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작가 7명 여행·일상
시·사진·작가노트로 담아
현실 보듬고 이상향 꿈꿔

읽고 나니 동시에 여러 장소로 아득한 여행을 한 것 같다. <길 위의 길>은 김일태, 문희숙, 김시탁, 이서린, 김승강, 조승래 시인과 임재도 소설가 등 도내 작가 일곱 명이 각자의 여행과 일상을 담은 책이다. 기본적으로 시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마다 사진과 작가노트(산문)가 함께하는 독특한 형식이다. 그러니 진짜 여행처럼 천천히 걷기도 하고, 힘차게 달려 보기도 하고 때로 멈춰 먼 풍경을 바라보다가 하는 느낌이다.

"새들은 드높은 바람 속에 집을 짓고/ 나는 노을 너머 두고 온 집으로 간다/ 저녁을 피워 올리며 네가 날 기다리는 곳// 등짝에 우물 메고 그 우물 비우면서/ 호랑이 산곡 지나 나를 넘어야 닿을 곳/ 사랑은 주소 없이도 영원히 갈 집이다"(문희숙 시인, '귀가 - 샹그릴라' 전문, 40~41쪽)

"'해와 달'의 민화처럼 고통의 골짜기에서 우릴 기다리는 위험하고 피하고 싶은 호랑이라는 삶의 부조리는 있게 마련이다. '호도협'이라는 좁고 깊은 협곡을 지나 이상향 샹그릴라로 가던 날, 나는 또 얼마나 더 남아 있는 삶의 호랑이를 만나야 하는지, 남은 삶을 위해 지불할 무엇을 가졌을지 들여다보았다."(작가노트, 42쪽)

▲ 〈 길 위의 길 〉 김일태 등 7인 지음
▲ 〈 길 위의 길 〉 김일태 등 7인 지음

작가들은 저 멀리 파미르고원에서 아득한 하늘을 보거나, 러시아 하바로스크 거리에서 고독한 그림자를 따른다. 때로 도심 밤거리에서 쩔뚝이거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벼랑 끝에서 버려진 마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각자의 상처를 마주한다.

"상처받을 사람들 업어줄/ 움츠린 등 넓은 섬 하나 있다/ 그 섬에 뱃머리가 닿으면/ 제일 먼저 바람이 검문을 한다/ 신분증 대신 시커멓게 탄 가슴을 보여 주고/ 바람이 등 떠미는 곳으로 올라가라/ 올라간 그곳에 절벽이 있다/ 그 위에서/ 아래로 던져진 마음을 보라/ 허옇게 뼈까지 부서진 사랑을/ 물어뜯는 파도가 있다/추락한 꿈들이 뇌사상태일 때/ 마라도의 배들은 고동을 울려/ 그 영혼을 달랜다/ 무엇이든 끝에 서본 자만이/ 시작을 꿈꿀 수 있다."(김시탁 시인, '마라도' 중에서, 47쪽)

"마라도에 부는 바람은 생을 모조리 날릴 듯하다. 시커멓게 탄 가슴을 열어 보일 필요도 없이 단번에 훑어 버린다. 발가벗은 심정으로 오른 절벽 끝에서 바라본 바닥은 허옇게 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 바닥에 다 내려놓으라고 뱃고동은 울렸다. 바람에 흐르는 눈물이 얼굴을 때렸다. 바닥이 일어서서 나의 손을 잡았다. 따스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작가노트, 48쪽)

중요한 건 나의 상처가 다른 상처를 만나 위로받고 치유된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결국은 혼자인 삶이지만, 누구나 결국은 혼자라는 사실로 우리는 함께할 수 있다. "문득, 오늘 만파식적 같은 그대의 충실한 악기가 되고 싶네/ 그대가 멀리서 손짓하거나 가까이에서 환하게 안겨 오거나/ 최면 걸린 듯 잠결의 숨소리처럼 애잔하게/ 더러는 심장의 박동소리로 쿵쿵거리고도 싶네"(김일태 시인, '바다 오르간' 중에서, 54쪽)

"아드리안 자다르 해변에서 불현듯 온 세상에 숨겨져 있던 사랑의 소리들이 내 귀를 흔들었다. 몸 안에 갇혀 있던 말, 차마 다 풀어내지 못하고 끝내는 지상에서 흔적 없이 스러져 간 무수한 슬픔과 아픔과 그리움의 노래들. 세상의 모든 소리들도 물처럼 흘러가 바다에서 침묵의 소리로 고여 있다가 바람이 불면 환생하는 듯했다. 그 침묵하고 있던 소리들이 나를 일깨웠다."(작가노트, 55쪽)

하여, 우리는 저 먼 곳에 있다가도 끝끝내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서로에게 등 돌리다가도 다시 손을 내민다. 그것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삶이므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랑이다. "우리가 손을 잡고 왔던가// 어느결에 각자 걸어가는 무수한 발자국/ 너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또 등을 보이고/ 알 수 없는 생각에 안개가 덮치고/ 순식간에 사라진 옆이 슬펐다"(이서린 시인, '그래, 자작나무' 중에서, 183쪽)

"하바롭스크의 밤거리를 걸었다. 기습처럼 덮치는 안개가 숨긴 내 옆의 일행들. 우리는 함께였다가 혼자였다가 다시 함께였다. 자작나무는 한 그루보다 숲을 이루었을 때 아름답고 장엄하였다. 사람들도 서로 곁을 지켜줄 때 아름답다. 그래, 거기 당신 곁에 내가 있을 것이다."(작가노트, 184쪽) 지식과 감성. 192쪽.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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