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자 수기 13편 입상

경남문인협회·창원시·창원산업진흥원이 공동 개최한 1970~80년대 여성 노동자 수기공모 수상작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번 수기공모는 마산자유무역지역 5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였다. 지난 2월 14일에서 4월 30일까지 진행한 공모에서 모두 80여 편이 접수됐고, 이 중 13편이 입상했다.

▲ 여성노동자 수기 공모 수상자들. /경남문협
▲ 여성노동자 수기 공모 수상자들. /경남문협

◇지난날 어린 여공의 삶들 = 대상은 부산 합성섬유 공장 이야기 '감추고 싶은 기억은 보람과 긍지의 날이었다'를 쓴 박 모(밀양) 씨가, 금상은 서울 구로공단 파업 이야기 '그때 그 시절 순이들'을 쓴 신 모(전북 전주)씨와 마산수출자유지역 이야기 '밥 잘 사주는 예쁜 언니'를 쓴 박 모(창원) 씨가 차지했다. 서울에서 버스 안내양을 하던 이야기 '155번 버스, 그 휴전선에서'를 쓴 정 모(서울) 씨와 마산수출자유지역 이야기 '숙녀에게'를 쓴 김 모(창원) 씨가 은상을 받았다. 동상엔 대구 섬유공장 이야기 '섬유공장의 화려한 날들'을 쓴 박 모(전남 무안) 씨가 선정됐다. 이외 '보수동 헌책방' 권 모(울산), '학교 가던 날' 조 모(창원), '교문을 들어선 소녀' 박 모(경기 부천), '내 청춘의 미야산업' 하 모(경북 경산), '나의 인생 나의 이야기' 박 모(창원), '느낌표 편지' 박 모(경북 경주), '삼겹살이 익어갈 땐' 이 모(창원) 씨가 입선했다. 수상자 요청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시상식도 지난달 22일 창원산업진흥원에서 조촐히 진행됐다.

이달균 경남문인협회 회장은 심사평에서 "어쩔 수 없이 우열을 가렸지만 모든 참가작품이 다 감동적"이라고 했다. 수기들은 대부분 70~80년대 대표적 노동집약산업인 섬유공장과 봉제공장에 다닌 이야기다. 집안이 가난하고, 자신이 일을 해서 오빠나 남동생 학비를 대며, 작업장에서 상습적인 폭력, 성희롱에 시달렸다는 내용은 거의 공통적이다. 여전히 전근대에 머물던 시골과 한창 산업사회가 무르익은 도시가 공존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나이 지긋한 이들에게는 익숙한 삶이었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일일지도 모른다.

▲ 옛 마산수출자유지역 정문, 앳된 얼굴의 여공들이 많다. /수기공모 수상작 책자 발췌
▲ 옛 마산수출자유지역 정문, 앳된 얼굴의 여공들이 많다. /수기공모 수상작 책자 발췌

◇지독한 노동 속에서 = 예컨대 마산자유무역지역의 전신인 마산수출자유지역 이야기를 담은 수기를 보자.

"멍에 같은 가난과 암담한 미래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었기에 그 적은 월급으로 매달 7만 원씩 적금을 억척스럽게 넣었다. 달콤한 군것질이나 보잘것없는 라면 한 그릇 사 먹는 것도 연중행사였다. (중략) 회사에 어느 정도 익숙할 즈음 함께 일하는 은주(가명)가 매일 아침마다 과자를 사 먹는 모습을 보게 됐다. 속으로 돈이 많은가? 그리 생각하고 말았는데, 하루는 남주 언니로부터 은주가 아침밥을 못 먹어서 매일 과자로 허기를 때운다고 들었다. 이심전심이다. 맘이 너무 아팠다." - 금상 작 '밥 잘 사주는 예쁜 언니' 중에서

수상작 중에 한일여고 전신인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에 다니던 이야기도 몇 편 있다. 이 학교는 현재 메트로시티 1, 2단지 자리에 있던 한일합섬이 직접 운영한 산업체 부설학교다. 전국에서 온 아이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장에서 3교대로 일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에 수업을 들었다. 억척같은 청춘이었다.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자, 괴로움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중략) 무엇보다 버티기 어려운 게 있었으니 졸음이었다. 3교대 근무 특성상, 오전 6시 출근 - 오후 2시 퇴근 / 오후 2시 출근 - 오후 10시 퇴근 / 오후 10시 출근 - 오후 6시 퇴근의 교대 근무가 반복되었는데, 근무를 하고 학교 수업과 병행하다 보니 많은 친구와 선배 언니들이 언젠가부터는 졸음을 달고 살고 있었다. (중략) 옆에선 바늘에 손을 찔리고, 그러고 그러다 누군가는 공장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 입선작 '학교 가던 날' 중에서

이런 지독한 노동 환경에서도 인간적인 정이 오가고 삶의 재미가 있었다. 그러기에 되돌아보면 오로지 고생만 한 기억이 아니라 뿌듯한 추억이 될 수 있다.

"너도, 나도, 누구의 딸, 누구의 언니, 누나로서, 그리고 누구의 엄마로서, 참, 수고 많았다." - 입선작 '학교 가던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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