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라이언 부부 공동집필
창원대 배경 〈비밀 독서동아리〉
한국 민주주의 이룩 과정 담아

지역 현대사를 다룬 만화책을 한 권 소개할까 한다. 지난 5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발간된 <비밀 독서 동아리>다. 영문판 제목은 , 한국판에는 '책이 금지된 시대 만화로 보는 1980년대라는 부제'가 붙었다. 저자가 3명이다. 먼저 김현숙 씨와 라이언 에스트라다 씨. 이 둘은 부부인데 글을 썼다. 고형주 만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80년대 지역 학생운동 이야기

부제에서 언뜻 알아차릴 수도 있는데, 이 만화책은 우리나라 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1983년 막 대학에 입학한 '현숙'이란 인물. 바로 공동저자인 김현숙 씨다.

1983년 봄. '드디어 대학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하고 첫 수업을 들으러 교문 앞에 도착했는데 학교 앞이 난리다. '전두환 정권 몰아내자'는 날카로운 구호와 함께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터지고 경찰과 학생들이 전투를 하고 있다. 그렇게 첫날 두려운 마음으로 겨우 강의실로 들어간 현숙은 어느 날 독서 동아리 가입 권유를 받는다. 들어가서 보니 그 동아리는 정부가 금서로 지정한 책을 몰래 읽는 모임이었다. 책에 나오는 금서는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같은 책이었다. 당시 이런 책들을 가지고만 있어도 경찰에게 붙잡혀 갔었다.

▲ <비밀 독서 동아리> 영문판 내용. 주인공 현숙(맨 왼쪽)과 총여학생회장 유니(맨 오른쪽). 유니의 실제 모델은 김경영 경남도의원이다. /영문판 트위터
▲ <비밀 독서 동아리> 영문판 내용. 주인공 현숙(맨 왼쪽)과 총여학생회장 유니(맨 오른쪽). 유니의 실제 모델은 김경영 경남도의원이다. /영문판 트위터

현숙은 이런 독서모임을 통해서 검열이 일상화된 신문이라든지, 학교에 상주하던 정보과 형사들, 그리고 5·18광주항쟁의 실제 내용을 담은 비디오 영상 상영을 준비하다 끌려가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림체나 이야기 구성이 그렇게 딱딱하지 않다. 청소년이라도 당시에 대학생들이 이런 일들을 겪었고 이런 생각들을 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1980년대 전국 대학가에서는 일반적이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굳이 기사 첫 머리에 지역 현대사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실질적으로 창원대가 배경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현숙의 실제 모델인 공동저자 김현숙 씨가 창원대 83학번(입학 당시 마산대)이다. 책 뒤쪽에 김 씨가 에필로그 식으로 적은 짧은 글을 보자.

"이 책은 4년 동안 같이 대학에 다닌 친구들의 네트워크에서 나온 사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를 조각내고, 다져 허구의 대학을 배경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엮었다."

그러면서 도움을 받은 이들 이름을 나열하는데, 그중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경영 경남도의원도 있다. 책에서는 유니라는 이름으로 날카로운 인상의 당찬 총여학생회장으로 나온다. 김 의원을 만나 물어보니 분명히 창원대 이야기가 맞다고 한다. 김 의원은 졸업해서도 지역에서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으로 꾸준히 한길을 걸어왔다. 그에게도 이 책은 대학에서 학내 민주화 운동을 벌이던 당시 뜨거운 열정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 〈비밀 독서 동아리〉김현숙·라이언 에스트라다 지음
▲ 〈비밀 독서 동아리〉김현숙·라이언 에스트라다 지음

◇전 세계에 깊은 인상 남긴 촛불집회가 출판 계기

책은 미국에서 먼저 출판이 결정됐다. 공동 저자인 라이언 에스트라다의 역할이 컸다. 그는 현재 아내 김현숙과 부산에 살고, 한국과 미국에서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이 책을 구상한 계기는 2016년 10월에서 2017년 5월까지 23번 이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 및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촛불집회'였다. 평화적인 촛불집회로 실제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 전 세계가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라이언 씨가 이걸 보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룩되었는지를 미국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준비했다고 한다. 대통령 탄핵까지 이른 평화적인 촛불집회의 힘이 어디서 오는가 하고 따져보니 아이들을 이끌고 거리에 나선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 세대가 보였다. 그런데 아내 김현숙 씨가 바로 80년대 학생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이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찾아봤더니 재밌게도 청소년 권장 도서처럼 돼 있다.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지도자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책!', '끈질기게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확실히 영감을 주는 책!' 같은 평가와 함께다. 그렇다면, 이 만화책이 우리나라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뭘까. 책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들이 자녀와 함께 촛불집회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 나오는 대사가 책의 의미를 대신할 수 있겠다. 여전히 날카로운 유니가 현숙에게 묻는다.

▲ 책에 나오는 총여학생회장 유니의 실제 모델인 김경영 도의원. /경남도민일보 DB
▲ 책에 나오는 총여학생회장 유니의 실제 모델인 김경영 도의원. /경남도민일보 DB

"만약 과거로 가서 어린 너를 만났다고 쳐. 33년이 지나도 여전히 시위하고 있다고 어떻게 설명할래?"

현숙이 대답한다.

"어린 나에게 말할래.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사람들은 때때로 과거를 잊는다고. 자유를 억압하던 무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들이 일어났을 때 단지 소수가 아닌 광장에서 우리 모두 함께했다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정의를 위해 싸울 굳은 결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거대한 운동을 만들었다고. 어린 나에게 말할 거야. 진실을 찾고, 무엇을 믿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위해 일어나라, 그리고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이데아 펴냄. 204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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