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개간하는 사내 소재로
자연의 보편적 지혜 담은 소설
침묵과 고독 속 이타적 투쟁이
인간을 결국 위대하게 만들어

책을 펼쳐 들었다가 한숨에 다 읽고 말았다. 본문이 겨우 67쪽인 작은 책이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생각과 전체 흐름이 편안했기 때문이다. <팔미라>는 자연에 대한 보편적인 지혜를 담은 일종의 우화소설이다.

▲ 〈 팔미라 〉강병국 지음

배경은 천 년 고찰 성주사가 있는 창원 불모산. 이야기는 화자(話者)가 40여 년 전 불모산 등산 기억을 더듬으며 시작한다.

"나는 그동안 다니는 길을 마다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갈 요량으로 성주사 아래쪽에 있는 수원지 끝자락의 왼쪽 골짜기를 따라 올라갔다. (중략)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 사이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제법 걸어갔을 때였다. 그곳에 한 남자가 낫으로 덤불을 걷어내고 톱으로 잡목을 베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11쪽)

묵묵히 산 속 황무지를 개간하는 한 사내, 그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혼신의 힘과 정성을 쏟아 마치 수련하는 사람이 명상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고독에 침묵에 투신한 것 같은 그를 보며 어떤 엄숙함과 경건함이 느껴졌다. 옷은 허름했으나 눈매는 살아 있었고, 표정은 온화했다. 성품은 너그러우면서도 확신에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13쪽)

우연히 만나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못하고 헤어지긴 했지만, 그 사내가 풍기는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화자가 군대를 다녀오고 신문기자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문득 다시 불모산 그 사내가 생각났다. 다시 찾은 불모산의 변화는 놀라웠다.

"나는 자연의 향기가 가득한 과수와 야채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자연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기에 구원자이다. 대수롭지 않던 가시덤불이 기름진 땅으로 변해 있었다." (35쪽)

"지난해부터 수확한 과일들을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나눠 먹었고, 남은 것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땅과 하늘이 허락한다면 내년부터는 더 많은 과일과 채소를 수확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먹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38쪽)

그렇게 다시 만난 후에야 사내의 이력과 이름을 듣게 되고, 그가 자신이 개간한 그곳을 팔미라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팔미라는 시리아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중국과 유럽을 연결한 실크로드 중심 도시로 번영을 누리던 곳이다. 삭막한 사막에서 피어난 화려한 꽃 같은 도시였다. 한 인간의 의지로 황무지를 개간해 이룩한 풍요한 땅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야기가 이 즈음에 이르러서야 작가를 자세히 살펴본다. 강병국(65) 이학박사. 신문기자, 환경활동가, 고전번역가, 자연저술가 그리고 정식 등단한 시조시인.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보건대, 이 책은 마치 그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차곡차곡 쌓아온 생각들을 전체적으로 정리해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곳곳에서 드러나는 인류 문명에 대한 비판에 그의 자연관, 인간관이 잘 담겨 있다.

"정보가 많은 것은 욕망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고, 필요한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걱정과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38쪽)

"그는 채소밭에도 거름을 지나치게 하는 것을 삼갔다. 그는 과잉을 경계했다. 과잉으로 인해 언젠가는 생각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휩쓸어 사람들을 위협할 것이라고 했다." (46쪽)

코로나 사태로 새삼스레 환경 문제가 주목받는 지금, <팔미라>에 담긴 우화는 마치 세상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게 인간이 만든 문제이긴 하지만, 여전히 인간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고독과 침묵 속에서 자신과의 투쟁을 통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일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묵상하듯 자신을 닦고 묵묵히 일을 한 늙은 농부에게서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 이기가 아닌 이타적인 생각과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보고 있으면 인간은 참으로 위대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7쪽)

진한엠앤비 펴냄. 88쪽.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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