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매일 평균 7명 일터서 목숨 잃어
중대재해처벌법, 인간·생명 존중과 직결

휑한 방에 덩그러니 놓인 간이 옷걸이(행거)에는 몇 벌 되지 않는 옷이 걸려 있다. 커튼 하나 없는 좁은 방 창가에는 그나마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있다.

어머니는 무릎 꿇고 아들 옷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뒤편에 서 있던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도 아들 옷을 쓰다듬다 오열하기 시작했다. 김용균이 숨졌을 당시 아들이 살았던 기숙사를 찾은 부모들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는 슬픔을 참아내고자 굳게 다문 입과 일그러진 얼굴, 그러다 흘러내리는 눈물과 터져나온 통곡이 담겨 있다. 아마도 부모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혼자 견뎌냈을 아들의 시간과 마주했을 테다. 그 텅 빈 공간이 주는 의미, 다시는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아들의 영원한 부재를 현실로 느끼는 순간이었을 게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부모 마음이 고스란히 전이돼 아직도 그 장면이 뇌리에 남아 있다.

이 일로 그해 겨울 우여곡절 끝에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지 2년이 다 됐지만 바뀐 것은 없다. 여전히 하루 평균 7명, 매년 2400여 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참혹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망사고 관련해 부과되는 벌금은 고작 440만 원 수준이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이를 강제할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나마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21대 국회에서 재발의돼 기대를 모은다. 하나 국회의원들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국가의 최우선 임무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현재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코로나19 극복이다.

그동안 코로나에 국민 2만 4000여 명이 감염됐고 420여 명이 숨졌다. 연간 산업재해 사망자 2400여 명보다 훨씬 적은 수치다.

정부와 국회가 코로나19에 집중하면서도 왜 산업재해에는 관심이 적은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운이 나쁜 경우'라고 생각해버리는 국민 의식과 무관심 때문이 아닐까.

산업재해를 진보와 보수 정치세력 간에 다투는 정쟁거리, 경영진과 노동조합의 갈등 이슈로만 이해하는 국민이 많다. 일부에서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산업재해는 정치 의제도, 경영논리도 아닌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 존중, 생명 존중과 직결된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포함된 이른바 '전태일 3법'이 오는 12월 19일까지 본회의 상정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고 때 잃은 아이들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 자식이었고, 조카였고, 이웃이었다. 산업재해, 내가 당사자가 될 수도 있고, 가족 또는 이웃의 일이 될 수 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때늦은 후회와 반성 더는 없어야 한다. 우리가 전태일이고 김용균이 돼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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