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지나도 이어진 깊은
해발 800m 모습 드러낸 칠불사
가락국 일곱 왕자 성불한 곳
범왕리 경계 왕성분교장 일대
신선이 된 최치원 설화 깃들어

매번 쌍계사까지만 다녀오니 거기가 끝일 거라 착각했습니다. 그 너머로도 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길을 나섰습니다. 쌍계사를 지나 화개천을 따라 지리산 품속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눈 속에 꽃이 피다 = 화개(花開)라는 이름이 멋집니다. 꽃이 핀다는 뜻이죠. 화개면에서 꽃이라고 하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긴 벚꽃길(십리벚꽃길)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화개라는 이름의 기원은 벚꽃이 아닙니다. 이는 쌍계사 창건 설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쌍계사는 육조혜능(638~713) 선사의 정상(머리)을 모신 절로 유명합니다. 당나라 사람인 혜능은 달마에서 시작한 중국 선불교의 맥을 이은 여섯 번째 조사입니다. <하동군 지명지>(하동문화원, 1999)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혜능이 돌아가신 지 몇 년 후 신라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 스님이 당나라로 건너갑니다. 혜능의 어록집인 <육조단경>에 '내가 죽고 5~6년이 지나면 한 사람이 와서 내 머리를 가져갈 것'이라고 쓰인 것을 자신이 실현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삼법 스님은 당시 당나라에 머물던 신라 출신 대비 스님과 협력해 결국 혜능 선사의 머리를 가져옵니다. 처음에는 수도 경주에 뒀지요. 그런데 혜능 선사가 꿈에 나타나 자신의 머리를 '지리산 아래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으로 옮기라고 계시합니다.

그래서 겨울 지리산을 돌아다니다 눈 속에 칡꽃이 가득 핀 곳을 발견합니다. 봄처럼 따뜻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암자를 짓고 머리를 봉안합니다. 이곳이 나중에 쌍계사가 됩니다.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의 일인데, 이때부터 이곳을 꽃피는 곳, 화개(花開)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니 화개는 다분히 선불교적인 이름입니다. 꽃은 선불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영산회상에서 설법할 때 어느 날 가만히 꽃을 들어 보이니 제자 가섭이 빙그레 웃었다는 이야기는 선불교 전통에서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 한 신도가 칠불사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서후 기자
▲ 한 신도가 칠불사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서후 기자
▲ 칠불사 마당. /이서후 기자
▲ 칠불사 마당. /이서후 기자

◇가야 일곱 왕자의 성불 = 길을 따라 하염없이 달려갑니다. 제법 높은 산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도 될까 걱정이 됩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칠불사(七佛寺)입니다. 산중에 갑자기 드러난 넓은 주차장에 난데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주차장 너머로 꽃처럼 선명한 일주문을 지나 굽이진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니 단정한 연못이 나옵니다. 영지(影池)라는 이름입니다. 그 뒤로 뜻밖에 웅장한 사찰 건물들이 보입니다.

칠불사는 가락국 김수로왕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동의 구전설화>(하동문화원, 2005년)를 보면 김수로왕은 허왕후 사이에 왕자 열을 뒀는데, 첫째는 왕위를 잇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 일가를 이룹니다. 셋째 왕자의 후손이 나중에 인천 이씨의 시조가 되죠. 나머지 일곱 왕자는 허왕후의 오빠 장유 스님을 따라 처음에는 가야산에서, 나중에는 지리산에서 수행해 성불했다고 합니다. 이를 기뻐한 김수로왕이 왕자들을 보내 공부하게 하려고 지은 절이 칠불사라고 하네요.

계단을 올라 절 마당으로 가는 길, 정문 격인 보설루에 '동국제일선원'이란 글자가 어떤 의지처럼 선명합니다. 칠불사는 통일신라 때부터 유명한 참선 수행 도량이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정명, 조선시대 벽송, 조능, 서산, 부휴, 백암 등 이곳을 거쳐 간 선사들의 면목이 엄청납니다. 이들 큰스님들이 수행했던 곳이 대웅전 왼쪽에 있는 아자방(亞字房)이란 독특한 온돌 건물입니다. 온돌을 한자 아(亞) 모양으로 깔아서 난방 효율을 높인 방식입니다.

칠불사에는 역사 가치가 큰 것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들어앉은 자리가 참 좋습니다. 지리산 제2봉 반야봉(1732m) 남쪽 기슭 해발 800m. 아늑하고 조용해서 정말로 눈 속에서 꽃이 필 것 같은 곳입니다. 저 높은 나뭇가지 끝을 훑으며 약해진 바람을 따라, 풍경이 은은하게 정적을 깹니다. 그 소리는 산등성이 너머 하얀 구름을 따라 흘러갑니다.

▲ 왕성분교장. /이서후 기자
▲ 왕성분교장. /이서후 기자
▲ 범왕리 푸조나무. /이서후 기자
▲ 범왕리 푸조나무. /이서후 기자

◇그리고 화개동천 = 범왕보건진료소가 있는 삼거리는 화개면에서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왼쪽으로 가면 범왕리 칠불사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가면 대성리 의신마을로 연결됩니다. 이번에는 의신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2015년 1월 23일 중국 시진핑 주석은 서울에서 열린 '2015 중국 방문의 해' 개막식에 보낸 축하메시지에서 고운 최치원의 '동쪽 나라의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東國花開洞 壺中別有天)'라는 시를 직접 인용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개동이 바로 우리가 지금 돌아다니는 쌍계사 너머 범왕리, 대성리 지역입니다.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는 지리산 청학동 전설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입니다. 삼거리를 지나 조금만 가면 화개천 옆으로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이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범왕리에 속합니다. 아담하고 예쁜 이 학교 자리에 최치원이 머물렀던 신흥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최치원은 화개천 가에서 귀를 씻고는 신발과 갓을 벗어놓고 그대로 신흥사를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흥사 앞에서 마지막 세속 물건인 지팡이를 꽂아두죠. 이 지팡이가 지금 큰 나무로 자랐는데, 왕성분교장 앞에 우람하게 서 있는 '범왕리 푸조나무'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큰 푸조나무라는데, 현재 경상남도기념물입니다.

왕성분교 앞을 지나 계속 가다 보면 길 끝에 의신마을이 있습니다. 지금은 외진 느낌이 드는 곳이지만, 한때 사찰만 33곳이나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수많은 옛 문헌에도 자주 나옵니다.

의신마을까지 오는 길이 깊고 깊어 아주 먼 곳까지 와버린 기분입니다. 앞으로 지리산 봉우리들을 바라봐도, 뒤를 돌아왔던 길을 살펴봐도 아득합니다. 그래서 문득 고독해집니다. 수많은 이가 이 고독함을 안고 이 길 위에 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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