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초등생 없던 곳 경사
60가구 주민 한마음으로 축하

'사법고시 합격의 영광보다 더 위대하고 고귀한 초등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원계리 무학산 등산로 초입에는 오랫동안 달성 서씨들이 모여 사는 원계마을이 있다. 최근 이곳 마을을 상징하는 고목 정자에 특별한 펼침막이 걸렸다. 고령화로 수십 년간 초등학생이 없었던 마을에 오랜만에 생긴 경사를 축하하는 내용이다.

이번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원계리 어린이는 모두 3명이다. 두 명은 최근 마을 초입에 지어진 다세대주택 가정 자녀이고, 나머지 한 명인 이민호(가명) 군은 갓난아기 때부터 마을에서 자랐다.

펼침막을 내건 사람은 서정하(59) 원계마을 이장이다. 서 이장은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며 "매우 기쁜 마음에 마을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했더니 다들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학산에 오르려고 마을을 지나는 등산객들도 펼침막을 보고 다들 제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 줬다고 했다.

이 마을 가구 수는 60여 가구인데, 한 가구에 노인 1~2명이 산다. 마을에서 한 명뿐인 아이는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마을 주민 장차금(79) 씨는 "민호가 오고 난 뒤부터 마을에 활기가 생겼다"며 "'안녕하세요 할머니'라고 인사하는 모습만 봐도 너무 귀여워 마주치면 간식이나 용돈을 쥐여주곤 한다"고 말했다.

▲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원계리 원계마을 입구에 마을에서 몇 십 년 만에 초등학교 입학생이 나온 일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렸다. /이창우 기자
▲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원계리 원계마을 입구에 마을에서 몇 십 년 만에 초등학교 입학생이 나온 일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렸다. /이창우 기자

서 이장은 민호가 노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광려천이 얼었을 때 썰매를 타고 노는 모습, 자신의 집에 둥지를 튼 까치를 관찰하고 있는 모습 등을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마을 안으로 도시가스가 들어오고 등산로도 생기는 등 변화도 있지만, 자연환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라며 "편리함은 누리면서도 자연 속에서 자랄 수 있는 이곳이 아이에게는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민호 군의 어머니 ㄱ(45) 씨는 "층간소음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은 아이 정서에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막상 학교에 들어가면 물리적 거리 때문에 친구들과 자연스러운 교우 관계를 맺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 이장이 '국민학교'를 다니던 70년 전만 해도, 인근 학교 한 학년에 7~8학급이나 됐다. 이곳 원계마을에도 10여 명의 또래가 있어 같이 뛰놀며 신나게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지금 인근 초등학교에는 한 학년에 5학급이 될까 말까다. 광려천을 끼고 형성된 내서읍 주변 자연마을에 젊은 인구가 유입되지 않아서다. 과밀 학급이 우려되는 대단지 아파트와는 정반대 상황이다.

서 이장은 "민호는 지금도 친구들을 마을로 데리고 와 같이 잘 놀곤 한다"라면서 "시골 마을의 매력을 느끼고 이사해 오는 젊은 인구가 더 많아져야 또래 친구도 늘고 부모님의 걱정도 덜해질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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