를 굽이굽이 따라 저도 혹은 원전까지 갈 수 있다. 이 도로를 따르다 보면 수정마을을 지나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창문을 내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한때 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수정산단'…. 마산시는 지난 2006년 'STX중공업 조선 기자재 공장' 수정마을 유치를 무리하게 추진했다. 마을 주민은 찬반으로 두 동강 났다. 엊그제까지 형님 아우였던 이들이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이로 변했다. STX·옛 마산시가 내놓은 마을발전기금은 이곳을 더 흉흉하게 만들었다. 마산시는 마을 공동체 파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기업 유치에만 열을 올렸다.

2010년 탄생한 통합 창원시는 그래도 찬반 주민, STX, 행정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5월 STX는 수정산단 사업 포기를 공식화했다.

이 마을은 이제 외형적으로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속살은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곪아 있었다. 논란 종식 4년 후인 2015년 5월 수정마을을 찾았다. '어버이날 마을잔치' 자리였다.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국밥에 막걸리 한 잔씩 곁들였다. 웃음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겉으로는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줬다.

"오늘 같은 날은 어쩔 수 없이 모이기는 하는데…. 말은 섞는 사람들끼리만 섞지. 자리도 편한 사람들끼리만 나눠서 앉고."

그로부터 또 6년이 흘렀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는 여전하다. '수정만살리기추진위원회'는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행정에 손 내밀었다. 그리고 지난주 주민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며 그 옛 시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을 내디뎠다.

이러한 수정마을을 보고 있으면 '두 사람'이 떠오른다. 정규섭 전 마산시 비전사업본부장. 그는 수정산단 문제를 진두지휘했던 이다. 통합 창원시 탄생 이후에는 마산회원구청장을 맡았다. 그는 당시 시의원들로부터 수정산단 책임을 추궁받자 "내 평생 이렇게 모욕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라며 발끈하기도 했다. 그는 끝내 마을 주민들에 대한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얼마 후 구청장직을 내놓으며 직장을 부영그룹으로 옮겼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황철곤 전 마산시장. 지난 29일 황 전 시장에게 '수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미안함은 없는지'를 물었다. 그는 "안타깝다"는 말을 애써 했지만, 그보다는 '수정산단 무산'에 대한 아쉬움을 더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지역사회가 자신을 비판했고, 지금도 비판하는 이유를 여전히 모르는 듯했다.

잘못된 행정의 짐은 오롯이 주민들 몫으로 남아 있다. 당시 행정 책임자들은 그 자리에 없지만, 그들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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