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경남대 역사학과 교수,〈동아일보〉 〈사상계〉 보도분석
마산 시위 다양한 주체 지우고 대학생 서사·폭력성만 부각

1960년 4월 혁명 당시 언론이 정치적 이해 때문에 마산 시위 의미를 축소하고, 서울 지역 대학생을 부각한 과정을 밝힌 연구가 나왔다. 이번 연구는 4월 혁명과 관련해 고등학생·도시 빈민 등이 기억에서 지워진 맥락을 추적했다는 의미가 있다.

윤상현(사진)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오는 30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인문논총>에 '자유주의의 4월 혁명 내러티브와 사회 심리'라는 논문을 선보인다.

논문은 먼저 1960년 4월 혁명이 여러 지역의 다양한 계층이 참가한 운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4월 혁명을 대학생이 주도했다는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으며, 당시 혁명을 지켜보며 최초의 서사를 구성한 세력들이 어떤 맥락으로 움직였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당대의 자유주의 세력, 특히 언론이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4월 혁명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분석했다. <동아일보>와 <사상계>가 주요 분석 대상이 됐다. 특히 <동아일보>가 3·15의거, 4·11 항쟁을 축소하고 대학생을 혁명의 주체로 만든 과정을 집중적으로 드러냈다.

<동아일보>는 마산3·15의거 국면에서, 민주당의 선거무효 선언을 크게 보도하는 등 정치적으로는 자유당을 비판하는 입장에 섰지만, 마산 시민항쟁은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시위를 '무질서', '불상사'라고 표현하고, 폭력성을 문제삼았다. 중·고교생 참가자의 행동은 '연소학생의 치기'로 치부했다. 김주열 열사 시신이 발견돼 다시 시위가 촉발된 4월 11일 이후에도 시위 군중의 폭력성이 유감스럽다며 냉정을 촉구하는 사설을 냈다.

반면, 4·19를 보도한 태도는 달랐다. <동아일보>는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3000명이 '마산사건 책임져라'라며 시위를 벌이다 대부분 해산하자 '이성과 질서를 잃지 않은 고대 시위'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다 19일 경찰의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순진한 학도들이 불의에 항거하다 흉탄에 쓰러졌다'고 보도했다. 3·15의거, 4·11항쟁 보도 때와는 온도차가 크다.

특히 4월 25일 4·19 기획기사를 실으면서 '대구학생 데모로 발화, 마침내 운명한 자유당식 민주주의, 고대생은 역사적 선봉'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기사에서 <동아일보>의 관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선구적인' 대구의 학생 시위, '위축돼 꼼짝 못하던 희생자' 마산 시민, 이를 '구원하고 인도한' 고려대 학생으로 묘사했다. 논문은 운동의 주체는 학생에게 돌리고 마산 지역 기층민은 구원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시 이미 마산 사건을 전국 시위의 시발점으로 본 AP통신 기자의 시각과 비교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동아일보>가 자유당에 비판적이면서도 마산 시민항쟁에 부정적인 논조를 펼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초대 사주인 인촌 김성수의 행적과도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는 민주당 창당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동아일보>는 민주당이 정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상정하고, 시민들이 시위에서 조금이라도 폭력성을 보이는 순간 이를 냉각시키고자 하는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보수적인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던 자유주의 세력은 순수한 대학생을 시위 주체로 만들어, 4월 혁명을 기층민들이 느낀 경제적 빈곤이나, 마산지역에 남아 있던 좌익적 색채와 분리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논문은 오는 12월에 더 자세한 자료와 사진물을 더한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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