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인민군 부역자' 내몰려 희생
충남 태안군 피학살자 유족들 70년 고통 속 용서 인상적

화면에 담긴 풍경은 아름다웠고, 유족들의 증언은 처참했다. 7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자연은 본래 모습을 되찾았지만, 마음속 상처는 여전히 쓰라리다. 불편한 장면 하나 없이 굉장히 불편하고, 슬픈 장면 없이 무척 슬픈 영화였다.

구자환 감독의 세 번째 민간인 학살 다큐멘터리 <태안>이 21일 오후 3시 30분 메가박스 창원점에서 처음 관객을 만났다. 정식 개봉은 아니고 한국전쟁 발발 70주기를 맞아, 민간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려고 마련한 전국 순회 상영회였다.

▲ 영화 <태안> 중 끔직한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이는 유족.  /구자환 감독
▲ 영화 <태안> 중 끔직한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이는 유족. /구자환 감독

◇꼬리를 무는 복수극 = 태안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들은 차라리 처절한 복수극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초반 인민군에 밀려 후퇴하며 경찰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 백여 명을 학살했다. 인민군 치하에서는 반대로 유지와 경찰 가족 백여 명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9·28 서울 수복으로 돌아온 경찰과 치안대가 인민군 부역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천여 명을 처참하게 죽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죽임과 죽음이었다. 손가락질 한 번으로 삶과 죽음이 갈라졌다. 그러니 영문도 모른 채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많았다. 차라리 죄를 짓고 그렇게 돌아가셨으면 원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증언은 꽤 울림이 컸다. 특히 보도연맹이나 인민군 치하 부역자들은 그 주변 사람과 친척들까지 포함했기에 희생이 많았다. 심지어 "빨갱이는 총알도 아깝고, 몽둥이도 아깝다"며 그냥 줄로 묶어 산채로 불태운 사례도 있었다.

◇죽음 가운데서 발견한 희망 = 전작인 <레드툼>이나 <해원>과 마찬가지로 만신창이 죽음이 이어진다. 2015년부터 죽음, 그것도 아주 비참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주제로 영화를 만드는 구 감독의 정신 건강이 걱정될 정도다.

"내가 카메라를 잡던 그날부터 죽음이 따라다녔다. 처음으로 만든 영상물이 장례식이었고 첫 취재가 죽음이었으며 카메라를 바꿀 때마다 첫 촬영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죽음을 따라다닌다. 이상하게도 하는 일이 그렇다. 이제는 무감각해졌다." (구자환 감독 페이스북 게시물 중에서)

그럼에도, 구 감독은 <태안>에서 어떤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두 가지 부분이다. 먼저 끝내 버리지 못한 인간성이다. 인민군 치하에서 보도연맹 유족으로부터 남편을 잃은 우익인사 부인이 있었다. 서울 수복으로 인민군이 물러나면서 보복이 시작됐다.

한 보도연맹 유족 여성은 보복 학살로 머리가 으깨져서 죽었다. 사람들이 아이들까지 죽이려고 달려들 때, 이 부인이 아이들을 감싸고 막아섰다. 부인은 애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끝내 아이들을 지켜냈다. 만리포에서 학살이 자행됐던 날이었다.

▲ 영화 <태안> 중 끔직한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이는 유족.  /구자환 감독
▲ 영화 <태안> 중 끔직한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이는 유족. /구자환 감독

당시 13살 친구 3명이 이 부인에 의해 살아남았다. 영화 첫 장면에 80대 노인이 어느 무덤 앞에서 "아주머니 덕분에 제가 살아남아 이렇게 잘 살아왔습니다"하고 말하는 장면에 담긴 배경이야기다.

다음 희망은 서로 적대하며 죽이고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의 유가족끼리의 화해다. 영화는 주로 경찰과 치안대에 의한 학살을 다루고 있지만, 인민군 치하에서 희생된 우익 인사들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를 적대 세력에 의한 학살 사건이라고 한다. 영화 속 문구처럼 '과거는 잊으려 하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기에' 여전히 서로 마주치면 껄끄러운 건 사실이지만 중간 중간 유족들 증언 가운데 '화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70년이 지난 세월이니까, 그 당사자들은 미워도 남은 가족을 미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무래도 아무 죄 없는 사람들입니다. 시대가 그렇게 만든 거죠." (적대 세력에 의한 학살 사건 유족)

"그러니까 그 화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속으로는 잠재적으로 미워하는 의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일단 화해를 한 다음에는 좋게 지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렇게 또 옛날같이, 형제지간처럼 이웃지간처럼 지내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고 생각해요. "(인민군 부역자 학살 사건 유족)

영화 마지막 크레딧에 '평온하고 넉넉한 삶이 있는 태안'이란 문구가 나온다. 구자환 감독은 <해원>이란 영화로 희생자들을 위로했으니 이제 화해를 하고 앞으로 <태안>하게 살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 21일 창원상영회에서 관객과 대화하는 구자환(왼쪽) 감독과 영화에 출연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  /이서후 기자
▲ 21일 창원상영회에서 관객과 대화하는 구자환(왼쪽) 감독과 영화에 출연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 /이서후 기자

◇상처가 상처를 만나다 = 한편, 영화에서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는데, 그 방식도 인상적이다.

"영오 씨도 굉장히 아픈 사람인데 또 이런 아픔이 있는 곳으로 끌어당기기는 좀 그렇고 해서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후원금을 보내왔을 때 인사차 전화를 하면서 살짝 제안을 해봤었죠. 여기 출연해서 민간인 학살 사건을 알리는데 같이 힘을 좀 보태면 안 되겠느냐 했는데, 자기가 도울 수 있는 만큼 기꺼이 돕고 싶다고 응해서 출연을 하게 된 거죠." (구자환 감독)

김영오 씨는 현재 전남 무안에 귀농해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를 짓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며 멋쩍게 웃던 그가 여전히 품은 깊은 상처는 영화 곳곳에서 묵직한 힘을 발휘한다. 깊은 상처는 깊은 상처가 있는 이가 더 잘 아는 법이니까. 그러면서도 김 씨는 70여 년 동안 끔찍한 기억을 품고 살아온 이들 앞에 자신의 아픔은 생각보다 작은 것이었다며 겸손해했다.

창원 상영회를 끝낸 <태안>은 27일 광주로 가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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